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지산후지산 세계문화유산센터앞에서 후지산이 잘 보입니다. 구름이 아쉽네요. ⓒ 전명원
시즈오카는 후지산으로 시작해 후지산으로 끝난다고 해도 맞을 것 같은 도시다. 물론 녹차도, 와사비도, 참치나 벚꽃 새우 같은 것들도 유명하지만 어쩐지 시즈오카와 후지산은 한 묶음으로 생각하게 된다. 시즈오카를 여행하는 내내 멀리, 혹은 제법 가까이 후지산을 볼 수 있다.
가을로 성큼 다가선 9월 마지막 주, 그 시즈오카로 여행을 떠났다. 꽤 여러 해 전 어느 겨울, 하코네를 여행할 때 케이블카를 타고 가다가 멀리 흰 머리의 후지산을 본 적이 있는데, 좀 더 가까이 보고 싶다는 그날의 바람이 이제야 이뤄진 셈이다.
후지산은 일본 시즈오카현과 야마나시현 경계에 있는 해발 3776m의 성층화산이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한라산(1947m), 백두산(2750m)보다도 높다. 2013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지산은 1701년 호에이 대분화 이후 현재까지 분화하지 않고 있지만 엄연한 활화산이며 일 년 중 7~8월에만 입산이 허용된다고 한다. 백두산과 한라산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듯 후지산 역시 일본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그들에게 특별한 영산(靈山)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후지산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그 거대한 산의 모습을 기대했다. 후지산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중 '꿈의 대교'라는 독특한 이름의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나 로손 편의점 뒤로 후지산이 솟아있는 사진 등이 꽤 유명하다. 우리는 후지노미야로 가기로 했다. 후지노미야는 시즈오카현 동부에 있는 도시로, 후지산 기준 서남쪽 기슭에 있는 도시이다. 우리는 시즈오카역에서 열차를 타고 갔다. 후지역에서 환승해서 후지노미야에 닿았다. 한 시간 반쯤 걸렸다.
함께 간 남편은 일본어를 조금 하지만 구글 지도로 여행하는 법을 모른다. 나는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대신 구글만 가지고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는 사람이다. 시즈오카에서 후지노미야까지 철도노선이며, 배차시간, 플랫폼 번호까지…. 역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보다 구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요즘 여행에선 월등히 유리하다. 우리는 웃었다.

▲후지산 세계문화유산센터후지산이 거꾸로 선듯한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 전명원
후지산을 보기 위해 굳이 후지노미야로 향한 이유는 그곳에 있는 후지산 세계문화유산센터에 가기 위해서였다. 세계문화유산센터 건물은 후지산이 거꾸로 뒤집힌 모양의 독특한 형태이다. 뒤집힌 모양의 후지산은 바닥의 얕은 물에 온전한 형태로 비친다. 입장료 300엔을 내고 들어가니 꼭대기 전망대까지 경사진 원형 복도를 따라 오르게 되어있다. 이런 구조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비스듬한 경사로를 오르는 내내 옆면에 후지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그림자가 함께 있다. 그들 뒤를 따르는 내 그림자가 비쳐 재미있다. 계절마다 다른 후지산의 풍경도 계속 바뀌며 따라온다. 그렇게 꼭대기에 오르면 한쪽 벽면이 모두 통창인 그곳에서 후지산이 한눈에 조망된다.

▲후지산 세계문화유산센터경사로를 따라 오르며 마치 등산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 전명원
시즈오카에서부터 후지노미야로 오는 내내 열차 밖으로 후지산이 따라왔는데 막상 세계문화유산센터에 이르니 산 정상의 구름이 다소 많아졌다. 새파란 하늘에 우뚝 솟은 후지산의 위용. 그리고 그 산의 정상 부근을 덮은 뭉게구름. 산기슭부터 아래로는 도시와 마을의 풍경이 촘촘하다.
통창 밖 베란다에서 막힘없이 후지산을 마주했다. 이처럼 거대하고 특별한 기운이 서린 후지산을 목도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에게 후지산이란 어떤 의미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늘상 보는 풍경이니 무덤덤할까. 아니면 매일 보아도 그 매일의 풍경이 다르고 새롭게 느껴질까.
뱅글뱅글 도는 형태의 경사로를 다시 천천히 내려오며 후지산의 사계, 역사, 그리고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예술작품 등을 봤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멋진 산이 있다. 우리나라의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이 바로 그것이다. 한라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국립공원이고, 또한 그 전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후지산 세계문화유산센터를 나서며 후지산이 거꾸로 선 건물과 물에 비치는 반영,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후지산을 보며 우리의 한라산을 다시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한라산을 알리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엔 유채꽃과 갈치구이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언젠가는 우리의 '한라산 세계문화유산센터'도 꿈꾸어 보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