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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청년들은 제한급수 사태를 겪으면서 깨달았다. "우리 마음속에는 물을 아끼기 싫어하는 데몬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늘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리라 믿고, 변기를 내릴 때마다 얼마나 많은 물이 흘러가고 있는지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이 '보이지 않는 데몬'을 퇴치하기 위해 모인 청년들이 바로 '토일렛 데몬 헌터스(ToDeHun)'다. 목적은 단순했다. 시민 속에 숨어 있는 무심한 습관을 드러내고, 낭비되는 물의 양을 눈으로 확인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먼저 선택한 무대는 일상에서 가장 많은 물이 쓰이는 곳, 집 안의 화장실 변기였다.

시민이 직접 변기 물 사용량을 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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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데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집 변기의 물 사용량을 직접 측정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단순히 손잡이를 누르는 행위였지만, 실제로 물통과 계량컵을 들고 확인해 보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우리 집 변기는 9리터짜리더라고요. 다른 집보다는 조금 적게 나왔지만, 그래도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물이 빠져나간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우리 집 변기 물사용량 측정 강릉 청년 모임 ‘토일렛 데몬 헌터스’의 한 멤버가 변기 물 사용량을 직접 측정하는 모습. 평소 무심코 쓰던 변기의 물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지 눈으로 확인하는 실험이다.
우리 집 변기 물사용량 측정강릉 청년 모임 ‘토일렛 데몬 헌터스’의 한 멤버가 변기 물 사용량을 직접 측정하는 모습. 평소 무심코 쓰던 변기의 물이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지 눈으로 확인하는 실험이다. ⓒ 한무영

김아무개(26, 대학생)씨는 실험 후 이렇게 말했다. "직접 측정해 보니 한 번에 너무 많은 물이 소비된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숫자로 확인하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물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게 됐습니다."

"나도 설치하고 싶다" 시민 반응

실험 소식은 가족과 이웃에게도 큰 반향을 불러왔다.

"절수형 변기를 사려면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하니? 나도 당장 바꾸고 싶다."

한 어머니의 질문은 곧 시민들의 공통된 고민을 드러냈다.

이웃 주민도 말했다.

"수도요금이 무섭게 오르는데, 절수형 변기로 바꾸면 조금이라도 부담이 줄지 않겠어요? 그런데 정작 가게에 가도 어떤 변기가 1등급인지 알 수가 없어요."

토데헌 청년들은 간단한 계산으로 절약 효과를 설명했다. "9리터짜리 변기를 4리터짜리 1등급으로 바꾸면 한 번에 5리터가 절약됩니다. 1인 하루 8번 사용하면 40리터, 4인 가족이면 하루 160리터가 줄지요. 한 달이면 4.8톤 절약이고, 상하수도 요금으로는 약 1만~1만5천 원 절약 효과가 있습니다."

해외는 이렇게 한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절수형 변기가 이미 '기본값'이 되어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WaterSense 제도를 통해 1회 4.8리터 이상 물을 쓰는 변기는 판매를 금지했다. 소비자는 변기를 살 때 "절수형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EPA는 인증받은 모델 6천 개 이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누구나 내려받아 비교할 수 있게 한다. 일본과 유럽도 국가 차원에서 절수형 기기 보급률을 높이고, 인증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한다.

한국 제도의 허점

반면 한국은 절수등급 제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소비자가 직접 활용하기는 어렵다. 변기 본체에는 등급 표시가 없고, 포장이나 설명서에만 표시가 가능해 설치 후에는 확인할 수 없다. 인증 제품 목록도 공개되지 않아 소비자는 '깜깜이 상태'에서 선택해야 한다.

또한 성능이 변하지 않는 변기에 대해 3년마다 재인증을 요구해 중소기업에는 불필요한 부담을, 소비자에게는 높은 가격을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절수형 변기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정보 공개와 수요 관리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급 측 대안인 해수담수화나 대규모 저수지 확충도 필요하지만, 변기 교체처럼 비용이 적고 효과가 빠른 수요 관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민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강릉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물 절약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믿을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절수형 변기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투명한 제도죠."

강릉의 제한급수는 끝났지만, 절수의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청년들의 작은 실험에서 시작된 질문은 결국 제도의 허점과 국제적 비교로 이어졌다. "왜 우리는 절수변기를 쉽게 살 수 없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물 절약 정책은 더 효과적이고 더 시민 친화적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카드뉴스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link24.kr/8pgwrVl

#물절약#수요관리#절수형변기#강릉물부족#토일렛데몬헌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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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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