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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책, 영화, 드라마, 여행,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꼭 챙기면 좋은 ‘필수템’을 소개합니다. 가족·친지와 함께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긴 연휴에 어울리는 추천 콘텐츠와 함께 더욱 풍성한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황정은 <작은 일기> 겉표지 ⓒ 창비
소설가 황정은의 <작은 일기>는 12월 3일 계엄이 있던 날의 소소한 일상을 전하며 시작한다. 황정은은 그날 집수리 기술자와 세면대 수리 예약을 잡고 늘상 하던 원고 작업을 하고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을 읽었고 번역서 두 권과 귤을 좀 샀다.
그리고 오후 10시 23분, 계엄을 맞았다. 계엄이라는 단어 뒤에는 '침묵'이 쓰여 있다. 침묵은 그날 모두가 받은 비현실적인 상황으로부터의 충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물음이기도 하다. 12월 3일 당신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 '나는 그때 이랬어. 너는 어땠어?' 라고 묻는 것 같은 침묵으로 <작은 일기>는 시작한다.
광장에서 황정은이 본 것

▲지난 2024년 12월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앞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처벌, 사회대개혁 촉구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응원봉(탄핵봉), 피켓 등을 들고 명동까지 행진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나는 그날 밤 동네 친구들과 야간 풋살을 하고 있었다. 화요일 밤에는 별일이 없으면 동네 친구들과 늘 풋살을 하니까 12월 3일은 화요일이었을 것이다. 잠시 쉬는 틈에 전화기를 보니 이웃에 사는 선배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한밤에 무슨 급한 일일까' 전화를 거니, 선배가 계엄이 났단다. 나는 황당한 농담인 것 같아 깔깔 웃으며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선배는 전화를 끊고 뉴스를 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거짓말처럼 언론사들의 속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 계엄령 선포"
짧은 뉴스 속보 한 자락에 내가 살던 익숙한 세계가 뒤틀려 버린 듯한 비현실감이 몰려들어 나는 얼마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황정은도, 나도, 그리고 아마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느꼈을 침묵을 <작은 일기>는 다시 한 번 불러 온다.
생각해 보면 황정은은 사회에 재난이라는 것이 벌어질 때마다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을 기록해 세상에 글로 내어왔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동료 작가들과 펴낸 <눈 먼 자들의 국가>에서 '가까스로, 인간'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2020년 코로나 사태 시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팬데믹의 일상을 경험하고 있을 때는 <일기>라는 산문집을 냈다. 지난 7월에는 <작은 일기>를 통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부터 2025년 5월 1일까지, 말 그대로 자신의 일기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넨다.
황정은이 파주의 집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광화문의 집회 현장을 오가며 남긴 일기들은 단순하게 윤석열과 내란의 공범들을 구속하고 파면하자는 구호에 함몰되지 않는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작은 일기>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깃발을 들고 저마다의 목소리로 정의를 요구했던 광장에서마저, 사회와 다름없이 발생하고 있는 차별이 있었다.
장애인들이나 성소수자들이 발언할 때면 차별적인 반응들이 나오기도 했고, 유명한 정치인들은 연설을 한다며 집회를 주최하고 운영하는 활동가들의 안내와 요청을 무시하는 일도 잦았다. 뉴스에는 절대 나올 일이 없는 사소하지만 늘상 벌어지는 그런 차별들. 황정은은 소외된 곳에서 나오는 작은 신음도 예민하게 공감하고 기록한다.
나도 계엄에 반대하고 윤석열의 탄핵과 구속을 간절히 바라며 서 있었지만, 윤석열과 그가 초래한 국가 상태를 묘사하려고 '정상'과 '비정상'을 반복해 말하는 몇몇 연설은 집중해 듣기가 어려웠다. 이 사회의 정상성 기준으로 불편과 부당을 겪는 사람들, 소수자들도 여기 있는데 별 조심성 없이 그 말들이 사용되고 있었다. 선 자리가 따끔했고, 뒤쪽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불편함을 말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래도 되는 시간일까.
- p. 13
"서로를 돕고 살피며"... 다정함의 가능성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과 시민들이 지난 1월 5일 눈이 내리는 속에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체포 촉구 행동에 참여하고 있던 모습. ⓒ 정혜경의원실
이런 섬세한 공감은 단지 '소외'에 대해 공감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광장에서 마주쳤던 음식을 나누어주던 시민들,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을 때 나눴던 연대의 포옹들, 황정은은 자신이 마주쳤던 타인들과의 연결을 기록하며 거기서 나오는 희망과 가능성을 절실하게 부여잡는다.
아마도 황정은이 그런 희망과 가능성을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순간은 폭설이 내렸던 1월 4일의 밤과 5일의 새벽 한남동 관저 앞이었던 것 같다. 폭설주의보까지 발령되었던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민들과 활동가들이 은박 담요로 체온을 유지하며 밤을 지새웠다. 이날 아침에는 하얗게 쌓인 눈 탔이었을까, 눈을 더 하얗게 반사시키는 은박 담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폭설과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 때문이었을까. 지금까지 어떤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낯설도록 천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한강진 대첩'과 '키세스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아침 뉴스를 통해 그들을 보았다. 서울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 사람들 몸을 덮은 은박 담요 위로 눈이 쌓여 있었다. 전날처럼 또 누군가는 남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그런 모습으로 밤을 보낼 줄은 몰랐다. 그렇게 다시 서로를 돕고 살피며 밤을 보낼 줄은.
- p.87
<작은 일기>의 후반부인 3월로 접어들어서는 불안과 권태의 정서가 주로 기록되어 있다. 지귀연 판사가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하고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일이 미뤄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황정은은 이 시간의 심정을 "불신과 환멸과 걱정과 불안으로 말라 죽을 것 같은 마음"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아마 매일 광장에 모였든 모이지 못했든, 모든 시민의 마음 역시 황정은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4월 4일 윤석열의 파면 이후로 그도 일상으로 복귀한다.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고, 동생들을 만나고, 안산에 다녀오고, 내란 사태의 기억과 경험을 사유한다. 모든 사람들이 윤석열의 불법 비상계엄이라는 폭력에 관통당한 경험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으로, 광장에서 옆사람에게 자리와 음식을 나누었던 경험과 다시 마주칠 때 그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다정함의 가능성을 낙관한다.
'손상의 책임자들'

▲지난 5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준비하고 있던 조희대 대법원장의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작은 일기>의 마지막 기록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자선거법 위반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5월 1일이다. 아마도 황정은은 <작은 일기>에 4월까지의 일기를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5월 1일 대법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태가 발생해 한 줄의 일기를 추가한다. 내란 사태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 그리고 그 가장 끝에 조희대 대법관을 포함시킨다. 황정은의 표현을 빌리자면 '손상의 책임자들'.
5월 1일 목요일 오후 여덟시 팔분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지귀연, 그리고 조희대
- p.188
이번 추석이 연휴가 유독 길다. 어떤 이들은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연휴를 보낼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혼자 조용한 연휴를 보내기도 할 것이다. 어디든 오가는 길이 짧든 길든 잠깐씩 틈이 난다면 황정은이 보내온 <작은 일기>를 통해 우리가 만났던 광장에 다시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시 간 광장에서 '나는 그때 그랬어, 너는 어땠니?' 라며 황정은이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