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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훈 작가
최인훈 작가 ⓒ 고양신문

해방 후 우리 문학사에 우뚝한 작품의 하나에 최인훈이 <새벽> 1960년 10월호에 쓴 소설 <광장>이 꼽힌다.

문학사적 의의에 대한 한 평론가의 글이다.

"4.19 직후 이 짧았던 자유공간 속에서 발표된 작품이다. 작가 자신도 서문에서, 자유당정권의 억압적인 반공이데올로기 아래에서는 발표가 불가능한 작품들이었음을 말했다. 전후에 이데올로기 문제를 가장 본질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광장>은 작가에 의해서 내용과 문체, 표기에 한해 도합 다섯 번 정도의 개작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 직후 최대의 문제작으로 평가받으면서 1960년대 소설의 서막을 장식했는데, 이명준의 행적과 사상에 깊게 깔린 정치적 허무주의에 대한 비판적 평가도 있다." (주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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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작품이 발표되면서 평론가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백철은 <서울신문>(1960년 11월27일)에 '하나의 돌을 던지다 - 최인훈 작 '광장'의 파문'을 쓰고, 역시 평론가 이동한이 같은 신문 1960년 12월 4일치에 '확대해석에의 이의 - 백철 씨의 '광장'평을 박함'을 썼다. 이에 다시 백철이 같은 신문 12월 18일치에 '작품에서의 콤플렉스 - 신동한 군이 제기한 이의에 박함'을, 이에 맞서 신동환이 같은 신문 12월 28일치에 '문학의 지도성 - 백철 옹에게 드리는 글'로 논쟁이 진행되었다. 주요 대목이다.

(백철) 주인공이 전후의 비극적인 체험에서 그처럼 갈구하던 광장은 어디든가, 남한의 현실에 구토를 느끼면서 광장이라고 생각하고 월북한 곳은 더 지옥이었다. 6.25의 자포자기의 행위 뒤에 겨우 찾아낸 장소가 여인의 조그마한 가슴, 그 스페이스마저 무너질 때, 다시 한 번 광장을 바라면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향하여 출항을 했으나 조국을 상실한 인간 앞에 제3국이 광장일 순 없다.

결국 주인공의 운명을 해결할 광장은 광막한 바다, 아니 죽음, 독자가 이 비극을 구경하면서 불연간 연상하는 이미지는 만일 여기에 남북통일의 길이 열려 있었다면 주인공은 정말 거기서 하나의 '광장'을 찾는데 성공하지 않았을까? 대답은... '물론이다!'

생각하면 4.19 이래 우리 작가들 앞에 젊은 세대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일들이 실천에 옮겨지고 혹은 제안도 되었다. 남북통일론이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제안일는지도 모른다. 이 통일론의 스트래티지에 대해선 문학인들로선 확인을 하기가 어렵다.

그 대신 결국 이 통일문제란 우리 민족의 근본적인 방향이요, 운명적인 길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적은 기회와 방법이라도 그것을 대담하게 사용하여 그 목표의 일부씩이라도 각기 해결시켜 가는 일이 민족적인 지상명령의 과제이다.

(신동한) 솔직히 말해서 <광장>의 주인공 '명준'의 행동은 하나의 성격파탄자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겪어 나가는 환경의 서술에 대해서 백철 씨는 지적하기를 "어느 편을 동정하거나 호의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라 양쪽을 다 냉정하게 비판 폭로하였다"고 했는데 이건 정말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이 정도의 비판 폭로는 벌써 4.19 전에도 저널리즘에서 실컷 떠들어 놓은 이야기에 불과하며 아무런 새로운 발견이나 표현도 없는 것이다. 다만 있다면 관념적인 어구로 수식을 가했을 뿐 그 외에 무엇이 있다는 것인지... 여기에서 남북통일은 연상하게 된다고 말하는 백철 씨의 논리의 비약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갈 수 없는 일이다.

<광장>의 작가가 통일에까지 생각이 미쳤다면은 환경 설명에서 그러한 악의적인 비판만이 나와서는 안 된다. 또 종장에서 제3국을 택한 주인공이 그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광막한 바다에서 죽음을 택하게 하는 비열한 패배의식의 소유자여서는 논의거리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백철) 작품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은 직접으로 눈에 표면적인 재료에서 보는 것보다는 그 재료를 매개체로 해서 그 뒤의 암시적인, 이미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확대해석이 아니라 이중 파악을 하는 일이다. 여기에 근대 비평과 현대비평의 위치와 방법이 바꿔진 조건도 있다고 본다. 만일 표면적인 묘사성에서만 작품 의미를 본다면 구태여 비평가란 존재가 작가와 독자의 중간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다시 작품 현실이란 그 의식분석을 하면, 그 작가의 실제 현실에 대한 불만적인 반영물이라는 심리학자의 씨오리를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 이번 <광장>이 통일장면과 이미지가 통할 수 없다는 것은 아마 통일이라는 글자가 직접 신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내놓는 논리 같은 데 딱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현실탐구를 하여 남한의 현실에서도 그것을 찾지 못하고 북한에서 그것이 부정되고 할 때에 변증법이 아니지만 여기서 두 개에 대한 통일장면이 광장으로 되는 이미지가 반전 통일되는 것은 작품 의미로서 필연적인 노력이 아니던가. 또한 실제의 현실성이 현재 통일과 줄이 닿고 있는 의미도 그 두 개의 분립과 현실적인 모순에서 오는 역사적인 필연성의 이미지가 아니던가.

(신동한) 2차대전 당시 나찌스가 강제 수용소에서 유태인을 학살한 것만이 인간의 학살 행위는 아니다. 더 무서운 것은 육체에 앞서는 정신의 학살 행위다. 지난 14일자 조간 <서울신문>의 '확대해석에의 이유'에 대한 백철 옹의 18일자 석간의 답변이 바로 거기에 해당된다. 백철 옹이 논박한 '성격 파산자'와 '낡은 로맨티시즘', 그리고 '낡은 리얼리즘'의 문제는 다른 지면을 빌어 말하기로 하고, 다만 여기에서는 '문학의 공로'와 '문학인의 비굴형', 그리고 '문학의 선후배 관계'에 대해서만 백철 옹에게 묻고 싶다.

첫째 백철 옹은 신 군이 문학에 무슨 공로를 세웠느냐고 하였다. 물론 나는 문학에 아무 공도 없다. 기껏 그동안에 했다면은 자유문학, 현대문학과 한국일보, 민국일보에 치졸한 낙서 정도의 잡문을 썼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는 생각해야 되겠다. 어느 문학작품 하나를 가지고 말할 때 거기에서 그의 '공로'가 반드시 그 전제조건이 될 수 있을까? 그것보다는 상호간의 견해에 있어 어느 만큼 작품에 대한 이해가 있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본다. 논란의 가부는 독자가 내려준다. 그러니 가만히 앉아 읽은 사람의 반응을 기다려 보아야 할 일이다.
 최인훈 작가
최인훈 작가 ⓒ 고양신문

다음에 '비굴형'에 대해서는 거꾸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백 철 옹의 그동안의 작품 비평 행위가 바로 '젊은 세대'에 대한 '비굴형'의 전형적인 경우가 아니었더냐고 - 신인의 작품을 평할 때에 결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백철 옹은 언제나 장점만을 과장해서 늘어놓았다. 또 그 과장이 엇비슷이 들어맞는 것이라면은 무관한데 무근의 평가인 데서 폐단이 생긴다. '문학인의 비굴형'을 지적하는 백철 옹 자신이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반성해야 할 시기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간다.

주석
1> 임헌영·김재용 편, <한국문학명작사전>, 217쪽, 한길사, 1991.

덧붙이는 글 | [현대사의 논쟁과 쟁점]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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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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