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택 운영사 (주)아이부키의 입사 1년 차 커뮤니티 담당자, 신주연 주임.
신 주임이 근무하는 (주)아이부키는 사회주택을 운영하고 있다. 사회주택은 '공익성'을 가진 임대주택이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고, 최소 6년에서 최장 40년까지 안정적인 거주 기간을 보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임대업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웬 커뮤니티'하며 의아해 할 수 있지만, 주연씨가 담당하고 있는 '커뮤니티 활성화' 업무는 아이부키의 중요한 정체성이다. 단순히 저렴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입주민들이 공동체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게 아이부키의 목표기 때문이다.
신 주임은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의 얼굴을 알고 윗집과 아랫집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만 알아도, 집이 훨씬 안전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또 이웃 간 갈등이 생겼을 때도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거나 공동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며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이부키 또한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입주민과의 접점을 늘리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꾸준한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사실 저부터가 코로나19를 겪으며 관계의 밀도가 낮아진 것을 느껴요.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가 오히려 새로운 관계를 맺거나 관계의 맥락에 적응하는 것 자체를 피곤하게 느끼는 경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 그게 참 좋고, 특별해서 입사(?)했지만 막상 내가 하려고 하니 참 어려운 주연씨다. 한숨을 푹푹쉬던 주연씨. 그로부터 약 5개월이 지나 "치트키를 만났다"며 "커뮤니티 활성화와 관련해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우람 예술가(왼쪽)와 박기림 예술가(오른쪽)의 프로그램 소개 장면. 두 예술가는 '몸으로 하는 앎 - 투어' 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일상공간에서의 비일상적인 움직임을 통해 공간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표현하고자 기획했다. ⓒ 이뿌리
신 주임이 만난 치트키의 정체는 다섯명의 예술가들이었다. 이근요(미디어 아티스트), 문학진(방송/연출), 박우리(서커스 배우), 이우람(연극), 손혜경(시각/조형) 등 5명의 예술가들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주관하는 예술인 지원사업의 일환인 '예술로 사업'을 통해 아이부키와 만났다.
'예술로 사업'은 10년여 동안 지속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대표적인 예술인-파견지원사업으로, 기업의 이슈에 대해 예술인들이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는 점에서 여타 창작지원과 관련된 사업과 다른 사회적 예술사업의 일환이다.
이들은 예술로 지원사업을 매개로, 아이부키(기업)가 운영하는 청년주택 '안암생활'에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했다. 당연히 방법은 예술이었다. 팀 이름 자체가 '예술이 안암리에(아래 안암리에)'였다.
서울시 성북구에 소재한 안암생활은 기존에 있던 호텔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개인 침실은 비교적 좁은 대신 주방, 스터디 공간, 라운지, 옥상 등 넓은 공유공간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 것이 특징이다. 공유공간의 비중이 남다른 만큼, '안암생활'에서의 커뮤니티 활성화는 더욱 중요한 과제였다.
커뮤니티 활성화를 고민하던 신 주임과 다섯 명의 예술가들은 그렇게 만나 손을 잡았다.
지난 9월 26일, 예술을 매개로 공동주택 커뮤니티 활성화 작업에 나선 예술가 이근요(활동명 '이뿌리', 이하 이뿌리)와 아이부키 커뮤니티 담당자 신주연 주임과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낯설게 보기'가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안암리에팀이 꺼내든 카드는 '낯설게 보기'였다. "예술가들에게는 본능 같은 습관"이라는 '낯설게 보기'는 매일 마주하는 익숙한 공간인 '안암생활'을 의도적으로 낯설게 경험함으로써, 입주민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뿌리 리더는 '내 집 같지 않은' 불편함이 아니라, '입주자'라는 정해진 정체성을 벗어던져,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뎌진 공간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9월 20일 안암생활 지하에서 열린, '원데이 아트 클래스 워크숍(이하 워크숍)'에서는 구체적인 놀이와 활동들을 통해 이를 실제로 구현해냈다.

▲안암생활 공간(지하와 옥상)을 무대로 하는 '도둑과 경찰' 놀이의 한 장면. 안암리에 팀은 이 놀이를 위해 안암생활 곳곳을 마스킹테이프(사진 속 빨란색 테이프)로 붙여, 참가자들을 선 위로만 움직이게 했다. 선 위로만 움직여야 하는 위태로움 속에, 한 참가자는 가뿐 숨을 내쉬며 "이렇게 뛰어본 건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 이뿌리
- 경찰과 도둑 투어 : 팀은 '안암생활' 곳곳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여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입주민들이 오직 그 테이프 선을 따라서만 움직이며 서로를 잡는 '도둑과 경찰' 놀이를 진행했다. 평소 자유롭게 오가던 공간에 새로운 규칙을 부여함으로써, 입주민들은 공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지하고 활용했다.

▲박우리 예술가의 리드로 참여자 모두가 나란히 서서 한발을 들고 오래 버티는 경연을 펼치고 있다. 안대를 쓴 채 균형을 잡는 이곳은 매일 무심코 지나치던 안암생활 복도. 참가자들은 오로지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동원하며 무심코 지나쳤던 복도의 감각들을 하나하나 체험했다. ⓒ 이뿌리
- 조금 이상한 명상의 숲 투어 : 서커스 기반의 예술가, 박우리씨가 안대를 쓴 채 소리와 향기에 집중하며 균형을 잡는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시각을 차단하자 무뎌졌던 다른 감각들이 깨어났고, 입주민들은 익숙했던 공간의 소리와 냄새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 공정 안암생활 투어 : 한 사람이 특정 공간(예: 화장실)에서 할 법한 행동(예: 씻는 행위)을 표현하면 다른 사람이 어떤 공간인지 맞추는 활동도 있었다. 정답과 오답을 말하는 과정에서, 공간과 행동의 당연한 연결고리를 의식적으로 분리하고 재조합해보는 경험을 제공했다.
일련의 활동들 덕분에 입주자들 간에는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지고 유쾌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처음 만난 입주민과 예술가들은 '도둑과 경찰' 놀이와 같은 신체 활동에 몰입하며 어린아이처럼 공간을 뛰어다녔다. 이뿌리 리더는 "적은 참여 인원 탓에 분위기가 어색할 것을 우려했으나, 모두가 활동에 깊이 몰입한 덕분에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고 회상했다.
워크숍에 참여했던 입주자 김동휘씨도 '도둑과 경찰' 놀이가 재밌었다며 소감을 전했다. 그는 "사실 지하 1층과 2층은 공용공간으로서 자주가기는 하지만 그냥 볼 일만 보고 오는 공간이었다."며 "해당 공간들을 천천히 걸어볼 기회도 없었고, 뛰어다녀볼 기회도 없었는데 오랜만에 몸으로 게임을 해서 재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원래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서 "참여 전까지는 걱정도 많이 했지만, 막상 참여해보니 그렇게 부담스럽지도 않았고 예술가분들이 분위기도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앞으로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꼭 참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경계가 무너진 것은 입주민들만이 아니었다. 워크숍에서 터져 나온 유쾌한 에너지는 건물 내 카페까지 퍼져나갔고, 이를 지켜보던 손님들 역시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스스럼없이 활동에 합류했다. 이는 '참가자'와 '구경꾼'의 경계를 허물고, 공식적인 초대 없이도 이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예술로 연결하는 커뮤니티를 기대하며
이뿌리 리더는 "사실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가 반드시 예술가만 할 수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닐 것"이라면서도 "다만 예술가에게는 더없이 익숙한 창작의 과정이, 무관심과 침묵에 길들여진 공동체에 신선한 자극이자 관계를 회복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예술가들이 가진 고유의 역량이 사회 곳곳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데 더 많이 쓰이기를 기대해본다"고 전했다.
아이부키 역시 워크숍 과정에서의 즐거운 경험을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하지 않고, 커뮤니티 활성화 전략에 예술적 접근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갈 예정이다.
우선은 '웰컴라이프키트'라 불리는 NFC 키링 제작으로 구체화해 볼 예정이다. 웰컴라이프키트는 '안암생활' 입주민들에게 제공되는 열쇠고리 형태의 소품으로, 호텔을 개조에 만들어진 안암생활의 특징을 살려 입주민을 여행자로 설정. '환대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아 클로버 형태로 완성된다. NFC 키링을 통해 스마트폰을 접촉하면 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진 영상 콘텐츠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김동휘 씨가 만든 영상처럼 입주민들이 직접 만든 소소한 '생활 매뉴얼'(안암생활의 ▲공용주방 ▲세탁실 ▲옥상정원 ▲라운지 등 안암생활 공용공간 사용법 등)을 영상콘텐츠로 만들어, 키링 안에 담는다는 계획이다.
신주연 주임은 키링에 대해 "단순한 소품을 넘어 공동체적 의미를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입주민들이 같은 키링을 소지함으로써 동일한 생활권 안에서 무의식적인 소속감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고, 패션 소품처럼 지니고 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 속 입주민들 간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촉진하길 바란다"며 기대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연희문고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