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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늦더위가 남은 오후, '기후정의로 광장을 잇자'는 구호 아래 3만여 명이 모였다. 피켓 문구는 달랐지만 질문은 하나로 귀결됐다. "누가 만들고, 누가 피해를 받는가."

 '나는 선거 공보물을 온라인으로 받겠습니다' 캠페인 활동가
'나는 선거 공보물을 온라인으로 받겠습니다' 캠페인 활동가 ⓒ 김주영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ESC)의 연구자들이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고 행진에 섰고,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과학교사들도 "자연권을 인정하자"라며 함께 발을 맞췄다. 기후위기를 '수치와 그래프'로만 다루던 전문가 집단이 정치·사회적 언어가 넘쳐나는 거리 시위에 합류한 모습은 오늘날 기후운동이 얼마나 다층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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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린 말은 "개인의 선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였다. 오스트리아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와 스위스 대기·기후과학연구소 등이 공동 발표한 연구(Nature Climate Change, 2025)는 상위 10% 부유층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3분의 2를 배출하고, 100여 개 다국적 기업이 전체 배출의 71%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반대로 저소득층은 냉방·보험·안전망 접근성이 낮아 폭염과 홍수에 취약하다. 피해 비용도 결국 이들에게 집중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올해 여름 경기도에서는 고령층 중심으로 폭염 사망자 5명, 온열질환자 829명이 발생했고, 306명이 기후보험 혜택을 받았다. 매년 늘어나는 폭염 취약층에 맞춰 정부 예산이 더 투입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분리수거·대중교통 이용 같은 개인 실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즉, 시스템(에너지·산업·토지·교통)의 근본적 전환 없이는 지구 온도계의 눈금도, 불평등의 곡선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광장에 팽배했다.

독일에서 2만4천여 명을 5년간 추적한 패널 연구는 기후 시위가 참가자뿐 아니라 비참여 대중의 인식과 정책 선호까지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Nature Communications, 2024; WZB Berlin Social Science Center, 2023). 이는 집단행동이 단순한 외침을 넘어 정치적 학습을 촉발한다는 의미다.

 9.27 기후정의행진 광장 현장
9.27 기후정의행진 광장 현장 ⓒ 김주영

광화문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농민은 기후재난으로 인한 식량·소득 위기를, 청소년은 "대한민국이 100년도 못 버틸 수 있다"고 호소하며 생애 불평등과 미래의 권리를 말했고, 종교인은 생명의 존엄과 돌봄의 윤리를, 장애인·성소수자 단체는 접근성과 안전의 권리를 강조했다. 과학자들은 탄소예산과 전환 시나리오의 물리적 한계를 제시했다. 서로 다른 언어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여드는 장면은 집단행동의 사회적 학습 효과를 실감하게 했다.

올해 조직위가 진행한 '기후정의를 가로막는 걸림돌' 현장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의제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규탄이었다. 조직위는 성명을 통해 "팔레스타인 해방은 기후정의의 일부"라며, 전쟁이 생태학살·온실가스 배출·유독물 오염을 동반하는 재난임을 지적했다.

연대의 외연 확장은 분명 타당하다. 그러나 대중의 직관은 기후정의를 탄소·에너지·산업 전환과 동일시한다. 전쟁 이슈가 1순위 걸림돌로 부상하는 순간, 일부는 "환경 운동이 변질됐다"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동일한 논리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후·환경 피해를 왜 논의하지 않느냐는 의문도 생긴다.

따라서 향후 조직위는 핵심(감축·전환), 연결(불평등·안전망), 연대(전쟁·인권)라는 메시지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광장이 넓어질수록 메시지의 초점도 더욱 뚜렷해야 한다.

행진이 남긴 것

9.27 기후정의행진은 세 가지 사실을 확인시켰다. 첫째, 기후위기는 불평등 구조의 문제라는 것. 둘째, 집단행동은 변화를 촉발하는 사회적 에너지라는 것. 셋째, 실제 변화를 위해선 일반 대중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

이재명 대통령은 사흘 전인 9월 24일 뉴욕 유엔총회에서 "민주주의와 평화 없이 기후위기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에너지 효율 개선, 재생에너지 확대, 책임 있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제출을 약속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 대통령이 민주주의·평화와 기후위기를 직접 연결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녹록지 않다. 광장에서 기자가 만나 본 행진 참가자들은 많은 정치인들이 현장에 나와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동안 주요 기후 시위에 모습을 드러냈던 여당 인사들은 이번에 보이지 않았다. 보수 정치권 역시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합법적 기후정의 행진에 정부와 국회 관계자들이 부재했다는 사실은, 정치권이 여전히 초당적 기후정책 논의에 준비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광장은 넓어졌다. 그러나 메시지는 더 정교해져야 한다. 대통령의 연설이 국제무대의 수사로 끝나지 않으려면, 위정자들은 시민의 요구를 제도화해야 한다. 기후정치는 정권 교체의 변수가 아니라, 국가 존속의 변수다. 민주주의와 평화 없는 기후정의는 없으며, 정의 없는 기후정책은 지속될 수 없다.

 9.27 기후정의행진의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참가자들
9.27 기후정의행진의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참가자들 ⓒ 김주영

 기후정의 가로막는 걸림돌 시민투표 현장
기후정의 가로막는 걸림돌 시민투표 현장 ⓒ 김주영

 기후정의 행진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
기후정의 행진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 ⓒ 김주영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네이버블로그(지구별시골쥐)에도 실립니다.


#기후정의#기후정의행진#기후변화#기후위기#환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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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jootime) 내방

現) 프리랜서 기자/에세이스트 前) 농식품부 2030자문단 /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 농촌진흥청 KOPIA 볼리비아 / 환경재단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태국 / (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 (졸)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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