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독일 공정여행 중이던 동백작은학교 청소년들은 본 여성박물관을 찾았다. 1981년 마리아네 피첸과 여성 활동가들의 손으로 세워진 이곳은 세계 최초의 여성박물관으로, 지금까지 700건이 넘는 전시를 이어오며 여성 인권과 사회적 역할을 조명해온 여성사의 중요한 무대다. 그날 학생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소녀상이 마침내 박물관 내부 정원에 영구 전시된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바로 이 공간에서 지난 6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소녀상이 마침내 내부 정원에 영구 전시되었다. 드레스덴에서 최초 전시된 이후 여러 도시를 떠돌던 소녀상이 본 여성박물관의 사유지에서 비로소 안착하게 된 것이다.
소녀상 앞에서 청소년들은 '바위처럼' 몸짓으로 짧은 집회를 열었다. '바위처럼'으로 보여준 몸짓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본여성박물관 소녀상 앞에서 '바위처럼'몸짓공연을 펼치고 있는 동백청소년들 ⓒ 이임주
마리아네 피첸 관장은 학생들을 맞이하며 말했다.
"우리 박물관의 핵심 주제는 여성을 향한 폭력과 그것에 맞서 싸운 여성들입니다.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또한 그는 일본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소녀상을 지켜낸 자부심을 강조했다.
"일본의 항의가 거셌지만, 우리가 소녀상을 이곳에 영구 전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이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기억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답사가 아니었다. 학생들은 미리 여성박물관을 공부하고, 현장에서 퍼포먼스를 준비했으며, 피첸과의 대화를 통해 연대의 의미를 체감했다. "책에서만 배우던 역사가 눈앞에 서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작은 행동이지만 세계와 연결될 수 있었다"는 학생들의 소감은 이번 경험이 얼마나 큰 울림이었는지 보여준다.
역사적 진실을 잊지 않고 기록하며 예술과 행동으로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몸소 확인한 것이다. 교육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소녀상을 영구보존키로 한 본여성박물관 관장 마리아나피첸과 함께 ⓒ 이임주
동백청소년들은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 기억의 자리에 함께 서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몸짓 '바위처럼'은 단순한 몸짓이 아닌 수요시위의 역사와 함께 해 왔던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역사의 몸짓이기도 하다.
본 여성박물관 한 켠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전시가 되어 있었고, 여성박물관의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독일 본 여성 박물관에 '위안부'피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이임주
그러나 모든 공간이 이렇게 기억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베를린에 세워진 소녀상은 지금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2020년 베를린 미테 구 유니온 광장에 설치된 소녀상은 독일 공공장소에 자리한 최초의 '위안부' 기림비였지만, 일본 정부의 반복된 항의와 허가 기간 만료 문제로 구청은 철거 명령을 내렸다. 지난 9월에는 철거 불이행 시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경고까지 내려지며 위기가 고조되었다. 시민단체의 법적 대응으로 일시적 유예는 얻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다.
본에서 만난 소녀상과 베를린의 위기를 나란히 떠올리면, 기억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싸움인지 알 수 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힘은 지금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동백청소년들은 계속 질문을 던진다. 누구의 기억이 지워지고 있는가, 그 기억을 담을 공간은 어떻게 확보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실천으로 이어갈 수 있는가.

▲본여성박물관에 영구전시된 소녀상 앞에서 ⓒ 이임주
소녀상 앞에서 나눈 동백청소년들의 몸짓은 작았지만, 그 몸짓이 모여 역사를 바꾸는 물결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는 이런 잔혹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문화 속 곳곳에서 우리의 반성과 성찰이 일어나는 예술적 공간과 기념비가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 법적 배상이 조속히 이루어지길 바라며, 행동과 실천으로 마음을 모으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독일 본 여성박물관의 영구전시된 소녀상 앞에서 펼쳐진 몸짓 '바위처럼'
이임주
덧붙이는 글 | 동백작은학교는 제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 인권,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청소년 민주시민 교육 공동체이다. 제주 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14세~19세의 청소년들이 함께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고 실천하며 따뜻한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평등한 통합교육을 지향하고 있으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배움이 즐거운 '학교를 넘어선 '학교를 꿈꾸는 학교이다. 2021년 3월에 처음 문을 열었으며, 전국에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https://www.dongbaekscho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