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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가을 소풍이 시작된 모양이다. 1일 아침 지하철 안이 놀이공원으로 소풍 가는 중학생들로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무거운 출근길에 오랜만에 생동감을 준다.
아이들은 휴대폰을 주시하면서도 한시도 말을 멈추지 않는다. 그 뿜어내는 에너지가 뜨겁다. 주변에 있다 보니 애들의 큰 목소리가 자연히 귀에 들어왔다. 애들의 주고받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아내와 함께 만든 김밥, 소풍김밥의 추억이 떠오른다. ⓒ 이혁진
한 아이가 자기 가방에 김밥이 들어있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이에 친구가 "무슨 김밥? 너 좋겠다"라고 반응했다. 그러나 김밥 학생은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엄마가 자기도 모르게 김밥을 가방에 넣어 귀찮다는 뜻으로 말했다.
먹음직한 도시락 김밥이 그려졌다. 그러면서 김밥 학생의 뜨뜻미지근한 얼굴도 이해됐다. 요즘 학생들은 소풍 김밥이나 먹을 것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용돈을 쥐여주면 현지에서 사 먹을 것이 다양하니 말이다. 나는 김밥 학생의 얼굴을 슬쩍 보며 부모의 사랑과 정성을 잠시 떠올렸다.
소풍 별식, 그 시절의 추억
오래 전 일이지만 우리 시절에도 김밥은 초등학교와 중학 시절 소풍 갈 때 지참하는 '별식'이었다. 아무 때나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여유가 있는 집안 학생은 선생님께 드릴 김밥을 따로 준비했다. 기름을 두른 반짝이는 김밥을 생각하면 군침이 돈다. 소풍 가서 김밥을 내놓고 친구들과 서로 나눠 먹은 기억은 평생 머리에 남아있다. 선생님은 돌아다니면서 각기 다른 아이들 김밥을 품평도 했다.
하지만 집에 사정이 생기거나 형편이 안돼 빈손으로 소풍 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풀이 죽고 서러움을 느꼈다. 이때 사춘기 자존심이 뭔지도 깨달았다. 넉살 좋은 친구는 남의 김밥을 몇 개 빼앗아 먹기도 했지만 김밥을 가지고 오지 못한 아이들은 서로 숨어서 딴 짓을 하거나 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김밥은 먹기 쉬워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김밥은 지금 고급음식으로 대접받고 있다. ⓒ 이혁진
지금 생각하면 김밥을 싸 오지 못하고 배고픔에 울어야 했던 학생들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부족했다. 사실 그럴 여유도 없었지만 어려운 친구들에게 좀 더 베풀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철이 들고 보니 김밥은 먹기 편해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걸 알았다. 소풍 때마다 새벽에 소풍 김밥을 싸주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기도 한다.
소풍 때만 먹던 김밥도 이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으로 발전했다. 김밥은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더니 최근엔 <K팝 데몬 헌터스>에서도 조명 되고 있다. 지금도 나는 김밥을 집에서 가끔 아내와 함께 만들어 먹는다. 사실 어린 시절의 소풍과 어머니 김밥을 추억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김밥 학생이 소풍 가서 맛있게 먹기 바라는 부모 마음에 웃음을 지었다. 오늘따라 지하철 출근길 걸음이 가벼웠다. 나도 소풍 따라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