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TV쇼 진행자 지미 키멜이 2019년 8월 7일(현지시각) 할리우드 루즈벨트 호텔에서 열린 ‘지미 키멜과의 저녁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AFP=연합뉴스
디즈니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으로 잠정 폐지했던 ABC 방송의 <지미 키멜 라이브(Jimmy Kimmel Live)>가 방송 중단 일주일도 안 돼 재개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5일(현지 시각), 키멜이 자신의 토크쇼에서 보수 진영 논객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유타주의 대학 연설 중 암살된 사건을 언급하며, 트럼프와 그 지지 세력(MAGA)이 이 사건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한 데서 시작됐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방송국 면허 취소를 운운하며 반발했고, 디즈니는 무기한 방송 중단 조치를 내렸다. 일부 제휴 방송국에서는 그의 쇼 송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심야 토크쇼 진행자이자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Jon Stewart)는 3년 전 마크 트웨인상을 수상하며 다음과 같이 소감을 말한 바 있다.
"코미디언은 탄광의 바나나 껍질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사회가 위협받을 때 가장 먼저 쫓겨납니다."
권력이 올바른 방향에 서 있지 않을 때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은 위험해진다는 그의 말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파시스트 정권처럼"… 디즈니, 거센 역풍 맞아
지미 키멜 쇼의 중단은 미국 내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으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들은 파시스트 정권이 언론을 검열하고, 결국 구미에 맞는 언론만 남긴 걸 우려해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였다.
또한 디즈니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디즈니+, 훌루(Hulu), ESPN+ 등 디즈니 계열 OTT 플랫폼의 구독 취소와 디즈니월드·디즈니랜드·디즈니 크루즈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벌어졌고, 그 여파로 디즈니 주가는 하락하며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디즈니는 키멜과 협의를 거쳐 방송 재개를 결정했고, 23일 복귀 방송이 이뤄졌다. 이번 사태는 권위주의적 압력에 맞서 여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트럼프가 해고시켰다"던 키멜, 오히려 시청률·조회수 폭발
ABC에 따르면 재개된 지미 키멜 쇼의 TV 시청자 수는 약 630만 명을 기록, 최근 10년 중 최고 시청률을 나타냈다. 또한 '지미 키멜이 돌아왔다'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모노로그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수 1800만 회를 돌파하며, 키멜 유튜브 중 역대 최고 조회수를 세웠다. 이는 트럼프가 키멜의 해고를 두고 '재능이 없고 시청률이 저조하니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과가 됐다.
다시 돌아온 지미 키멜은 열렬한 환호 속에 복귀했다. 오프닝에서 방청객 전원이 기립해 그를 환영했고, 키멜은 '지미 팰런, 코난 오브라이언, 세스 마이어스, 존 스튜어트는 물론 유럽 각지으 동료들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 있는 사람들이 손을 내밀었다고 말했다. 지어 독일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에게 일자리 제안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종 업계의 연대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준 이들에 대해서도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지미 키멜은 자신을 싫어하고 해고되기를 바란 인물 중 하나인 테드 크루즈(Ted Cruz, 공화당 상원 의원)의 발언을 인용했다. 테드 크루즈는 "만약 정부가 언론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방송을 금지한다면 보수파에 나쁜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라고 했고, 키멜은 "그가 옳다"며 지지를 표했다.
키멜은 크루즈의 평소 발언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가 정부에 반하는 의사를 용기 있게 표현한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진보가 보수를 공격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견의 차이를 넘어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좌우 모두가 단합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했다.
"내 쇼는 중요하지 않다, 이 쇼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중요하다"
또 이번 사태로 합의점을 찾고, 그 합의에서 더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제시했다. 그는 총기로부터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사회보장, 여성의 권리, 의료 서비스 등 미국인들이 지지하는 가치들을 위해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쇼는 중요하지 않지만, 쇼를 할 수 있는 나라에 살 수 있는 것은 중요하다'며 자유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덧붙여 정부 권력이 코미디언을 침묵시키기 위해 강압적으로 나서는 것은 미국적인 일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밝혔다.
키멜은 생계 수단을 잃을 뻔한 위기 속에서도 위축되거나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련되고 현명한 방식으로 트럼프를 비판하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교과서적인 토크쇼를 남겼다. 그는 다른 토크쇼가 폐지될 조짐이 보일 경우 지금보다 열 배는 더 큰 목소리로 저항할 것이라며,정부의 언론 통제와 탄압에 어떻게 항거해야 하는지에 대한 '행동 강령'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과연 이런 게 미국일까' 했던 의구심을 '이게 바로 미국이지!'라고 명징하게 돌려놓았다. 방송 폐지와 복귀까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사태는 파시스트적 권력을 국민의 목소리로 제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해 낸 역사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