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 ⓒ Unsplash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어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러내고
꽃처럼 피어나는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이다. 1954년 연말 십자가 논쟁이 일었다. 성상(聖像)인가 우상(偶像)인가의 논쟁이었다.
기독교(신구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 논쟁은 종교간이 아닌 다소 엉뚱하게 조각가(국전심사위원, 대한미술협회부위원장) 윤효중의 조각작품 '십자가'에 운형중 신부가 성상인 십자가를 우리나라 전래의 민속인 장승과 결부시켜 조각했다는 거센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윤형중은 <경향신문> 1954년 11월 28일치에 '예도와 사도 - 국전 조각부 윤효중 '십자가'를 보고'에서 이를 비판하자, 윤효중이 <동아일보> 12월 5일치에 '예술의 정도를 밝힘 - 윤형중 신부의 '예도와 사도'를 읽고'에서 반론을 제기하였다. 이에 윤형중이 <경향신문> 12월 16일치에 '십자가와 장승'으로 재반론을 하자 윤효중이 <동아일보> 12월 26일치에 '성상과 우상과 인간 - 윤형중 신부의 예술에 재차 답함'으로 맞섰다.
윤형중의 '예도와 사도'의 도발적 문제 제기의 한 부문이다.
나는 지금 '십자가'라는 명제로 출품된, 국전심사원이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라는 조각가 윤효중씨의 작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 대면할 때 아무리 예술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일지라도 구토를 느끼지 않는 이는 없을 줄 믿는다. '십자가'라는 명제를 붙인 악의에 대해서 종교 치고 의분을 느끼지 않는 이도 없을 것이다. 도대체 윤씨는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알고서 이런 이름을 붙였는가? 이것은 '장승'이라는 민속적인 우상과 '십자가'를 뻔뻔스럽게 결부시킨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종교를 모독하는 것이요(가령 여기에 석가라는 명제를 붙였다면 불교계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또 예술과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나는 그 작품의 추악성을 설명할 언어를 모른다. 이것을 알고 싶고, 또 내가 종교인이라고 해서 종교적인 완고와 파당적인 편협심에서 시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해 주고 싶은 독자는 한 번 그 작품을 대해보는 수밖에 없다. 종교와 예술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상식이 되어있는 것이며, 또 근래 세계에 와서 때때로 예술이 종교에 대해서 반역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증오도 일종의 애정의 변모인 것과 같이 반역도 '사랑'에서 오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 국전에 내놓은 윤씨의 작품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무식과 무지에서 미술이라는 존엄한 영역을 악용하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으며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고 노력해보아도 예술이라는 명칭이 상응하는 면을 발견할 여지가 없다.
이에 대해 윤효중은 '예술의 정도를 밝힘'에서 신랄하게 반박한다.
십자가 말씀이 났으니 십자가 타령을 좀 올려야 할 의무감을 느낍니다. 십자가는 내 일찍이 <신약성서>를 통하여 로마국 사형구임을 알았습니다. 또 요새 같으면 국가보안법에 걸려 본디오 빌라도에게서 사형선고를 받고 골고다 산정에서 도둑놈들과 함께 못 박혀 최후를 바치시며 '엘리 엘리 라마사박나니'라고 부르짖으신 사실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후인이 기독의 희생적 정신의 상징으로 성화시켜왔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십자가는 기독교의 교표처럼 되었으나 십자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님이 틀림없습니다. 로마성에서 네로 왕에게 붙들리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힌 베드로의 십자가며 기독 이외에 사용된 뭇 십자가는 어떻게 취급해야 옳은 것입니까.
그러나 도둑놈도 죽일 때 사용하고 반역자를 죽일 때도 사용하는 형구로서의 십자가의 일반성은 그러나 몇 번씩 거꾸러지면서 짊어지고 간 기독의 십자가, 희생의 정신이 뭉친 특수한 십자가를 나는 보았기 때문에 또 그것을 숭고한 미의 대상으로 느꼈기 때문에 그것을 취재하여 예술화시킨 것이 나의 작품 '십자가'입니다.
다음 '장승'이라는 민속적인 우상과 운운하셨으니 장승을 아십니까? 또 우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실체가 아닌 것은 전부 우상일진대 가톨릭교에서 경배하는 성모상이나 기독상이 나가 전부 우상일 것이니 어느 것은 정신의 상징이요 어느 것은 우상이요라고 구별한 구역선이 매우 애매하며, 그 말은 고사하고 장승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시기 위하여 불가불 수언 늘어놓아야 하겠습니다.(…)
윤형중은 이에 다시 '십자가와 장승'에서 반론을 편다.
이제 문제의 조각을 일반이 무엇으로 보겠는가? 향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승'으로 밖에는 다른 무엇으로 생각할 수 없고 또 이것은 몇몇 조각가들이 주관적 해설로는 좌우되지 못한다. 그의 자기 변호를 들어보니 기독교를 모독할 의사는 씨에게 없는 듯 하지만 객관적 상식으로 볼 때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어 붓을 들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윤효중의 반론 '성상과 우상과 인간'의 한 대목이다.
저는 장승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법의 일부를 따랐단 말씀을 전번에 명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장승이라 할 것이다'라는 억설로 독단하시니 그 논법을 빌어 대답하거니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래하기 이전에 십자가를 내어 놓으면 누구나 다 흉악한 허수아비로 밖에 더 안보였을 것이며 또 내 작품에 있어서도 장승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장승으로는 보지 아니할 것이요 기록상의 신 수법임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현대사의 논쟁과 쟁점]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