
▲2일 오전, 서울 구로구 영림중 학생들이 체육대회를 위해 반 별로 입장하고 있다. ⓒ 윤근혁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
이것은 아프리카 속담이다. 하지만 한국 현실 속에서 이런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체육대회는 학생회가 벌였고, 놀이마당은 마을단체가 벌여
하지만 서울 구로구 영림중학교는 학생들의 한마당 축제(체육대회)를 위해 온 마을이 나섰다. 그것도 동네 이주민과 한국인 어른들이 나섰다. 체육대회는 학생과 교원들이 직접 벌였고, 놀이와 체험 마당은 마을 단체들이 준비했다. 이는 이벤트(행사) 업체를 불러 체육대회를 벌이는 게 유행처럼 퍼진 여느 학교들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한가위 연휴 하루를 앞둔 2일 오전 9시, 서울 대림역 4번 출구를 나섰다. 최근 이곳에서는 이 지역 밖에서 온 극우단체가 두 차례에 걸쳐 혐중(중국혐오) 집회를 연 곳이다.
이로부터 100여m 정도를 걸어가니 풍물패 연주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영림중 운동장에서 들려온 소리다. 영림중 학생 30여 명이 장구와 꽹과리를 치며 흥을 돋웠다. '2025 영림중학교 한마당 축제'의 앞풀이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 풍물 악기를 든 학생 중에는 중국 이주민 학생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전교생 524명이 있는 이 학교의 공식 이주 학생 비율은 25%다. 하지만 "실제 이주 학생 비율은 40% 정도 된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다. 대부분 중국 이주 학생들이다.
이번 영림중 한마당 축제를 꾸며주는 말은 "마을과 함께하는 축제"라는 것이다. 이 축제는 '체육대회 실시'를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이 학교 학생회가 직접 준비했다. 마을단체들과 준비하는 기간이 두 달 정도 걸렸다고 한다.
이날 체육대회가 열린 운동장 모퉁이엔 14개의 천막이 서 있다. 마을과 학교 단체 14곳이 세운 것이다. 체험과 놀이마당을 운영하기 위해서다.

▲2일 오전, 서울 영림중 체육대회에서 레인보우해피잡 협동조합이 세계 전통의상 체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윤근혁
이번에 학생들을 위해 천막을 친 마을단체는 레인보우해피잡협동조합, 궁동청소년문화의집, 구로학교안전사회적협동조합, 놀이연구회 통통, 구로마을공동체네트워크, 구로세계시민교육단, 널빤지 목공학교 등이다.
이들 체험 놀이마당에서는 딱지치기, 판 뒤집기도 있었고 도박중독 예방 보드게임, 음식 만들기, 가면 색칠하기 등도 있었다. 학부모회가 준비한 닭꼬치와 타투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눈길을 끈 곳은 레인보우해피잡협동조합이 세운 '세계 전통의상과 세계놀이 체험장'이다. 이곳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옷을 입어볼 수 있는 세계 의상체험과 함께 2개의 세계 놀이장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토촬' 놀이. 중국 학생들이 많이 하는 놀이다. 이것은 고리를 던져 마스코트 인형에 씌우는 놀이인데 한국의 고리 던지기와 비슷하다.
"이 마스코트는 모두 중국에서 만든 것을 본뜬 것인데, '방문을 환영한다'는 뜻이 있어요. 우리 영림중 학생들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우리 이주민 협동조합 선생님들이 준비했어요."

▲2일 오전, 서울 영림중 체육대회에서 이주민들이 만든 마을단체인 레인보우해피잡 협동조합이 중국 놀이인 '토촬'을 진행하고 있다. ⓒ 윤근혁

▲2일 오전, 치파오를 입은 레인보우해피잡 협동조합 김홍리 이사장(중국 이주민)이 세계놀이마당을 진행하고 있다. ⓒ 윤근혁
레인보우해피잡 협동조합 김홍리 이사장(중국 이주민)의 설명이다. 그는 이날 중국 전통 복장인 치파오를 입었다. 이 협동조합은 2014년 서울 구로구에 첫발을 디딘 사회적 기업이다. 색다른 것은 우리나라 처음으로 이주여성들이 만든 학생 학습과 교육을 위한 협동조합이란 점이다. 이 협동조합엔 현재 15개 나라 30여 명의 마을교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요즘 대림역에서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혐중 집회를 벌이지만, 여기 사는 주민들과 학생들은 혐오는커녕 협력하며 살아간다"면서 "영림중 학생들이 세계 문화를 잘 알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활도 이해하는 큰마음을 가진 학생들로 커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체험 놀이마당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주민들도 두 달간 준비한 축제, 우리 학생들 혐중은 없다"
윤상혁 영림중 교장은 "학생회에서 체육대회를 열자고 제안해서 두 달 동안 학교 구성원들이 직접 준비했다. 이 과정을 모두 학생회에서 주도했다"면서 "특히 학교 근처에 있는 이주민단체와 이주민들이 한국인들과 함께 모여 체험 놀이마당을 준비했다. 우리 학생들도 그렇고, 우리 마을 단체들도 그렇고 혐중, 반중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