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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전통시장 정문
세종전통시장 정문 ⓒ 김선재

오는 10월 6일이면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다. 밝고 둥근 가을 달 아래 가족이 모여 화목을 다지는 풍요로운 명절이다. 사람들은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러 나서는데, 이때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전통시장'이다. 치솟는 물가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에는 오고 가는 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며 명절을 미리 맞이하곤 한다.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새내길 조치원역 인근에는 '세종전통시장'이 있다. 이 시장은 1770년 영조 임금의 명으로 편찬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공식 백과사전 <동국문헌비고>에 처음 등장하는데, '조치원장이 상리와 평리에 4·9일 정기적으로 열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2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자리에서는 5일장이 열리고 있다.

5일장 노점 상인이 자리 잡은 뒤 조치원역이 개설되었고, 1910년대에는 신시장이 조성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1919년 3월 29일, 이곳에서도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250여 명으로 시작한 시위는 각 마을로 확산되어 연인원 1500여 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세종전통시장은 그만큼 역사와 유래가 깊으며, 5일장 노점 상인은 오랜 시간 지역 주민과 함께해왔다.

갈등의 시작, 방송 속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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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8월부터 세종전통시장은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9월 19일, 5일장 장날 현장을 찾았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같은 내용의 방송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저희 세종전통시장 내 모든 권한과 책임은 김석훈 회장이 가지고 있으니, 5일장 노점 상인들은 시청이나 읍사무소를 찾아가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상설시장 상인들이 가운데 대리석을 사용하려고 하오니, 5일장 노점 상인들은 아케이드 밖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세종전통시장 안내도. 중앙과 주변으로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5일장 장날이 되면 골목과 주변에 노점상이 매대를 친다.
세종전통시장 안내도. 중앙과 주변으로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5일장 장날이 되면 골목과 주변에 노점상이 매대를 친다. ⓒ 김선재

세종전통시장은 상설시장과 5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시장은 건물을 중심으로 상점들이 이어지며, 중앙통로와 시장통에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다. 아케이드는 2010년 조치원전통시장 시설현대화사업의 일환으로 총 28억 원이 투입되어 완성되었다.

상설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세종전통시장 상인회'가 구성되어 있는데, 최근 김석훈 회장은 아케이드 아래에서 장사하는 5일장 노점 상인들에게 시장 밖으로 나가라고 요구했다.

방송은 간간이 반복되어 흘러나왔다. 시장통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무심히 지나치기도 했지만, 몇몇은 방송 내용을 상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방송을 듣는 노점 상인들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번졌다.

충청지역노점상연합회 조치원 지부장인 지명천씨는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지만, 최근처럼 장사가 어려웠던 적은 없다고 했다.

"5일장은 시골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잖아요. 만나면 이렇게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런데 저 방송 소리가 들리고부터는 노점 상인들이 장사하기 제일 싫어하는 곳이 바로 조치원이 됐어요. 오늘은 뭘로 트집을 잡을까, 내일은 또 뭘로 문제 삼을까 걱정하다 보니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어요."

5일장 노점 상인은 특성상 장이 서는 곳을 찾아 매일 이동한다. 장날마다 자리를 바꿔가며 그날그날 물건을 팔아 생활을 이어간다. 당연히 노점 형태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5일장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상설시장이 생기기도 전부터 터를 닦았음에도 5일장 노점상인들은 안심하고 장사를 할 수가 없다. 이곳처럼 상설시장이 들어선 다음에는 건물주나 건물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갈등이 심해져 소송이 오가기도 하고, 서로 타협과 절충을 통해 상생의 길을 찾기도 한다.

"5일장은 우리 삶의 현장입니다. 이게 없으면 오늘 하루 어디 가서 벌어야 하나, 생존권이 달린 문제예요. 여기 노점상들 대부분 40년 이상 장사를 해왔고, 나이도 70이 넘었습니다. 저 옆에 계신 분은 팔십이 넘으셨고요. 그럼에도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먹고 살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상인회의 주장과 정관 속 갈등

 세종전통시장 상인회 정관의 일부. 5일장 관련 내용이 있지만, 노점상들은 전혀 협의된 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종전통시장 상인회 정관의 일부. 5일장 관련 내용이 있지만, 노점상들은 전혀 협의된 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김선재

상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지난 9월 26일, 세종전통시장 상인회를 찾아 김석훈 회장을 직접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 회장은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세종전통시장 상인회 정관이었다. 그 안에는 '5일장은 명절 3일 전부터 명절 당일까지는 장을 펴지 않는다'는 운영 규칙 제3조 6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보니까 말이여, 이 노점상 사람들 전부 다 대전 사람들이여. 여기는 조치원이야. 조치원. 5일장이고 뭐고, 우리 상인들이랑 똑같은 물건만 파는 거요. 품종이 틀려야 하는데. 타지 사람이 다 우리 것 뺏어가는 거예요."

김석훈 회장은 조치원 지역 사람이 아닌 타지 상인들이 와서 같은 품목을 판매하는 데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2022년 정관을 개정할 때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해당 조항을 새로 넣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관을 만들 당시 노점상들의 의견은 반영하지 않았다. 이에 노점상들은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정관을 무조건 따라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쟁점은 또 있었다. 김석훈 회장은 이번 명절 연휴 첫 5일장인 10월 4일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아케이드 내부에서는 5일장 노점 상인이 장사를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장사가 너무 안되다 보니 저 나름대로 변화를 주려고 한 거예요. 5일장 노점 상인이 나가면 그 자리에 먹거리 장사를 좀 앉혀보려는 거죠. 먹거리가 있는 데는 시장이 잘 돼요. 요즘 장사가 안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 오는 사람들이 그래요. 이 큰 시장에 먹거리가 너무 없어서 들어올 맛이 안 난다고.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서 회비 만 원씩 걷고, 중앙 공간에서 매일 먹거리를 팔 수 있는 새 노점을 세워보려는 겁니다."

김 회장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는 세종전통시장 내 운영 권한을 자신이 갖고 있음을 강조하며, 기존 5일장 노점 상인들에게는 시장 밖에서 장사를 계속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노점상을 모아 먹거리만 파는 공간으로 새롭게 꾸리겠다는 계획을 설명했다. 이에 노점상들은 시장 밖에서 장사를 하면 행정기관 단속 대상이 되고, 아케이드 중앙이 소방도로여서 5일장만 관례적으로 허용될 뿐 상설 매대는 들어설 수 없다고 반박했다.

세종전통시장 상인회 사무실 안의 긴장감은 계속해서 높아졌다. 상인회와 노점상 모두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노점상은 생존권을, 상인회는 시장 운영권을 주장했다. 새로운 돌파구나 타협안이 나오지 않는 한 충돌은 불가피해 보였다. 실제로 노점상은 전면 투쟁을 언급했고, 상인회 역시 물러서지 않고 고소고발을 언급했다.

상생을 꿈꾸는 또 다른 목소리

 세종전통시장 개요 두 개의 상인회가 시장을 관리하고 있다
세종전통시장 개요 두 개의 상인회가 시장을 관리하고 있다 ⓒ 세종특별자치시홈페이지

답을 찾기 위해 세종전통시장 안에 있는 또 다른 상인회인 '세종전통시장 조치원 상인회'를 찾아갔다. 조치원 상인회 김계순 회장은 현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며 운을 뗐다.

"전통시장도 지금의 시대에 맞는 운영을 해야 하잖아요. 지금은 전통시장이 특화되지 않으면 운영을 못 해요. 시장이 번영하려면 특화된 것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자꾸 낙후되는 거예요.

우리는 세종전통시장 상인회와는 달리 5일장 노점상인들하고 시장 활성화를 위해 협력하기로 했어요. 5일장이라는 게 없으면 전통시장은 망해요. 망해. 5일장 노점 상인들이 쫓겨난 전통시장은 사람들이 찾지를 않게 돼요. 실제로 장날에 손님이 더 많이 와서 평소보다 매출도 50% 이상 올라요."

김계순 회장은 전통시장만의 새로운 매력을 찾고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변 신도시에 사는 젊은 층은 이미 마트와 온라인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 때문에, 오직 장날이 주는 특별한 매력 때문에 전통시장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세종전통시장 중앙 아케이드와 소방도로 부분. 김석훈 회장은 이 곳에 상설 먹거리 매대를 놓겠다 선포했다.
세종전통시장 중앙 아케이드와 소방도로 부분. 김석훈 회장은 이 곳에 상설 먹거리 매대를 놓겠다 선포했다. ⓒ 김선재

"연말이 되면 송년회 밤도 하고 우리끼리 축제도 하면서 구경거리도 만들고 싶어요. 노점상들에게는 1년 동안 우리 시장 상인이 되어 준 것에 고마움을 전하고, 서로 융합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그런데 무조건 노점을 나가라고 하면 그 사람들의 생활을 뺏는 거잖아요.

장날에는 노점상들이 더 많이 들어오고, 상인들과 건물주가 협조해 상생해야 시장이 번영할 수 있어요. 아케이드는 정부에서 해준 시설인데, 5일장 노점 상인들이 들어올 자격조차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모두가 풍요롭고 여유로워야 할 명절날, 세종전통시장에서 웃음이 넘치게 될지, 아니면 고성과 싸움이 오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에도 시장 안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세종전통시장#5일장#노점상#상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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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시민활동가입니다. 우리 지역 현장 곳곳을 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마이크가 필요한 분에게 마이크 드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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