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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사 온 동네에는 '야기사와 베이스'라는 작은 과자 가게가 있다. 파란색 파라솔이 시그니처인 협소한 가게. 처음 봤을 땐 '이 좁은 곳이 장사가 되나?' 싶었다. 마트가 넘쳐나는 시대에 단독 과자 가게라니. 심지어 영업시간도 점심에 열고 초저녁이면 닫는다. 그런데 얼마 지나고 이유를 알게 됐다. 이곳엔 충성심 높은 고정 단골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단골의 정체는 바로 초등학생들이다.

하굣길 과자 가게에서 시끌벅적해서 밖을 내다 보니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하굣길 과자 가게에서시끌벅적해서 밖을 내다 보니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 박민진

평일 오후 3시 30분, 밖이 시끌벅적하다. '학교가 끝났나보군'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봤다. 역시나 야기사와 베이스 앞이 아이들로 북적거린다. 아이들은 손에 과자를 쥐고 서로 장난을 치며 웃는다.

한 아이가 치즈맛 과자를 들고 친구와 장난을 친다. 다른 아이는 진열대를 바라본다. 가게 주인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사지 않고 가게 벤치를 점령해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영업방해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가게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지만, 가게 안은 웃음과 잡담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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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초등학생들은 한국과 달리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적다. 방과 후 학원 버스 대신 놀이터에서 흙과 물로 초코 우유를 만든다. 나무에 기어오르고, 시소를 타며 놀다가 밥시간이 되면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맞춰 집으로 돌아간다.

솔직히 처음에는 좀 시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좁은 집 안에서 이력서를 쓰며 고군분투하고 있었으니까. 취업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고, 진로 고민과 경제적 문제에 마음이 무거웠다. 31살 먹고 참으로 부끄럽게도 저 아이들이 미웠다. "뭐가 그렇게 신났지? 너희도 크면 나처럼 고민하며 살아야 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헌데 오늘은 달랐다. 아이들의 소리가 평온한 하루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일 뿐이고, 가게는 그 시간을 위해 존재했다. 진열대 위 초코볼, 치즈맛 과자, 구운 감자칩까지.

주인은 아이들에게 과자를 건네며 살짝 웃는다. 아이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과자를 고른다. 주인의 눈빛과 아이들의 표정 속에서 작은 공동체의 온기를 느낀다. 이 가게가 아이들에게 작은 세상이자 힐링 아지트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잠시 내 고민을 내려놓는다. 오늘 하루의 배경음으로서 시끄럽고 활기찬 소리가 내 마음에 스며든다. 그들의 느긋함에 옮아버린걸까. 아이들의 순수함과 자유로움, 작은 공동체의 즐거움이 평온하게 다가온다. 삶은 초조함 속에서도 여유가 필요하다며 힌트를 주고 있었지만 이제야 눈치를 챘다.

야기사와 베이스는 단순한 과자 가게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공간이고, 초조한 어른에게는 한 숨 돌리라는 신호다. 좁은 골목, 파란 파라솔 아래, 하굣길의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서 오늘도 평온을 배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렇게 소소한 순간이 모여, 우리네 하루는 충분히 살 만하다고.

#일본생활#일본이야기#초등학생#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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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진 (mjpark3) 내방

일본에서 시바견과 함께 사는 30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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