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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2016년 4월 21일 민변 변호사들의 공익인권변론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팀의 '시선'은 민변 회원들에게 매월 발송되고 있는 '월간변론'에 편집위원들이 기고하는 글입니다. '시선'은 최근 판례와 주요 인권 현안에 대한 편집위원들의 단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은 임재성 변호사(민변 베트남전 진상규명 TF 단장)가 작성했습니다.

 2025. 6. 18. 서울고등법원에서 하미 학살의 피해자 응우옌티탄의 법정진술 이후 대리인과 연대자들과 함께
2025. 6. 18. 서울고등법원에서 하미 학살의 피해자 응우옌티탄의 법정진술 이후 대리인과 연대자들과 함께 ⓒ 한배평화재단
 2025. 6. 23. 대통령실앞에서 진실규명을 호소하는 하미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
2025. 6. 23. 대통령실앞에서 진실규명을 호소하는 하미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 ⓒ 한배평화재단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의 규모는 최초 추정치는 사건(마을)은 130개, 희생자 1만여 명이다. 그 가운데 오직 2개의 사건만이 한국 법원에서 소송으로 다뤄지고 있다. 하나는 퐁니 마을 학살 사건. 피해자 측이 제출한 명확한 바탕으로 사법부에게 '대한민국이 학살을 인정하라'라는 소송이다. 학살 직후 이루어진 주월미군의 조사자료 등으로 퐁니 학살은 1, 2심 모두 승소했다(현재 피고 대한민국의 상고로 대법원 심리 진행 중).

두 번째는 하미 마을 학살 사건. '대한민국이 학살을 조사하라'는 소송이다. 이 글에서 다룰 판결은 1968년 학살만큼이나 비극적인 2025년 서울고등법원의 비정한 판단이다(서울고등법원 2025. 8. 13. 선고 2024누51273 판결). 민변 산하 베트남전쟁 시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TF 소속 변호사들은 한베 평화재단 등 한국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베트남 피해자들을 대리해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1. 2022년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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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2. 24. 한국군은 하미 마을에 진입해 135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살육이 끝나고 밤이 되자 도망쳤던 이들과 주변 마을 사람들이 시신을 겨우 수습했다. 증거를 남겼다고 생각한 걸까? 다음날 한국군은 다시 마을로 들어와 불도저를 수습된 시신 위로 몰았다. 남겨진 이들은 조각난 자식과 부모를 온전히 모아 묻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1999년부터 시작된 한국 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관련 사회운동은 학살과 관련된 피해자들의 진술을 축적했고, 참전군인 증언을 비롯한 여러 증거를 모아갔다. 그리고 2020년 다른 학살 사건에 비해 많은 증거를 축적한 사건인 퐁니 학살의 피해자 응우옌티탄 1인이 원고가 되어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베트남전 관련 베트남 피해자가 참적국에 제기하는 전 세계 최초의 소송이었다.

퐁니 만큼은 아니지만 하미 학살 역시 피해자들의 일관된 진술과 피해자 조직의 활동이 이어졌던 곳이었다. 그러나 '원고 입증 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민사소송을 통해 사법부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그런데 마침 그 시기,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학살 문제와 같은 과거 국가폭력 문제를 조사해 진실을 규명하는 공식기구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를 활용하기로 했다. 하미 학살 피해자 5명은 2022년 4월 '책임 있는 자가 조사해 진실을 밝히라'며 퐁니 학살과는 다른 문을 두드렸다.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이라고 함) 제2조 제1항 제4호(이하 '4호 사건'라고 함)는 진실화해위가 조사해야 하는 사건의 범위 중 하나로 ①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시까지, ②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발생한, ③ 사망ㆍ상해ㆍ실종사건, 그 밖에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을 정하고 있다. 위 사건에 해당하면 같은 법 제22조에 따라 의무적으로 조사를 해야 한다. 1968년 한국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학살 사건인 하미 학살은 시기, 인권침해 주체, 인권침해 양상에 있어서 위 제4호 사건 규정에 정확하게 부합했다.

과거사정리법에 외국인이나 외국 관련 제한(예외) 규정은 전혀 없었다. 베트남 학살 피해자들과 그들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민변 변호사들은 기대했다. 나아가 피해자 측이 모은 증거만을 기준으로 법원이 수동적으로 판단해 학살 여부를 인정하는 것보다, 가해국의 제도와 인력, 예산으로 학살 사실을 조사하고 판단하는 것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에 보다 부합하는 진실규명와 명예회복 방식이기도 했기에, 더욱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진실규명신청 1년만인 2023년 5월, 진실화해위는 하미 학살 피해자들의 진실규명신청에 대해 각하결정을 내렸다. 외국에서 일어난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은 조사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1기, 2기 합쳐 10년 가까이 운용되었던 진실화해위 역사 중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각하한 경우는 없었다. 심지어 피해자가 일본인인 사건을 조사한 사례도 있었다. 한국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한국인이 학살당한 사건은 조사하겠지만,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인 학살 사건은 조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각하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이 시작되었다.

2. 서울행정법원, 진실화해위가 조사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

서울행정법원은 2024. 6. 25. 진실화해위의 각하 결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서울행정법원 2024. 6. 25. 선고 2023구합71872 판결). 법원의 판단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① 과거사정리법 제1조에 입법목적을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통함임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 ② 과거사정리법 제정 당시 국회 본회의 회의록을 보면 입법취지를 '대한민국이 식민, 분단, 한국전쟁, 독재 등의 시기를 거치며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권 등이 침해된 경우 이에 대한 진실규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 ③ 현재 외국인이지만 과거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해외 입양아 사건에 대한 피고의 진실규명 결정 선례는 이 사건 신청과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는 점, ④ 원고들의 주장에 따를 경우 피고의 진실규명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점, ⑤ 대한민국 법이 적용되는 영토적·인적 한계로 인하여 그 조사나 진실규명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거나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할 위험이 존재하는 점, ⑥ 원고들은 과거사정리법에 따른 진실규명 절차를 거치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에 권리구제 등을 신청할 방법이 있다는 점.

피해자들은 깊이 실망했다. 수용할 수 없었고 상급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하였다. 불복의 이유를 담은 항소이유서 중 일부다.

"원심은 제4호 사건 규정을 해석함에 있어서 '외국에서 벌어진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은 배제되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법률해석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문언적 해석(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에 반하는 부당한 축소 해석으로 위법합니다. 또한 과거사정리법 제1조 목적조항이나 입법취지에 비춰봐도 외국인 사건을 배제한다고 해석할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피고가 장기간의 운용되면서 그 기간 중 외국·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단 한번도 이 사건 처분과 같은 각하결정을 내린 경우는 없었습니다. 반대로 외국인에 대해 조사개시결정을 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구체적 선례들은 원심 변론과정에서 각 현출되었음에도 판단이 누락되었습니다."

 2025. 8.13. 서울고등법원에서 하미 학살 사건 행정소송 패소판결 직후 원고 응우옌티탄 화상 인터뷰
2025. 8.13. 서울고등법원에서 하미 학살 사건 행정소송 패소판결 직후 원고 응우옌티탄 화상 인터뷰 ⓒ 한배평화재단

3. 서울고등법원 역시 피해자를 외면하는 판결

"원고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모두 부담한다." 서울고등법원은 2025. 8. 13. 다시 한 번 진실화해위의 조사거부 결정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필자는 피해자 대리인으로 첫 번째 발언을 했다.

"오늘 서울고등법원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도 피해자가 외국인이면, 불법 행위 발생지가 외국이면 국가의 조사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 국적, 불법 행위 지역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왜 이것들이 차별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까?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오늘은 대한민국이 민주화 이후 이루어낸 빛나는 과거사 청산의 역사가 자국민에 한정된 반쪽짜리라는 것이 확인된 날입니다."

원고 중 한 명이었던 응우옌티탄은 베트남에서 영상으로 연결되어 소감을 말했다. 체념 가득한 목소리로 "재판부가 우리 피해자의 일에 너무도 무감하다고 생각한다. 재판 결과에 깊은 실망과 슬픔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무감', 베트남어로 'vô cảm'(보깜)을 강조했다. '감정이 없는 판결'이라는 비판이었다. 그녀는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계속되던 2025. 6. 법정에 직접 출석해 진술하기도 했는데, 그 절절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우리 하미 마을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화해위 조사를 기다렸지만, 위원회 결정은 우리에게 매우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어떤 나라든지 전쟁에 군대를 보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미에서 아무 죄 없는 저희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이 한국군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저는 위원회가 고의적으로 하미 사건을 조사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바람은 크지 않습니다. 그저 저 같은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랍니다. 하미의 고통이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할 역사임을 인정해주세요. 도와주십시오."

그녀는 학살 당시 10세였다. 방공호에서 어머니가 그녀를 꼭 껴안았다. 방공호에 한국군이 던진 수류탄이 터졌고, 그녀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죽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차마 껴안지 못했던 남동생의 시신 옆에서 한참을 있다가 겨우 구출되었다. 전쟁고아로 비참한 삶을 이어갔다. 그녀의 가족과 삶을 파괴한 데 대해, 그 고통에 대해 말할 기회라도 달라는 요구에 서울고등법원은 그럴 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은 비겁했다. 판결문에는 "하미 사건이 대한민국 군인들에 의하여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서 안타까운 일임은 부정할 수 없다", "위 사건의 진실규명과 권리 구제를 위한 국가 차원의 조사 필요성도 상당한 정도로 소명된다"라는 기재가 있다. 이처럼 학살을 인정하고, 조사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정작 결론을 도출하면서도 '지금 제도하에서는 조사할 수 없다'라고 결론을 냈다.

그 근거로 든 것은 1심과 유사했다. ① 과서사법 목적조항에는 '민족의 정통성 확립'과 '대한민국 국민의 통합'이라는 문구가 있고, ② 입법자들이 법 제정 당시에 피해자가 외국인인 경우를 예정했다고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입법자들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실증 자료는 제시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외국인인 사건 조사하면 민족의 정통성이 무너지나? 온전한 법적 논증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결론에 내용을 억지로 맞추고, 무리한 결론을 내려다보니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서 패소 판결문에 '반성'의 내용이 어색하게 들어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4. 비겁함이 염치로 바뀔 순간이 대법원에서 오길 바라며

지독하게 비겁한 판결문은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다. 진실규명 자체의 당위성을 부인하는 이는 드물고, 피해자들에게 안타까움도 표명한다. 그런데 정작 '가해의 책임을 언제 질 것이냐'에 대해서는 온갖 회피와 외면이 등장한다. 비겁한 사회가 비겁한 반성문을 만들었다.

피해자들, 그들과 함께하는 한국의 시민사회, 민변 변호사들은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 불복하자고 뜻을 모았고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1, 2심 모두 진실화해위의 판결이 적법하다 판단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대법원에서 다른 판단이 나올 여지는 크지 않다. 그럼에도 비겁함이 염치로 바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 중 일부는 "학살 피해자가 한국인 아니어서 조사할 수 없다는 진실화해위"(한겨레21 제1570호 2025. 6. 26.), "'하미 학살' 처음 인정한 서울고법, 조사 책임은 인정 안 한 비겁함"(한겨레21 제1580호 2025. 9. 4.) 글을 인용·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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