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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책, 영화, 드라마, 여행,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꼭 챙기면 좋은 ‘필수템’을 소개합니다. 가족·친지와 함께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긴 연휴에 어울리는 추천 콘텐츠와 함께 더욱 풍성한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추석을 1주일여 앞둔 9월 28일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입구가 성묘객들 차량으로 붐비고 있다.
추석을 1주일여 앞둔 9월 28일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입구가 성묘객들 차량으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오랜만에 긴 연휴가 찾아왔다. 이 기회를 맞아 해외여행을 가거나 혹은 국내 휴가지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특별히 어디에도 가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혹은 홀로 진득하게 휴식을 취하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느긋하게 쉬겠다는 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겠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당연히 유흥거리는 필요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드라마다.

특히나 이번에는 이미 여러 시즌 방송된 장기 시리즈가 제격이다. 그런 드라마들은 언젠가 보겠다고 마음먹어도 휴일이 이렇게 길지 않으면 완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겪었을 것이다. 야근에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켜도 잠들기를 반복했던 일을. 그러다 시청의 흐름이 끊기면 나중에는 다시 보려고 해도 등장인물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던 순간을.

명절 연휴에 추천할 드라마에는 몇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연휴 내내 혼자 있겠다면 별로 상관이 없지만 가족이나 친척들과 며칠이라도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누군가 불쑥 내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훔쳐보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불쾌하고 매너 없는 행동이라는 건 현대인의 상식과 같지만 솔직히 어린 조카나 어르신들이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으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때문에 도파민을 쫓아 자극적이고 선정성이 가득한 드라마를 보다간 서로 민망한 순간을 각오해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내 지인 중 한 사람은 명절에 잔인하고 자극적인 것으로 유명한 <왕좌의 게임>을 몰아서 보다가 어린 조카가 노트북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걸 뒤늦게 깨닫고 기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재미있지만 누가 봐도 민망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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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느라 지나치게 건전하고 잔잔한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작품이 취향에 맞으면 상관없겠지만 반대로 아무런 자극이 없으면 지루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지나가면서 흘깃 봐도 별문제가 안 되지만 동시에 적당한 자극을 주는 그런 균형을 맞춘 시리즈물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드라마를 알고 있다. 바로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이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선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볼 수 있다. 이 시리즈는 2021년 방영을 시작했고 거의 매년 새로운 시즌이 나왔다. 매 시즌이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시즌 5가 절반 정도 공개되었다. 즉 긴 연휴에 소화하기 적당한 수준으로 길다.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온리 머더스 인 더 빌딩>(Only Murders in the Building)인데 한국인이 보기에는 직관적이지도 않고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난감하다(아마 이런 이유로 한국어 제목을 새로 지은 듯한데 무척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살인'과 '건물'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드라마는 뉴욕의 오래된 아파트 '아코니아'를 배경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며 주인공 삼인방이 범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살인자를 찾는 추리물이 이 드라마의 뼈대를 이루기에 누가 범인일까 궁금증이 계속 자극된다.

또한 주인공들이 자신을 찾는 것을 아는 범인도 나름의 대응을 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긴장감이 발생한다. 특히나 주요 사건들이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서스펜스는 훨씬 강화된다. 위기가 발생해도 빠져나갈 곳이 거의 없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두운 이야기지만 인간적인 웃음과 함께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 ⓒ 디즈니플러스

살인, 추적, 위협까지. 이렇게만 적으면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는 아주 잔혹하고 자극적인 추리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겠다. 특히 방송보다는 높은 심의 등급을 받는 데에 눈치를 덜 보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이 무수히 만든 그런 드라마들처럼.

하지만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는 코미디이기도 하다. 그것도 날카롭고 어두운 코미디가 아니라 따스하고 온정적인 코미디. 이 드라마의 플랫폼인 디즈니가 주로 추구해 온 가족적인 코미디에 가깝다. 물론 살인범이 등장하는 드라마이니 인간성의 극단적이고 어두운 면을 아예 다루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는 그런 측면을 더욱 음험하고 자극적으로 부풀리기보다 담담하고 보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고자 노력한다.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는 따스한 코미디와 긴장감 넘치는 추리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드라마다. 온화하지만 그 분위기 속에서 냉혹한 사건이 벌어지고 유쾌하지만 그 뒤로는 팽팽한 긴장감이 조여 온다. 이런 성격이 혼재된 개성 덕분에 이 드라마는 끔찍한 사건을 다루지만 전반적인 묘사에서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톤을 보인다.

내가 시청하는 걸 누군가 지나가면서 힐끔 쳐다봐도 전혀 부담이 없지만 동시에 충분한 자극을 주며 시청자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작품인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 드라마는 만듦새와 출연진들의 연기력도 출중하다. 에피소드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짜임새 넘치는 묘사와 지루할 틈이 없는 삼인방의 앙상블 연기가 펼쳐진다.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앞서 나는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가 추리물이지만 동시에 온화한 코미디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 온정적인 태도를 주인공 삼인방을 향해서도 보인다. 사실 주인공 삼인방은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그다지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찰스 헤이든 새비지는 90년대에는 잘나가는 배우였지만 드라마 시점에선 한물간 배우다. 올리버 퍼트넘 역시 한때 잘나가던 연출자였지만 현재는 누구도 일을 주지 않아 월세조차 버거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 노년의 두 주인공에 비해 젊은 캐릭터인 메이블 모라의 상황이 나아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메이블은 과거의 트라우마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리고 작중에서 발생한 사건이 메이블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데 벽이 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발을 삐끗하여 넘어진 상태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찰스와 올리버는 노년의 캐릭터다. 더 이상 변하고 발전할 것도 없이 마무리만 남은 시기라 세상 사람들이 여기는 그 노년 말이다. 하지만 변화와 성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시기란 없다.

찰스와 올리버 그리고 메이블은 과거의 과오와 현재의 좌절에도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 과정에서 다시 실책을 저지르고 배신을 당하며 좌절하길 반복하지만 동시에 그런 사건들을 계기로 더욱 성숙해지고 성장하기도 한다. 또한 삶의 많은 변화를 겪기도 한다. 앞서 나는 이 드라마가 가족적인 코미디에 가깝다고 했는데, 이 드라마는 성격도 세대도 전혀 겹치지 않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세 캐릭터가 마치 가족처럼 뭉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올해 추석은 10월이다.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가을을 알리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이렇게 해만 지나는 것 같아 우울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연휴 동안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를 보며 찰스와 올리버 그리고 메이블을 만나보길 바란다. 삶에 늦은 시기란 없고 우리는 언제든 성장할 수 있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연휴 이후에 다시 달릴 수 있을 만큼 마음을 회복할 것이다. 이 드라마를 추천하는 마지막 이유다.

#아파트이웃들이수상해#디즈니플러스#추석#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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