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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을이다. 폭염이 물러간 하늘은 한없이 높고 땅은 어느새 식어있다. 아파트에 사는 나는 자연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지만 단독 주택에 사는 한 친구는 작은 정원을 가꾸며 자연과 가까이 지낸다.
친구 말에 의하면 이 즈음엔, 활짝 피었던 꽃들이 떨어져 정원을 뒹굴며 땅과 버무려진다고 한다. 어찌 보면 초라하고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나 이 모습이 다음 해를 기약하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거름 통에 식물들의 잔재를 모은다. 1년 후, 2년 후 거름 통 안의 잔재들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뽀얀 거름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 거름이 새로운 식물을 키우는 밑바탕이 되어주는 것이다.

 울창함 뒤에는 거름이 있다.
울창함 뒤에는 거름이 있다. ⓒ 임혜영

때가 되면 꽃이 지듯 사람도 삶의 최전선에서 물러나는 시기가 있다. 떨어진 낙엽들이 오랜 시간 삭혀져 알찬 거름이 되듯 사람도 일선에서 물러난 후 가족과 사회의 거름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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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꼭 실행하고 싶은 것은 봉사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한 선배는 퇴직 후 십여 년 넘게 노숙자를 위한 봉사를 했다. 노숙자 목욕시키는 일을 일주일에 한 번씩 했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준 적이 있다. 몸을 씻기는 봉사를 다 마치고 집에 왔는데 자기 몸에서도 냄새가 나더란다. 하여 샤워를 깨끗이 하고 나왔는데 그래도 냄새가 남아 있어서 또 샤워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어딘가 모르게 잔향이 있어 세 번째 샤워를 했는데 옆에 있던 아들이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왜 자꾸 샤워를 햐냐고 하여 그때서야 이 냄새가 진짜 냄새가 아니라 생각 속의 냄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자비를 써가며 하는 봉사를 노년의 중요한 목표로 삼았던 선배마저도 노숙자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나 보다. 편견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나의 무지했던 지난 날을 회고하게 된다. 노년에 대한, 노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

다리가 불편하여 의료기기에 의지하거나 지팡이를 이용해 가까스로 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지나칠 때마다 나의 부끄러웠던 옛 모습이 떠오른다. 한때는 철없는 생각에 '왜 나이 든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당신들의 목소리만 높이는가'라며 냉소하였다. '젊은이들도 일자리가 없는데 왜 나이 든 사람들은 물러나지 않고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가'라며 마치 나는 노인이 되지 않을 것처럼 함부로 비판하고 비아냥댔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오만함이었다.

 양분 없이 저절로 자라는 나무는 없다.
양분 없이 저절로 자라는 나무는 없다. ⓒ 임혜영

꽃처럼 화려한 절정의 순간은 찰나처럼 짧기만 하다. 그 후에는 시들고 떨어져 오랜 시간 삭혀지고 분해되어 거름이 되는 식물과 인간이 다를 바가 없을 터이다. 그걸 모르고 마치 나는 평생 활짝 핀 꽃일 줄 알아 노인의 존재가 주는 든든함과 안도감을, 존재 자체의 고마움을 알지 못했다.

거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며 어른들이 일구어 놓은 기반이 있었기에 우리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는 걸 모르고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루고 살아온 줄로 착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전에 살았던 누군가의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젊을 때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만 살았다면 나이 들수록 본질적 질문인 "인간은 무엇으로 살 것인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을 갖기 위해서가 아닌 무엇을 의미 있게 만들며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뒤안길에서는 건강을 잃어 거동이 불편한 분, 소외감이나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노인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 일방적 시혜가 아닌 서로 주고받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노년의 시너지를 자아내고 싶다.

젊은 노인이 늙은 노인을 돌보며 아니,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중 서로에게서 존재의 이유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노인들은 젊은이들의 치기와 만용도 웃으며 수용하고 그들의 행보를 응원해주며 등 두들겨줄 것이다.

잘 분해되고 정화된 좋은 거름이 되어 나무의 영양분이 되고 싶다.

#가을#나무#정원#은퇴#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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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혜영 (yoyeshi) 내방

사회 현안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수학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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