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시끄럽다. 2일, 금강 세종보 농성장에서 바라본 하늘은 평소와 다르게 요란했다. 검푸른 하늘 위를 낮게 가르는 비행기들이 연이어 나타나 색색의 연기를 뿜어내며 곡예비행을 하고 있었다. 굉음은 강변의 고요를 단숨에 깨뜨렸다.
어느새 백로들은 깜짝 놀라 강가 숲 속으로 몸을 숨겼고, 풀숲에 있던 참새들은 허둥지둥 날아올라 어딘가로 사라졌다. 물 위를 가만히 떠 있던 왜가리마저 긴장한 듯 날갯짓을 반복했다. 농성장 위 한두리대교의 차량 소음에도 늘 시달리던 금강의 생명들이었지만, 전투기가 뿜어내는 소리는 차원이 달랐다. 그 순간, 이곳이 더 이상 평화로운 하천이 아님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블랙이글 에어쇼, 화려함 뒤에 가려진 그림자는 없을까?

▲농성장에서 바라본 블랙이글의 비행모습 ⓒ 이경호
알고 보니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열리는 세종한글축제를 준비하는 공군 블랙이글 팀의 연습 비행이었다. 많은 이들이 블랙이글의 곡예비행을 '국가적 자랑'으로 받아들이고, '환상적인 장관'으로 묘사한다. 나 또한 어린 시절 F-14 톰캣 장난감을 조립하며 하늘을 나는 전투기에 막연한 동경을 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막상 강 위에서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전투기의 엔진음은 단순한 소음을 넘어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었고, 대화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잠시의 스펙터클을 위해 강의 생명들과 주민들이 감내해야 할 대가는 너무 컸다.
국제적으로도 에어쇼는 환경·사회적 문제를 둘러싸고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다. 제트기의 저고도 비행은 야생동물의 번식·먹이활동을 방해하고, 공포 반응을 유발한다는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유럽과 북미에서는 소음으로 인한 주민 불만과 시위가 이어지고, 일부 지역에서는 민감한 서식지 상공을 피하거나 시간대 제한을 두는 조치가 시행되기도 한다.
'볼거리'를 위해 연료 태우고, 연기 내뿜고

▲블랙이글의 비행 ⓒ 이경호
소음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대지와 하천의 모든 생명과 인간 모두를 괴롭히다. 에어쇼의 소음은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생명에 위협이 된다. 항공 소음은 인간에게도 심혈관계 질환, 불면, 집중력 저하, PTSD 악화 등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이와 노인, 환자 등 취약 계층은 특히 큰 타격을 받는다.
야생생물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학술 보고서들은 새들이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둥지를 버리거나, 번식 성공률이 떨어지고, 포식자 회피 행동으로 에너지를 과다 소모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강변에 서식하는 백로·왜가리 같은 조류뿐 아니라, 금강의 수달과 어류들까지 장기적으로 교란될 수 있다. 짧은 몇 분간의 곡예비행이지만, 반복되는 훈련과 본행사까지 이어지면 그 충격은 누적된다. 농성장에서 지켜본 백로의 움츠린 몸짓은, 화려한 비행 뒤에 남겨진 불안과 두려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항공은 전 세계 탄소 배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항공기 연료 연소로 인한 온실가스뿐 아니라, 질소산화물·초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이 배출되어 인류 건강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에어쇼는 본질적으로 '전시적 소비 비행'이다. 생존이나 이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하늘을 가르고, 연료를 태우고, 연기를 내뿜는다. 화려한 연무 속에서 기후위기 대응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파리·패럿보로우 등 세계적 항공전시회조차 지속가능성을 화두로 삼고 있지만, 에어쇼 자체의 환경적 정당성은 점점 더 설득력을 잃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과연 화려한 곡예비행이 꼭 필요한 것일까? 에어쇼가 군의 사기와 홍보에 기여한다는 명분은 있지만, 그로 인해 파괴되는 환경과 생명, 주민들의 고통은 외면되어서는 안 된다.
세종보 농성장은 기후위기와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해 지켜내고자 하는 공간이다. 매일 강물과 생명을 곁에서 마주하며, 우리는 '강은 다시 흘러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절실한 진실을 확인한다. 그런데 머리 위로 전투기가 날아가며 굉음을 뿜어낼 때, 이 강의 생명들은 어디로 피해야 하는가.
어디에도 도망치지 못한 채 몸을 웅크린 백로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의 시대가 직면한 모순을 본다. 한쪽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외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소음과 연기, 온실가스를 뿜어내며 전시적 행사를 반복한다.
하늘은 언제나 넓고 푸르러야 한다. 하지만 그 하늘이 생명을 위협하는 굉음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결코 축제가 될 수 없다. 금강 위에 울려 퍼진 굉음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과 평화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묻는 질문이었다.
▲블랙이글의 비행모습
블랙이글 이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