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 혹은 편집자도 시민기자로 가입만 하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
<함석헌 평전>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지 벌써 24년이 되었다. 그 사이 한국사회는 격동을 거쳤고, 나 역시 삶의 굽이굽이를 지나왔다. 2001년 초판을 낸 직후부터 2011년 개정판을 거쳐 지금까지, 함석헌이라는 이름은 변함없이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지난 2001년 초판이 나온 직후의 일이다. 어린 시절 다니던 장로교회의 한 선배가 교인 두 사람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카페 구석에 나를 앉히더니 큰 소리로 기도를 쏟아냈다. "주님, 방황하는 탕자 성수가 하루속히 주님의 곁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그들에게 보수적인 교회를 떠나 퀘이커 예배에 드나드는 나는 배교자나 다름없었다. 그 뜨거운 기도 속에서 나는 먼 나라에서 유산을 허비하는 잃어버린 아들로 규정되어 있었다.
혹시 함석헌에 관한 내 책을 읽어보셨느냐고 조심스레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호한 "아니"였다. 그들에게 함석헌은 여전히 이단자였고, 평화와 정의 그리고 모든 이 안에 깃든 하나님의 빛을 증언한 그의 신앙은 기독교로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떠나려는 내게 그들이 보낸 눈빛에는 연민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다. '탕자가 끝내 돌아오지 않는구나' 하는 말이 그 시선에 담겨 있는 듯했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날의 장면은 선명하다. 여전히 한국교회의 많은 이들이 미신적 확신과 배타적 신념에 갇혀 있는 것을 볼 때 내 마음은 무겁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나를 위해 기도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기도가 두려움과 배제에 묶여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바랐던 탕자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퀘이커와의 만남 속에서 진정한 집을 찾았다. 그 집은 벽과 경계로 둘러싸인 곳이 아니라, 열린 마음과 양심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현존이 깃든 자리였다. 함석헌이 평생 추구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지난 20여 년간 이 책으로 인해 참으로 많은 분들을 만났다. 찾아온 분들의 유형은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분들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무언가를 추구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서 나도 많이 배웠고 지금도 영감을 받고 있다. 그분들은 내게 정말 '씨알의 소리'가 무엇인지 삶의 매순간에,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잔잔하게 들려주었다.
함석헌에 대한 강의를 이곳저곳에서 할 기회도 많았다. 심지어 외국인들과 외국 학생들에게도 영어로 함석헌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서 '함석헌 사상의 보편성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가졌는가?> 등 그의 시 몇 편을 영어로 번역했고, 외국인들로부터 호응도 좋았다. "문화와 언어를 넘어서 훌륭한 생각은 어느 하늘 아래서나 통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사이 함석헌의 위상도 더욱 분명해졌다. 한국조폐공사에서 "비폭력 인권운동으로 민주화 실현에 앞장선 사상가 함석헌"을 한국의 인물 시리즈 메달로 선정했고, "건국 후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운동가"로 함석헌이 1위(77퍼센트)로 선정되었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 도서에, 아시아 명저 100권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함석헌의 사상적 저력이 놀라울 뿐이다.
함석헌을 욕보이지 마라
그런데 요즘 들어 함석헌의 말과 글을 함부로 인용하면서 그를 욕되게 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2014년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는 "일제강점과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왜곡 인용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제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광복 80주년 기념사에서 "우리나라의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발언하며 함석헌의 "해방은 하늘이 준 떡"이라는 표현을 인용했다.
하지만 이는 함석헌의 진정한 의도를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다. 함석헌은 1934년 김교신이 발행하는 <성서조선>에 "성서로 본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연재하며 일제강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이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하지만 이 글을 당시 일본 형사는 "옳은 소리"라고 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진 고문 끝에 함석헌을 1년이나 교도소에 보냈다.
당시 함석헌을 고문하던 일본 형사는 "그냥 무력항쟁을 하는 놈들보다 500년 후를 내다보고 조선정신과 얼을 교육하는 네 놈은 훨씬 악질 놈이다!"라고 말했다. 함석헌은 일제강점기 핍박에 찌든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일본 점령자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희망'이라는 무기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함석헌은 항상 권력의 비판자였지, 결코 권력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함석헌은 해방 전과 북한의 소련군정 하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해방 후 월남한 대한민국에서조차 같은 동포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의해 수감과 연금생활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했다. 불의한 독재 권력에 대한 함석헌의 가차 없는 비판 때문이었다.
문창극에 이은 김형석처럼 권력의 주변을 맴도는 기회주의자들이 함석헌의 말과 글을 함부로 인용하면서 그를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함석헌은 "돈에 팔려 씨알을 저버린 언론인"을 비판하고 "이제 믿을 것은 권력자가 아닌 우리들 자신인 씨알밖에 없다"며 자신을 씨알과 동일시하며 그 씨알을 위로했다. 반면 이들은 민중을 멸시하고 친일 사대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자들이다.
현재 한국정치에서 이른바 '국민의힘'으로 불리는 세력을 보수나 극우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진정한 보수는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극우의 필수 조건인 민족주의나 민족우월주의가 전혀 없다. 오히려 친미·친일 사대주의가 기본 값인 이들은 '매국의 힘'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씨알의 대변자로서의 함석헌
함석헌은 한국 역사를 씨알의 입장에서 보았다. 기득권자나 가진 자의 통치 논리가 아닌 소외된 서민, 소수자, 패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시선을 갖고 고난에 찬 삶을 살았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나? 함석헌의 추종자들 또한 최소한 기득권자나 "부자의 대변자"가 아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줄 모르는 서민, 씨알의 대변자, 즉 '씨알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팽배한 극단적 양극화와 혐오의 분위기 속에서도 함석헌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강자 독식과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이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함석헌이 주장한 '같이살기운동'의 정신은 더욱 절실하다. 이른바 '작은 정부'의 구호 아래 강자가 약자를 유린할 때 '중립'이라는 미명으로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은 결코 함석헌이 걸었던 길이 아니다.
광복 80주년인 올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것이다. 친일매국 세력들의 역사왜곡과 정신적 테러에 맞서 진실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것이 순국선열들과 함석헌 같은 양심적 지식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도리인 것이다.
나는 1979년 겨울 김동길 선생을 통해 함석헌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고, 그 다음해 봄 함석헌을 처음 만났고 온몸에 감전되는 듯 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그 순간은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함석헌은 나의 베아트리체가 되었고, 나를 "지상에서 영원으로" 매순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함석헌은 한국역사를 짊어지고 나갈 주체로 씨알을 꼽았다. 씨알은 감투도, 돈도, 세력도 없지만 자기가 속한 시대와 사회에 대해, 자기의 세속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기회만 있으면 준엄하고 공정한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인간의 가치, 삶의 가치가 돈이나 경제보다는 훨씬 더 위에 있는 도덕적 가치라는 것을 삶으로써 일깨워 준 이상주의자! 그것이 내가 보는 함석헌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리는 인간이 만든 제도에 갇히지 않는다. 진리는 모든 사람 속에 빛나는 그 빛에서 드러난다. 함석헌은 박해 속에서도 그 빛을 담대히 증언했고, 그의 삶은 나에게 신앙이란 울타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 안에서 앞으로 걸어가는 길임을 일깨워 준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함석헌 사상과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씨알의 가슴을 울리고 한국 역사와 더불어 영원한 '씨알의 소리'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책을 다시 한 번 세상에 내놓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