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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셀 참사 책임자들의 형사 재판 1심 판결문.
아리셀 참사 책임자들의 형사 재판 1심 판결문. ⓒ 오마이뉴스

아침에 집에서 일터로 향한 소중한 가족이 남은 가족의 품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 아리셀 참사 책임자들의 1심 판결문 중

245쪽. 출근길이란 일상을 영원한 이별이란 비일상으로 만들어버린, 아리셀 참사 책임자들의 1심 판결문 쪽수다. 별지를 제외하고도 198쪽에 이른다.

수천, 수만 쪽의 판결문이라 한들, 말할 수 없게 된 고인 스물세 명과 할 말을 잃은 여러 유족의 한을 다 담을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판결문에 담긴 "엄중한 처벌"의 까닭은 주목할 만한 문구로 채워졌다.

특히 형량을 결정하는 '양형 이유' 부분이 15쪽에 달했다. 대부분 아리셀 회사(벌금 8억 원), 그리고 부자 관계인 박순관 대표(징역 15년), 박중언 총괄본부장(징역 15년 및 벌금 100만 원)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재판부는 산업재해 사건에서 "과실"이란 이유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부과하는 경향"을 지적하며 이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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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근로자들이 사망한 사건에서조차 가벼운 형이 선고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높은 법정형의 처벌 규정을 둔 의의가 무색하게 된다.

재판부는 "합의가 되었다는 이유로 선처를 받게 되는 선례" 또한 꼬집었다. 그러한 합의가 "사망해 어떤 의사표시도 할 수 없는 고인의 의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밝히며 말할 수 없게 된 스물세 명 고인의 의사를 간접적으로나마 대신 전했다.

기업가는 평소 매출 증가에 온 힘을 쏟는 반면 근로자들의 안전·보건에 관한 부분에는 비용을 최소화해 이윤을 극대화해 오다 막상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족과 합의를 시도한다. 유족은 막다른 길에 몰려 생계 유지를 위해 선택의 여지 없이 합의에 이른다. (중략) 이러한 악순환을 뿌리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지난 9월 23일 "징역 15년" 선고 직후 법정에서 "악!" 소리를 내며 얼굴을 감싸쥔 박순관 대표는 이틀 만에 항소했다. 유족들은 선고 후 법원 앞에서 "희생자 1명당 징역 1년도 안 된다"며 "항소심(2심)에서 죗값을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싸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1심 재판부(수원지법 제14형사부, 재판장 고권홍 부장판사, 강동관·류호정 판사)의 판결문 중 아리셀·박순관·박중언의 '양형 이유'를 그대로 전한다.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 23일 오후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징역 15년 형량은 너무 적다"라며 "항소심에서 죗값을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끝까지 싸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 23일 오후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징역 15년 형량은 너무 적다"라며 "항소심에서 죗값을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끝까지 싸워 나가겠다"고 밝혔다. ⓒ 유성호

※ 1심 판결문 '주문' 및 '양형 이유'

<주문>

[박순관] 피고인을 징역 15년에 처한다.
[박중언] 피고인을 징역 15년 및 벌금 100만 원에 처한다.
[아리셀] 피고인을 벌금 8억 원에 처한다

<양형 이유>

[피고인 박순관, 박중언, ○○○·□□□·△△△(모두 아리셀 직원 - 기자 주)에 대한 공통된 양형 이유]

사람의 생명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본이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이다. 사람의 생명은 그 연령이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고, 그 자체로 존엄한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보호되고 존중받아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결과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회복될 수 없다는 점에서 사망의 결과를 야기한 범죄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사건 화재 사고로 23명이 사망하고 9명이 상해를 입었는바, 범행으로 인한 결과가 매우 중하여 이에 상응하는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하다.

이 사건 공장이 전소되고 난 이후 감식을 위하여 이 사건 화재 현장을 촬영한 사진에 나타난 피해자들의 유해는 형체를 갖추고 있지 아니하여, 피해자별로 신원을 확인하여 시신을 수습하기조차 어려웠다.

피해자들에게는 대부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다. 부부, 자매 또는 이종사촌이 함께 사망하는 등 가까운 친족이 동시에 사망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 화재 당시부터 현재까지 피해자들의 유족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것으로 보이고, 재판 과정에서 그 피해의 중대성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피해자 김○○, 최○○, 주○○의 유족, 강○○, 강△의 일부 유족이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이 사건 화재로 사망한 피해자들 중 20명이 파견근로자이다. 피고인들은 아리셀에서 파견근로자들을 고용한 이유는 인력난과 수주 실적에 따라 인력 수요가 달라지므로 생산직 근로자들을 직접고용하기 어려웠다는 것이고, 이러한 현실은 다수의 영세 제조업체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그러한 문제가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원론적인 측면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사건 화재 무렵 아리셀이 다수의 파견근로자들을 공급받은 이유는 아리셀이 수주한 군납 전지에 대하여 요구되는 품질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품원으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았고 그로 인해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으며 점점 다가오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하여 일 5,000개씩으로 생산량을 급작스럽게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사건 화재 발생 무렵 아리셀에서 공급받는 파견근로자들이 급증하였고 아리셀에서 근로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은 파견근로자들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결국 이 사건 화재의 피해자들 대부분이 파견근로자들이 된 이유는 사회구조적인 측면보다는 피고인들이 스스로 야기한 측면이 훨씬 크다.

근로자들의 사망 자체도 중대한 결과이나 '파견근로자들'의 사망을 특별히 지적하는 이유는 그것이 파견법의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가 실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파견법 제5조 제1항에서 직접생산공정업무를 근로자파견사업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이유가 여럿 있지만 그중 하나는 제조업의 특성상 근로자가 각종 공정기술을 습득하고 전문적인 설비를 취급하여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숙련되지 못한 파견근로자가 업무의 내용이나 작업 환경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업무에 투입될 경우 사고가 발생하거나 작업의 안정성·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헌법재판소 2017. 12. 28. 선고 2016헌바346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이 사건에서 화재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제조상의 결함이 내부 단락을 야기한 것은 분명하며 그것이 비숙련 파견근로자들을 다수 투입한 결과에서 기인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정규직이 아닌 파견근로자들이 투입되고 잦은 인력교체가 있었던 이유로 안전보건교육과 소방훈련이 내실 있게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분명하므로 파견법이 금지하는 불법파견과 피해자들의 사망의 결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파견근로자들 중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언어적인 문제로 전문용어가 포함된 업무 교육 및 안전보건교육과 소방훈련을 내실 있게 실시하는 것이 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견근로자들이 평소에는 드나들 수 없게 보안장치가 된 곳에 비상구로 가는 통로가 위치하였다는 점이 파견근로자인 피해자들이 사망하게 된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으므로 이 사건에서 파견근로자들의 사망을 특별히 엄중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 사건 화재의 정확한 세부적인 원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으나, 리튬을 사용한 전지의 폭발 위험성은 여러 사례를 통해 사회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고 아리셀에서는 이미 여러 번 폭발 사고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이 사건 화재 직전에는 선행 폭발 사고라는 중요한 전조증상이 있었고, 이러한 사고가 있었다면 동일 로트에서 생산된 전지에 대한 후속 공정을 중단하도록 하는 것이 그렇게 높은 주의의무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보이지도 않는다. 2024. 6. 22. 생산된 전지의 개수는 많아야 18개의 트레이 1152개의 전지에 불과하여 아리셀의 생산능력에 비추어 낭비되는 전지가 많은 것도 아니다.

 아리셀 참사 다음날인 지난해 6월 25일 오전 공장의 모습.
아리셀 참사 다음날인 지난해 6월 25일 오전 공장의 모습. ⓒ 연합뉴스

그럼에도 아리셀은 생산량을 맞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안전에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돌아보지 아니하고 아무런 대비도 없이 생산 공정을 계속하였다. 그로 인한 참혹한 결과는 피고인들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온전히 부담하게 되었다. 이 사건 화재 이후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확인된 이 사건 공장 3동 2층 작업장의 모습을 보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전지를 등 뒤에 두고 막다른 곳에서 작업하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위험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불안감은 피고인들이 아리셀을 운영하며 이 사건 화재 발생 전에 느꼈어야 하는 불안감이고 이러한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고 근로자들을 방치하는 것이 바로 안전불감증이다. 피고인들이 스스로 또는 피고인들의 가족이 화재가 발생한 작업장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면 어쩌면 그러한 불안감을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피고인들이 직접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마치 그러한 작업을 자신들이 하는 것과 같이 위험에 대비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근로자들을 위한 안전보건관련 법령을 제정한 목적이고 리튬 1차전지 생산근로자들의 상급자들이 부담하는 업무상 주의의무이다.

그동안 산업재해로 근로자들이 사망한 사건들에 있어서 고의범과 달리 업무상과실치사죄와 같은 과실범에 대하여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부과하는 양형의 경향이 있어왔고, 근로자의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의 경우에도 양형에 있어서는 과실범에 준하여 취급하여 왔다. 그러나 이 사건은 피해자들이 다수로서 피해가 매우 중대하고, 화재의 발생이 결국 피고인들의 주의의무 위반, 안전보건 조치의무 위반 내지 안전보건 확부의무 위반에 따른 결과가 실현된 것이며, 사상의 결과를 방지하기 위하여 피고인들이 쉽게 준수할 수 있는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법위반의 정도가 심히 중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망한 피해자들이 평소에 제대로 된 리튬 1차전지 폭발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과 이로 인한 화재 대피 교육을 받았더라면 이 사건 화재가 최초에 발생한 것을 인지한 시점에 즉시 출입문 또는 비상구를 향해 뛰쳐나가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들 중 일부는 불을 끄려고 하였고,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작업장 구석에 모여들어 걱정스레 화재 모습을 지켜보는 등으로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에 생사가 오가는 귀중한 골든 타임을 놓쳤다. 더구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비상구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비상구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장애물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결국 아침에 집에서 일터로 향한 소중한 가족이 남은 가족의 품에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건 화재 사고는 예측 불가능하였던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예고된 인재였다. 그 이면에는 기업의 생산량 증대에 따른 이윤 극대화를 앞세워 노동자의 안전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우리 산업 구조의 현실과 일용직·파견직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의 실태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

피고인들이 피해자 18명의 유족들에게 피해를 변제하고 합의하였고, 2명의 피해자들(피해자 강○○, 강○○)의 일부 유족에게 피해를 변제하고 합의한 점은 유리한 정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유족의 처벌불원이 사망하여 어떠한 의사표시도 할 수 없는 망인의 의사를 대체할 수 없을뿐더러, 합의한 유족들조차 한국에 머물며 장기간에 걸친 법적 분쟁을 버틸 수 없거나 경제적 형편 등 여러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 등을 들며 피고인들이 이 사건 화재 사고에 대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반성하고 그에 따른 법적 처벌을 받아야만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다는 등으로 현재의 피해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사정도 존재한다.

특히 기업가가 평소에는 기업의 운영에 있어 매출과 영업이익의 증가에 온 힘을 쏟는 반면, 근로자들의 안전·보건에 관한 부분에는 비용을 최소화하여 이윤을 극대화하여 오다가 막상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유족과 합의를 시도하고, 유족은 막다른 길에 몰려 생계 유지를 위하여 선택의 여지 없이 합의에 이르게 되어 결국 기업가는 합의가 되었다는 이유로 선처를 받게 되는 선례가 많다.

자신의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매우 낮고,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은 당장 장부상에 숫자로 찍히므로 기업가는 다른 기업가가 위와 같이 선처를 받는 것에 대한 학습효과로 이윤 극대화에 몰두하는 기업 경영을 하게 된다. 나중에 매우 낮은 확률로 산업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그동안에 벌어 놓은 돈으로 합의를 하면 선처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뿌리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피고인들이 유족들과 합의하였다는 사정은 일부 제한적으로만 양형 사유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25일 오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인 아리셀에서 박순관 에스코넥 대표가 23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낭독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5일 오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인 아리셀에서 박순관 에스코넥 대표가 23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낭독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피고인 박순관에 대한 구체적 양형 이유]

중대재해처벌법은 현대중공업 아르곤 가스 질식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압사사고,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사고와 같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 및 시민재해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등이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어 왔는바, 그중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 등이 운영하는 사업장 등에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의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 및 법인 등을 처벌함으로써 근로자를 포함한 종사자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안전을 중시하는 기업의 조직문화의 부재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인해 일어나는 산업재해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을 입법취지로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전제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산업재해의 발생은 재해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을 유발한 행위자들이나 구체적 업무상 주의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중간관리자들에게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중대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인 환경 즉,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권한과 책임이 있음에도 이를 방치한 대표이사와 같은 경영책임자 등에게도 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사업장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안전보건관리체제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감소하지 아니하고 근로자들이 사상을 입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볼 때 경영책임자 등에게 무거운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이라는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위반한 것에 대한 응당한 결과이고 자기책임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피고인은 박중언에게 영업 현황을 보고하도록 지시하며 기업의 매출을 증가시키라는 지시는 강조하여 반복하는 반면 근로자들의 안전에 유의하라는 지시는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영책임자등의 기본적인 인식 자체가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하여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고, 경영책임자등이 스스로 높은 책임의식을 가지고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형벌만이 정답은 아니고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나, 앞서 본 그동안의 산업재해 사고의 양형 경향과 산업재해의 빈번한 발생 현실에 비추어 보면 형벌의 일반예방 효과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인다. 이 사건과 같이 다수의 근로자들이 사망한 사건에서조차 경한 형이 선고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높은 법정형의 처벌 규정을 둔 의의가 무색하게 된다.

또한 피고인은 장기간 다수의 파견근로자들을 고용하여 전지를 생산하여 왔는바, 이 사건에서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는 형태가 불법이라는 사정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지위와 경력이 있음에도 파견법 위반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

다만, 아리셀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준수를 위한 컨설팅을 받던 중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한 점, 피고인이 중대재해처벌법상이나 파견법상 자신의 책임을 면할 목적으로 자신의 아들인 박중언을 내세워 아리셀을 경영한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고, 실제로 상당한 권한을 박중언으로 하여금 행사하게 하여 아리셀의 실무는 박중언이 총괄하였던 점, 피고인이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에 해당한다.

위와 같은 정상들과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성행, 환경, 가족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 요소를 종합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피고인 박중언에 대한 구체적 양형 이유]

피고인은 아리셀의 운영총괄본부장으로서 대표이사인 박순관으로부터 위임받아 아리셀 실무의 대부분을 총괄하여 왔다. 피고인은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의무를 부담하고 있음에도 이를 위반하여 23명이 사망하고 9명이 상해를 입게 하는 중대한 피해를 야기하였다.

이 사건 화재와 사상의 결과는 여러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이 중첩되어 발생한 것인데 피고인은 판시 범죄사실에 기재된 모든 주의의무를 위반하여 주의의무 위반의 정도가 크다. 또한 피고인이 건축법을 위반하여 대수선한 결과 이 사건 비상구의 이용이 더욱 어려워지는 결과가 되었다.

피고인은 장기간 불법으로 다수의 파견근로자들을 고용하여 전지를 생산하여 오면서 이들을 위험에 노출시켰고, 급기야 이 사건 화재 사고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하였다.

피고인이 군납 전지의 품질보증검사를 통과하기 위하여 수검용 전지를 교체하는 등 업무방해와 사기 범행을 자행한 수법이 매우 불량하고 편취금액이 크다. 군부대에서 고성능의 전지를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성능을 요구하는 이유는 군사상 목적에 따른 것이므로 피고인으로서는 이러한 성능에 맞는 전지를 생산하고 그러한 전지로 품질보증검사를 통과하였어야 한다. 군납 전지를 생산 단가에 비하여 저렴하게 판매하였다는 사정도 피고인의 경영상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업무방해와 사기 범행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피고인은 아리셀의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하고,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기계 등을 사용하였으며, 건강진단 이후 근로자들에게 취하여야 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는데, 피고인은 이와 같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이행에 대한 인식이 미약하였고, 그러한 인식이 이 사건 화재가 발생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인다.

다만, 피고인이 일부 범행을 인정하고 있는 점,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에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업무방해와 사기 범행과 관련하여 방위산업청이 요구하는 손해배상금 52억 원을 전액 배상하기로 합의하였고, 그중 35억 원 상당을 배상하여, 피해금 45억 원 중 일정액이 변제된 점 등은 유리한 정상에 해당한다.

위와 같은 정상들과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성행, 환경, 가족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피고인 아리셀에 대한 구체적 양형 이유]

피고인이 박순관, 박중언, ○○○의 범행을 방지하기 위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기울였다면 이 사건 화재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사법상 근로자들을 사용하는 주체나 사업을 통하여 얻은 이익이 귀속되는 주체는 법인이므로 법인에게도 책임에 상응하는 벌금형을 부과하여 경제적 부담을 지도록 하는 것이 실제 행위자인 경영책임자등이나 사업주로부터 위임받은 실무자로 하여금 근로자들의 안전·보건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구축하도록 하고 불법파견을 방지하며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밖에 범행의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양형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아리셀참사#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수원지법#고권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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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몸담은 세상이 궁금해 글을 씁니다.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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