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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조봉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조봉암. ⓒ wiki commons

조봉암 진보당사건 공판 - "사가의 필주(筆誅) 의식하고 판결하라"

이승만 정부는 1968년 1월 13일 진보당위원장 조봉암과 간부 7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정순석 검찰총장은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진보당은 불법결사단체라고 주장하고 간첩과 접선했다고 기소했다. 치안국도 진보당은 간첩과 접촉 외에도 당정책으로 내건 '평화통일론'이 공산당이 부르짖는 노선 및 방법과 똑같은 것을 문구상으로 합리화시켜 놓은 것으로 '국가변란'의 위협을 내포한 보안법위반 대상이라고 발표했다.

이렇게 하여 이승만의 정적 조봉암은 법정에 서게 되었다. 조봉암을 형장으로 몰아간 재판은 1, 2심이 사형을 구형하고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마침내 독립운동가 출신의 혁신 정치인을 처형했다. 이를 외신은 '사법살인'이라 논평했다. 조봉암에 대한 검찰논고는 조인구 부장 검사가, 변론은 김춘봉 변호사가 맡았다. 그리고 항고심의 변론은 신태악 변호사가 담당했는데 검찰은 변론 내용을 문제삼아 내사에 착수했지만 기소하지는 않았다.

검찰의 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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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진보당이 합법적임을 기화로 막대한 자금을 북한 괴뢰로부터 받아가면서 이들과 합작하여 대한민국의 전복을 기도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공작을 위한 방편으로서 진보당은 평화통일이라는 구호를 내세웠고, 강령으로서는 사회주의의 초보인 사회민주주의를 내걸었던 것이다. 진보당의 강령 정책 및 조직을 검토하여 볼 때 우리는 진보당이 맑스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혁명적이며 계급적인 정당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방법으로는 공산당의 최저 강령인 사회민주주의 또는 인민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합법적인 기반을 이용하여 최고 강령인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조봉암 피고인은 평화통일 구호 아래 북한괴뢰와 합작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한 것이다. 북한 괴뢰의 지령에 의하여 조봉암을 괴뢰와 합작시킬 사명으로 남하한 양이섭이 간첩임은 물론이요, 그 점을 알고 양과 협의 실행한 조봉암은 간첩이다.

변호사 변론

진보당 통일정책의 어느 부분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의 성립과정을 볼 때에 우리는 유엔을 무시하거나 도외시 할 수 없음은 물론, 우리 나라를 민주 독립국가로 발전시킨 것이 유엔이라는 것을 상기할 때에 우리는 그 권위조차 벗어날 수 없는 의무감을 느끼는 것이다.

유엔의 한국통일을 위한 끊임없는 정치적인 노선과 부합되는 것이 진보당의 통일정책이며, 그 정강정책 전문(全文)은 어디 까지나 대한민국의 주권을 존중함과 동시에 유엔의 권위를 귀중히 여겼으며, 우리 대한민국도 서방 민주국가군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또한 명심한 것이다.

조국통일을 평화적으로 하자는 진보당의 정책이 국시에 위반될 수 없는 것이며, 더욱이 북한 괴뢰의 위장 평화 공세와 결부하여 범죄시한다면 유엔의 정치적 평화통일 결의도 그럴 것이며, 변영태 외무장관의 제네바 통일방안 14개 조항도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것이고, 공산당을 불법화한 우리나라에 있어서 북한만의 선거로 공산당의 진출을 허용하자는 자유당은 북한만의 선거정책도 법률상 위반이며, 유엔감시하의 남북총선거라는 민주당의 통일정책도 물론 형벌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진보당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린 10월 17일 신태악 변호사의 변론이 법정모욕의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내사에 착수했다. 다음은 문제의 항소심 반론 요지.

항소심 변론

오늘은 4대 사화 중의 하나인 갑자사화에 관해 한 말씀 드리겠다. 윤필상은 무오사화 때 유자광 등과 공모하여 사관 김일손의 사초 문제를 일으켜서 김일순, 권오복, 이목 등을 상해하고 이미 죽은 김종직의 관을 파내서 그 뼈를 가루로 만들어서 바람에 날려버린 사람인데, 그 후 6년이 지나서 일어난 갑자사화 때에는 임사홍의 모략에 의해서 자기의 목이 달아났다.

또 한명회는 저 유명한 세조, 수양대군을 받들어서 모든 일을 꾸미던 사람인데, 세조가 단종을 폐위시켜 죽이고 동생 평안(平安)을 귀양 보내고 사육신을 모조리 죽일 때 이 모든 일을 모사하던 사람으로서, 당시의 권세는 일세를 덮었는데, 갑자사화 때에는 이미 죽은 한명회의 묘를 파서 시체를 꺼내 처단까지 하게 되었다. 인간 세사(世事)란 이런 것이다.

본 변호인이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이러한 사화들이 일어날 때마다 그 당시에도 오늘 이 검찰과 임무 같은 것을 담당한 사람과 또 재판관의 임무 같은 것을 담당한 사람들이 있었을 터인데, 그때 그 사람 자신들의 당시의 판단으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였을지 모르지만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사화를 일으킨 사람들은 모두 좋지 못한 사람으로 인정되고, 사가는 일치하여 그들을 필주(筆誅)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내가 진정으로 축원하는 것은 우리는 과거 경험에 비추어 이번 사건만은 10년 후, 백년 후 어느 때에도 공정한 민주재판 이었다고 할 만큼 추호의 오류도 없는 판결을 내려서 자손만대에 시범이 되도록 하여 주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현대사의 논쟁과 쟁점]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현대사#현대사논쟁#현대사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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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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