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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은 할아버지 기일이었다. 친정집은 4년 전부터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할아버지 제사가 추석 직전이라, 제사로 추석을 대신하기로 합의했다. 겉으로는 합리적인 선택 같지만, 그 과정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제사 준비의 무게는 대부분 80이 넘은 친정엄마의 몫이다. 무릎과 다리가 예전 같지 않아도 며칠을 제사 준비에 시간을 쏟으신다. 다행히 제사 전 주말에 출근을 안 하는 막냇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상차림에 필요한 과일과 술 등 무거운 것들을 사 온다. 엄마가 생도라지를 사고 껍질을 벗기고, 건나물을 물에 불려 삶는 등 제사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시는데 사나흘은 족히 걸린다.
이렇게 준비해 놓은 재료를 나는 무치고 볶는다. 동그랑땡, 배추전, 파전, 동태전 등을 부치고 고기를 삶고 탕을 끓인다. 엄마의 퉁퉁 부은 다리,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작년보다도 더 힘들어 보였다.
"엄마, 이제 제사 방식을 바꾸든지 다른 대안을 아버지와 의논해 보아야겠어요."
사실 엄마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셨다.
"시아버지는 내게 생명의 은인이셨다"라며 제사에 정성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은 존경스럽지만, 동시에 한 인간의 노고를 당연하게 여기는 제사 문화의 그림자를 본다.

▲제사 상차림친정 엄마가 정성으로 차린 제사상 ⓒ 김남정
올해는 제삿날이 평일이었다. 비 때문에 참석을 못 하거나, 퇴근길 교통체증으로 늦은 이들이 많았다. 예년보다 참석자 수는 확연히 줄었고, 차린 음식은 남았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고 돈이 들어간 상차림은 제사가 끝나자마자 뒷전으로 밀리고, 사람들은 각자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그 순간, 제사가 과연 누구를 위한 의식인지 되묻게 된다.
40년 넘게 고인을 추모했다면 그 마음은 충분히 이어져온 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전히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연로한 여성인 엄마가 허리를 굽혀 수십 가지 음식을 준비해야만 효의 완성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이다. 이는 단순히 우리 친정집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성의 가사 노동과 희생 위에서 제사 문화를 유지해온 오랜 관행의 문제다.
그렇다면 앞으로 제사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먼저, 고인을 기리는 방식은 반드시 '음식상 차림'에 국한될 필요가 없다. 함께 모여 생전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진을 보며 기억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추모의 의미는 충분히 살아난다. 또,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사 음식을 간소화하거나, 가족 구성원이 분담해 준비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요즘에는 집에서 모든 음식을 만들기보다 필요한 만큼만 구매해도 된다. 중요한 건 '형식의 완벽함'이 아니라 '기억의 진정성'일 것이다.
무엇보다 제사의 주체를 특정 성별이나 연령에 고정하지 않는 변화가 필요하다. 제사가 가족 모두의 의식이라면, 준비 과정도 가족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 나이 든 엄마의 노동이 아니라, 아들딸, 며느리, 사위가 함께 짐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이들 간의 '효'이자 존중이다. 시대는 바뀌었고 모두 바쁘다. 누구 한사람 제사 준비를 오롯이 할 사람이 없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그래도 시간을 내어 나이 든 엄마 제사 준비에 손을 보태고, 참석을 하는 이가 있는 반면에 시간 내기 어렵다는 궁색한 변명만 하는 사람도 있다.
제사는 과거의 전통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선택이다. '고인을 기리는 일'이라는 본래의 뜻은 유지하되, 불필요한 부담과 불평등은 덜어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전통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길이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강한 문화일 것이다.
우리 사회도 제사 문화가 많이 간소화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친정집처럼 제사문화 앞에서 힘들어하는 집이 남아 있는 현실이다. 과연 제사는 고인을 위한 의식일까. 아니면 살아 있는 이들의 부담을 정당화하는 장치일까.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 질문 앞에서 답을 내야 할 때다. 고인을 향한 마음은 지키되 현재의 삶을 존중하는 새로운 제사 문화로 나아가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