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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안에 담겨있는 사회적 의제를 다룹니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인터뷰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조 회장이 은둔형 경영자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2015년 5월 <포브스아시아>와의 인터뷰는 그래서 눈에 띈다. '은둔형'이란 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깨는 직설적인 내용 때문에 더 그렇다.

"아버지 생전에는 대한항공을 탔었는데, 12년 동안 대한항공을 타지 않았습니다."

조정호 회장은 말합니다.

"저는 대한항공을 타지 않습니다."

그와 조양호 회장은 서로 말도 하지 않고 편지 한 통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명절이나, 아버지 추모식에서도, 공식적으로든 의례적으로든. 사실, 조정호 회장은 놀라울 정도로 직설적입니다.

"저는 그가 싫어요."

일삼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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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11월 4일 한진오슬로호 명명식 당시 모습이다.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가운데)과 4남. (왼쪽부터)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 전 한진중공업 회장.
1998년 11월 4일 한진오슬로호 명명식 당시 모습이다.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가운데)과 4남. (왼쪽부터)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조남호 전 한진중공업 회장. ⓒ 구 한진그룹 자료사진

조 회장의 아버지는 조중훈 한진그룹·대한항공 초대 회장이다. 큰형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이 2019년 4월 사망했을 때, 조정호 회장은 장례식 둘째 날 모습을 나타냈다. 조 회장에게 기자들은 "또 올 건가?"라거나 "오늘이 마지막 인사인가"라는 등의 질문을 던졌다. 조 회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은 '한진가 앙금 풀릴까'였다.

앙금, 무려 10년 넘게 쌓였던 응어리다. 한진가 형제들 사이의 응어리가 쌓인 결정적 계기는 2002년 11월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그 후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두고 말 그대로 골육상쟁이 벌어졌다. 그룹 지주회사였던 정석기업 지분 문제는 물론, 아버지의 유서가 조작됐다는 의혹까지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일삼이사'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조양호(장남)·조수호(삼남), 조남호(차남)·조정호(사남)으로 나뉘어 싸웠기 때문이었다.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사망(2006년 11월) 후에도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 형제들은 아버지가 생전에 기거하던 '부암장'을 놓고도 싸웠다. 2009년 2월 대한항공은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제주도 토지소유권을 이전하라고 소송을 냈다. 기업 간 대리전으로까지 번졌던 셈이다.

2011년 법원의 화해권고가 받아들여지면서 법정 싸움은 끝났지만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제사를 따로 지냈고, 아버지의 추모식 또한 함께 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앞 <포브스아시아> 인터뷰만 봐도 또한 그러하다. 형제 간 소송이 일단락 된 다음에도 대한항공을 계속 이용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조 회장의 응어리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셈이다.

응어리

 2016년 12월 16일, 조양호 한진그룹 당시 회장(왼쪽부터),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부인이자 조 회장의 모친인 김정일 여사의 입관식을 위해 빈소를 떠나고 있다.
2016년 12월 16일, 조양호 한진그룹 당시 회장(왼쪽부터),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부인이자 조 회장의 모친인 김정일 여사의 입관식을 위해 빈소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그 응어리는 '막내로서의 설움' 때문에 그 농도가 더 진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큰형 조양호는 "한진그룹의 보석과도 같았던(포브스아시아 표현)" 대한항공을 물려받았다. 둘째 형 조남호에게는 당시 국내 4위 조선업체였던 한진중공업이, 셋째 형 조수호에게는 한진해운이 상속됐다. 조 회장의 몫은 한때 최악의 재무구조로 퇴출위기까지 몰렸었던 메리츠증권과 동양화재였다.

이같은 상황을 두고 조정호 회장은 "남은 재산"이라고 표현했다. 조 회장은 <포브스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그룹을 분할할 때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너희 중 일부는 더 큰 몫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하지만, 큰형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4형제 모두 대한항공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지만, 선친께서는 자식들의 전공과 성격 등을 감안해 주요 계열사를 맡기신 것 같습니다. 항공은 그룹의 주력 업종이고, 전문 기술의 이해가 필요한 만큼 공대 출신인 제가 맡게 됐고, 둘째는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데다 성격도 걸걸해서 건설·중공업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셨죠. 또 국제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한 해운쪽은 사교적인 셋째가 적성에 맞을 것으로 보셨고, 막내는 금융분야 공부를 죽 해왔으니 그룹의 금융을 책임지도록 하셨습니다." (조양호 회장, 2005년 7월 10일자 서울신문)

이런 사정을 접하고 나면 조정호 회장이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메리츠'라는 그룹 이름에서도 응어리가 엿보인다. 가치, 우수함, 공로를 뜻하는 메리트(merit)에는 인정을 받을 만하다거나 정당하다거나 하는 일종의 전제가 담겨 있다. 혈연, 학연 등이 아니라 실력이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는 이 말에 조 회장이 'z'을 추가해 사명을 변경한 것은 2000년 3월이었다.

25년이 지났다. 큰형이 물려받았던 대한항공의 현재 시가총액은 9조 원 정도다. 둘째형이 물려받은 한진중공업과 셋째형이 물려받은 한진해운은 경영 부실로 인해 그 이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2011년 2000억 원이었던 메리츠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은 현재 약 21조 원으로 100배 넘게 커졌다. 포브스아시아 인터뷰 당시 조 회장은 부친이 했던 말 한 가지를 더 전했었다.

"하지만 걱정 마라. 중요한 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다."

[프로필] 그의 공언 "승계는 없다"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 메리츠금융그룹

1958년 10월 인천에서 태어났다.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 회장의 4남 1녀 중 막내다. 큰형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2019년 사망)과는 아홉 살 터울이다.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왔다. 보스턴 대처 고등학교,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경제학과) 등을 거쳐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 MBA 과정을 밟았다. 미국 영주권 보유자 신분으로 병역은 면제.

1983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나이는 25세, 직위는 차장이었다. 1989년 당시 한진그룹 계열사였던 한일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후 지금까지 줄곧 금융사에 몸을 담았다. 한일증권 전무이사(1993), 동양화재해상보험 부사장(1996), 한진투자증권 부회장(1999), 메리츠화재 부사장(2000), 메리츠증권 대표이사 회장(2003) 등을 거쳐 2011년 8월에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됐다.

'범LG가' 구자학 전 아워홈 회장(2022년 사망)의 사위다. 장모는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딸인 이숙희씨다. 이른바 '재벌가 혼맥지도' 복판에 있는 셈이다. 1987년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녀 조효재씨(조민기에서 개명)는 메리츠금융지주 지분 0.09%(16만 8130주)를 소유하고 있다. 장남 조원기씨와 차녀 조효리씨는 메리츠금융지주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2023년 12월 5일 열린 제2회 한국기업거버넌스대상 시상식에서 경제부문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수상 소감을 통해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주목받았다.

"승계는 없다. 대주주의 1주와 개인 투자자의 1주는 동등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 함께 웃어야 오래 웃는다."

최근 기업분석전문기관 한국CXO조사연구소에 따르면 조정호 회장의 주식재산은 12조 3943억 원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다음으로 많다. 2015년 5월호 <포브스아시아>는 인터뷰 당시 13억 달러(1조 8207억 8000만 원)라고 소개했으니, 약 10년 동안 7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조정호#메리츠금융지주#대한항공#한진그룹#재벌혼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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