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태롭게 외대앞역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문동 주민 권다정(32)씨가 한 손에는 아이의 손, 다른 손에는 유모차를 들고 위태롭게 외대앞역 계단을 오르고 있다. 외대앞역 인천방면 승강장에서 역을 나가는 유일한 길이다. ⓒ 신하섭
"아직도 유아차로 이용할 수 없는 역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주민 권다정(32)씨는 처음 유아차를 끌고 외대앞역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개찰구를 지나 승강장으로 향하는 길에 에스컬레이터도, 승강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1호선 지상 구간인 외대앞역은 권씨와 같은 교통약자에게 사실상 '이용 불가'한 역이다. 역 입구에서 개찰구로 올라가는 길에는 에스컬레이터와 승강기가 설치돼 있지만, 이를 지나 승강장으로 가는 길은 계단 뿐이다. 그나마 지상과 연결된 청량리 방면은 우회해서라도 갈 수 있지만, 인천 방면은 계단을 지나지 않고는 이용할 수 없다. 휠체어 리프트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은 좁은 계단이다.
권씨는 결국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다른 손으로는 유아차를 잡은 채 위험하게 계단을 오를 수에 없었다.

▲유아차는 갈 수 없는 '타는 곳'외대앞역에서 인천방향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유일한 방법인 계단. 좁은 폭 탓에 휠체어 리프트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다. ⓒ 신하섭
불편을 감수하는 '팁'까지 공유되는 현실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외대앞역 일대에는 이문휘경뉴타운 재개발로 젊은 신혼부부들이 대거 유입됐다. 역세권 입지를 믿고 들어온 이들에게 유아차조차 밀고 내려갈 수 없는 역의 현실은 큰 불편으로 다가온다. 맘카페 등에서 "반대 방향 열차를 타고 두 정거장 이동한 뒤, 석계역에서 인천행으로 갈아타라"는 식의 '우회 팁'이 공유될 정도다.
개찰구를 지난 풍경에서 주민들의 불편은 이어진다. 청량리시장에서 장을 본 주민이 손수레를 힘겹게 들고 계단을 오르고,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이 숨을 몰아쉬며 한 칸 한 칸 오르는 모습은 외대앞역의 일상이 되었다.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대앞역은 이름처럼 한국외국어대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학기 초가 되면 큰 캐리어를 든 유학생들이 끙끙대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이 흔하다. 이들에게 외대앞역의 불편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캐리어를 든 학생을 바라보며외대앞역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학기가 바뀌면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한다. 이동권은 노인과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신하섭
20여 년 전 시작된 이동권 투쟁, 여전히 '사각지대'인 외대앞역
교통약자 이동권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것은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고 이후다. 당시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해 한 명이 숨지면서, 전국적으로 승강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을 요구하는 운동이 확산됐다. 지금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상당수 역사는 개선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외대앞역도 여전히 이동권의 '사각지대'다.
2023년 건널목 철거와 함께 외대앞역 리모델링 공사가 있었지만 정작 승강기는 설치되지 않았다. 주민들의 불편이 이어지자, 진보당 동대문구 지역위원회(위원장 오준석, 공동위원장 신하섭)가 외대앞역의 운영 주체인 코레일(한국철도공사)에 질의를 넣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양해해 달라'였다. 현재 기준으로도 계획이나 예산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였으나 해당 역사가 선로 끝단에 있어 승강장 연장이나 승강장과 선로의 위치 변경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구조적으로 개선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승강기 설치나 평면 출입구 추가 등 시설 개선에 어려움이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코레일 답변(2025년 7월 30일)

▲외대앞역 개찰구를 지나며외대앞역 개찰구에는 장애인마크가 선명하지만, 정작 내려가는 길은 교통약자가 통과할 수 없다. ⓒ 신하섭
"강남이었다면 이렇게 방치했을까"
외대앞역은 '영원한 교통약자 이용불가역'으로 남아야 하는 것일까.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권씨는 "여기가 강남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방치했을까요? 코레일과 정치인들의 의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문제는 외대앞역만이 아니다. 인근 신이문역 역시 계단 이용 외에는 방법이 없다. 맞닿아있는 두 역이 모두 승강기가 없으니, 이 근방의 장애인·어르신을 비롯한 교통약자들은 모두 지하철 이용이 어려운 셈이다. 이처럼 코레일이 운영하는 일부 역사에서 교통약자의 이동권은 여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1호선 지하화나 신축 역사 건립 같은 거창한 공약을 내세우지만, 정작 지금 계단 앞에서 멈춰 서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하다. 교통약자가 이용조차 할 수 없는 역, 외대앞역은 그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외대앞역 역사2023년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승강기를 설치하지 않아 여전히 교통약자 이동권의 '사각지대'인 외대앞역. ⓒ 신하섭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진보당 동대문구 지역위원회 공동위원장입니다. 진보당 동대문구위원회에서는 외대앞역·신이문역 승강기 설치를 위해 3200명의 주민서명을 받아 국회와 코레일에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