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광주광역시 동구 예술길에 있는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에서 '오월 광주, 이주민을 만나다!'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광주시에 사는 이주민이 모여 5.18 광주항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에서는 2024년 봄에는 이주민과 함께 영화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를 보았고, 가을에는 김상봉 명예교수(전남대 철학과)를 초청해 5회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이번 시간은 그때 참석했던 이주민이 다시 모여 '오월 광주'의 정신에 관해 발표하고, 광주의 선주민과 함께 토론하는 자리였다.
이날 30여 명이 참여한 세미나에서는 메리암 디비나그라시아 마뉴엘(필리핀), 이진영(중국), 이미선(몽골), 최마리야(우즈벡), 강세나(캄보디아), 리셀 이 게그리모스(필리핀), 송지은(캄보디아), 이송화(중국) 등 모두 여덟 명의 이주민이 저마다 생각하는 오월 광주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발표했다. 사회는 연구소의 박흥순 소장이 맡았고, 토론자로는 정다은 광주광역시 시의원,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이 참여했다.

▲2025년 9월 26일 광주광역시 동구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소장 박흥순)에서 열린 '오월광주, 이주민을 만나다' 세미나가 끝난 뒤 발표자들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 최진섭
네 명의 이주민이 모국어로 발표한 까닭
여덟 명의 이주민 발표자 중에 네 명은 한국어, 그리고 네 명은 자신들의 모국어인 러시아어, 캄보디아어, 영어, 중국어로 발표했다. 박 소장은 이들 이주민 대부분이 한국어에 능숙하지만 "선주민(한국인)이 유창하게 모국어를 구사하는 이주민을 보고 자극을 받기 원한다"라고 말했다. 종종 이주민이 한국어에 서투르다고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선주민이 있는데, 이주민이 자유자재로 필리핀 따갈로그어, 중국어, 캄보디아어, 러시아어 구사하는 걸 보면 느끼는 바가 많을 거라는 게 박 소장의 생각이다.
첫 번째 발제자인 메리암 디비나그라시아 마뉴엘은 이주민 발제자 중에 가장 긴 이름인데, 발음하긴 어렵지만 낯익은 이름이기도 하다. 필자가 운영하는 <말> 출판사에서 2022년에 만든 <나는 메리암 디비나그라시아 마뉴엘이다>라는 책이 있는데, 바로 이 필리핀 이주민의 이름을 제목으로 빌려온 것이다. 이 책은 '이주민과 함께 인권 서로 배우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광주에 거주하는 이주민 34명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메리암 디비나그라시아 마뉴엘은 세미나에서 "5.18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많은 고통과 아픔, 공포, 절망, 그리고 희생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자유, 인권 등을 얻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 소장은 그의 발제가 끝난 뒤 "메리암씨는 한국에서 27년 산 이주민이다. 작년에는 따갈로그어로 발표했는데, 한국어로 발제한 오늘 더 잘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 이주민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미선(몽골), 강세나(캄보디아), 최마리야(우즈벡)의 발표 내용 중 인상적인 구절을 옮겨적으면 아래와 같다.

▲'오월광주, 이주민을 만나다!'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필리핀 이주민 메리암 디비나그라시아 마뉴엘 씨. ⓒ 최진섭
5.18을 상징하는 '헌혈, 수류탄, 주먹밥'의 정신
5·18민중항쟁을 상징하는 헌혈, 주먹밥, 수류탄 세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5·18민중항쟁 전체를 포괄하는 상징인 피, 수류탄에 관한 말씀이 감동적이고 용기가 필요했던 행동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위 세 가지 중 헌혈과 주먹밥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5·18 주먹밥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이 서로의 생존과 연대를 위해 만들어 나눠 먹었던 간소한 음식입니다. 이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민주주의와 공동체 정신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미선(몽골)
한국에 들어와서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면서, 한편으로 한국 사회가 고향 캄보디아보다 발전되고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왜,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인지, 과정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역사를 배우게 되면서 한국 사람이 독재에 맞서서 싸웠기에 그렇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세나(캄보디아)
Слушая лекции, я невольно начала проводить параллели между событиями в Кванджу и историей моей родной страны, Узбекистана. Глубже изучая события 18 мая, я поняла, что это была не просто вспышка насилия или протест. Это был акт человеческой воли, борьба за свободу и равенство. Трагедия Кванджу стала символом народного сопротивления угнетению и доказательством того, что даже перед лицом страха люди способны объединиться ради справедливости.
강의를 들으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광주의 사건과 제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5월 18일의 사건을 깊이 공부하면서 저는 이것이 단순한 폭력이나 시위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인간 의지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광주의 비극은 억압에 맞선 민중 투쟁의 상징이 되었으며, 두려움 앞에서도 사람들이 정의를 위해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최마리야(우즈벡)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주해온 최마리야씨는 러시아어로 발표했다. 그가 5분 정도 읽는 동안 귀에 들어오는 러시아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평범한 한국인이 아는 러시아 단어는 톨스토이, 모스크바 같은 인명이나 지명 외에는 '우라'(만세), '스파시바'(감사합니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광주광역시 동구의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에서 '오월광주, 이주민을 만나다!'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발표를 한 이주민 8명 외에도 광주에 사는 선주민 2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 최진섭
캄보디아에서 온 송지은씨는 캄보디아 크메르어로 발표했는데, 발음과 억양이 매우 특이하게 들렸다. 아마 처음 들어보기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나 싶다. 세상의 언어는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남아에서 온 이주민은 한국인과 얼굴 생김새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언어는 천양지차였다.
1975년에 발발한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사건과 1980년 광주의 5.18사건은 비슷한 시대에 있었던 사건으로 결과적으로 자국민을 학살한 극악무도한 사건이며 국민에게 아픈 역사로 남아있습니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자국민의 생명을 소중하게 지키지 못한 점이 너무나 닮아있는 것을 보며, 비록 저는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의 자료들을 찾아보며 저는 당시 광주시민들의 용기에 감탄했습니다. -송지은(캄보디아)
정치적 목표로, 돈 벌기 위해 5.18 왜곡하는 한국인들
모국어로 발표하는 이주민이 많아서 세미나 자료집이 없었다면 한국인(선주민) 참가자는 주요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구소에서 배포한 토론자료집 <오월광주, 이주민을 만나다!>에는 이주민의 발표문이 실렸는데, 왼쪽 한 면에는 한글로 그리고 오른쪽 면에는 각 나라의 언어로 적혀있어서 발표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세미나의 토론자로 나선 정다은 광주시의회 의원은 먼저 "광주에서 출생했기에 5.18의 정신, 영광과 멍에와 빚을 상속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주민 여러분의 발표를 들으니 광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라고 말다. 시의원 되기 전에 인권변호사로 8년간 일했다는 정 의원은 그 반대의 예로 5·18 정신을 왜곡하는 한국인을 언급했다.
정치적 목표로 5·18 정신을 왜곡하고, 비틀고, 호도하는 한국인도 많고, 요즘은 유튜브 조회수 올려서 돈 벌기 위해 5.18 광주 왜곡하고 욕하는 사람도 많아요. 여러분은 광주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광주 5.18을, 오월정신을 기억해줘서 고맙습니다.
정다은 의원은 "과거를,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5.18이 끝난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 있다. 계엄에 맞선 5.18이 있어서 지난 12.3 계엄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토론을 마쳤다.
두 번째 토론자인 오월어머니집 김형미 관장은 "나는, 우리는 몸으로 배운 걸로 활동해왔는데, 이렇게 우리보다 열심히 5.18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그의 오빠는 5.18 때 공수부대원들에게 집단으로 구타당한 뒤 정신병에 시달리다 사망했고, 남편은 계엄군에 맞서 총격전을 벌이다. 부상당했다고 한다. 김 관장은 "오월 정신을 여기서 이주민들이 실현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에 감격했다며 "오월어머니집에 오셔서 주먹밥의 공동체 정신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며 이주민을 즉석에서 초대하기도 했다.

▲'오월광주, 이주민을 만나다'의 사회를 맡은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의 박흥순 소장. 올해로 연구소는 창립 10주년을 맞이했다. ⓒ 최진섭
"다른 사람 고통에 응답하는 자발적 연대"
사회를 맡은 박흥순 소장은 "5월 항쟁이 일어난 지 45년이 지난 지금 '오월 광주'란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에 대해 저마다 다양한 시각과 관점이 있기에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다른 사람 고통에 응답하는 자발적 연대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와 같은 5.18에 관한 정의는 오랫동안 5.18민중항쟁을 연구해왔고, 지난해에 이주민을 상대로 강의를 했던 김상봉 교수(명예교수)의 깨달음이라고도 한다.
세미나 자료집 뒷부분에는 김상봉 교수가 쓴 <5.18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한 물음>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그는 여기서 "하지만 과거 한국의 민중 항쟁의 역사가 지금 이 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이주민 여러분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여러분과 제가 5.18과 민중항쟁의 역사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것은 한국의 민중항쟁사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지금 이 나라에서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을 통해 증명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만약 여러분이 대한민국에 살면서 마치 낯선 땅에 끌려온 노예처럼 학대받는다면, 지난 두 세기 동안의 한국 민중항쟁사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역사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여러분이 이 나라에 살면서 인간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이웃 사람들과 친밀한 우정과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을 때, 한국인들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흘렸던 피와 땀이 열매를 맺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착취당하지도 않으며, 모두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동학의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5.18의 정신이기도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주민 세미나가 열린 다음날인 2025년 9월 27일(토)에는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의 창립 10주년을 축하하는 홍순관 가수의 '평화콘서트' 공연이 광주광역시 동구의 예술이빽그라운드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