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종종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기도 하지만, 실상 그 시절을 상세하게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어린 날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눈물꽃 소년>이라는 책에서 저자 박노해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눈물'과 '꽃' 그리고 '소년'이라는 세 단어로 압축하여 제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저자가 어린 시절의 세세한 기억까지 소환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흔적들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가 겪었던 그 시절의 일화들이 때로는 내 어린 시절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 적지 않아, 오래 전의 추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저자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아울러 저자가 책의 제목으로 드러낸 '눈물'의 의미와 주변에 널린 '꽃'들과 함께 그 시절의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던 까닭, 그리고 한 '소년'이 살아왔던 힘겨운 시절의 모습을 저자가 안내하는 내용을 더듬어 떠올려보기도 했다.
1980년대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통해 '노동자 시인'으로 등장했던 저자가 오랜 세월이 흘러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는 내용이 이 책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 전남 고흥의 동강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초등학교 졸업까지의 기억을 다룬다.
고흥의 동강은 내가 살고 있는 순천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다. 벌교를 거쳐 고흥으로 접어드는 초입에 있어 간혹 고흥군청이나 녹동항을 갈 때 반드시 지나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고장이기에,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언급한 지명 가운데 일부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곧이어 저자를 정성으로 키우던 할머니까지 돌아가신 상황에 대한 저자의 상실감이 책의 앞 부분에 고스란히 묻어 났다.
두 분의 빈 자리로 인한 어린 저자의 그리움과 상실감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돈을 벌려고 집을 떠나야만 했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 저자의 외로운 처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상황에 놓인 저자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마을 어르신들과 호세 신부님,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주변의 자연 환경 또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환기하는 대상이겠다.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학교에 다니던 형이 방학 때 집에 와서 건네주었던 강소천의 시집을 거듭 읽고, 그의 작품과 닮은 시들을 공책에 남몰래 썼던 저자의 어린 시절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학교 대표로 웅변 대회에 참가하여 많은 상을 타기도 했지만, 상을 타기 위해 선생님이 써준 원고를 보고 "이건 내 말이 아닌디요"라고 말하며 웅변을 포기해야만 했던 내용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나이 많은 먹은 학생의 주도로 친구들에게 홀로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이겨냈던 저자의 대견함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밤늦도록 책을 벗 삼아 읽는 아이에게 촛불을 켜 주던 선생님의 모습을 회상하고, 당시 부끄러움 때문에 고마움조차 전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기억을 떠올리는 저자의 마음도 공감할 수 있었다.

▲눈물꽃 소년, 박노해, 느린걸음, 2024.리뷰 도서의 표지 이미지 ⓒ 느린걸음
그리고 '1시간에 50원'으로 빌려야 했던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 어머니 몰래 저금통에서 돈을 꺼냈던 사건을 떠올리며,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돈 100원을 건네며 자신 앞에서 마음껏 타보라고 했던 아련한 추억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까마득한 시절의 기억들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에, 저자는 이 책에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이처럼 생생하게 풀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된다. 주위의 따듯한 마음을 지닌 이들과 함께 외롭고 힘든 시기를 겪어냈던 저자의 과거는 또한 비슷한 시절을 살아왔던 이들에게 공감을 안겨줄 것이다.
"나의 졸업장은 빛나지 않았다. 눈발 날리는 교정을 돌아보니, 빛나는 나의 길은 학교라는 저 너머에 있는 듯했다. 학교는 그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에게 놀라운 선물을 안겨주었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그날 소년 졸업하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다가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이다. 저자의 어머님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자식의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졸업식 날 저자의 곁에는 부모님 없이 할머니랑 사는 같은 처지의 광선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초등학교 졸업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광선이는 졸업식이 끝난 후 저자에게 다가와 그동안 자신이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비록 부모님이 오시지 못한 졸업식이지만, 비슷한 처지의 광선이가 옆에 있어 저자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광선이와 더불어 장터 국밥 집으로 가서 나중에 갚기로 주인에게 약속을 하고, 저자는 당돌하게 국밥 두 그릇을 부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밥집 주인에게 그런 저자의 모습이 한없이 대견하게 여겨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주인이 흔쾌히 제공한 국밥을 두 친구가 나란히 앉아 먹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 되고 첫 방학 때 신문 배달을 해 번 돈으로 외상값을 갚"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 주인에게 아주머니에게 '동동구르모 한 통' 선물한 사연으로 저자의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거쳐 청소년기로 접어들었으며, 세상에 맞서 살면서 더욱 단단해진 존재로 성장했을 것이다. 저자는 책의 끝에 수록된 '작가의 말'을 통해서, "내가 진정으로 살았구나 기억되는 순간은 영혼의 순수가 가장 빛나던 시간, 삶의 정수만을 살았던 소박하고 순정한 날들"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