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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인터뷰 실린 타임지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공개한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인터뷰가 실린 미국 타임지.
이 대통령 인터뷰 실린 타임지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공개한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인터뷰가 실린 미국 타임지. ⓒ 연합뉴스

지난 18일 취임 100일을 맞이한 이재명 대통령이 타임(TIME)지와 인터뷰를 했다. 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타임지의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여긴 이가 있다면,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대한민국은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국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타임지의 표지 모델로 한국 대통령이 선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윤석열도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타임지에서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했다. 이는 공신력 있는 매체인 타임지가 윤석열이라는 개인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영향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물론 윤석열은 타임지의 표지 모델이 된 적은 없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영향력과 위상을 고려하면, 단순히 한국의 대통령이 표지 인물로 선정되었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과연 우리 대통령이 무엇을 말했는지 그리고 그들은 이를 어떻게 발아들이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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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타임지는 이재명 대통령을 표지 모델로 제시하며 핵심 단어로 '가교'(The Bridge)를 제시했다. 타임지는 왜 이 단어를 제시했을까. 그런데 이걸 짚는 우리 언론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타임지 인터뷰가 공개되자, 모든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런데 신기할 만큼 제목이 비슷했다. 대다수 한국 언론은 이 대통령이 타임지와 미국과의 관세협상에 대해 집중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것처럼 보도했다. 보수, 경제지는 물론 진보 언론의 제목도 모두 대동소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에서 있었던 대미투자 협상 과정과 관련해 언급한 "미국의 요구에 동의했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는 말을 제목으로 뽑았다.

그렇다면, 본문 내용은 어떨까? 대다수 언론들이 전하는 본문 내용도 비슷하다. 이번 인터뷰 기사의 양도 많을뿐더러 여러 측면에서 분석할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분석'이 아닌 '번역'을 했다고 본다.

타임지는 무엇을 보도했는가

이번 인터뷰 기사를 통해 이 대통령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타임지는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적 혼란 속에서 당선되는 과정을 명확하게 짚었다. 타임지는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에서 비롯되었고, 이로 인해 한국이 단순히 정치적 마비 상태를 넘어 소중한 6개월의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계엄으로 한국의 대미 무역 협상이 다른 국가들보다 반년이나 뒤처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타임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에서 관세를 15% 낮추는 협상 결과를 이끌어 냈다고 평가했다.

둘째, 이건 다소 창피한 일이지만 타임지는 6개월의 혼란 이후 들어선 이재명 정부의 첫날을 다음과 같이 적나라하게 전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상상했던 취임 첫날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6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이튿날 아침 서울 도심의 새 집무실에 도착한 그의 참모들은 쓰레기가 흩어진 방과, 모니터만 남고 컴퓨터 본체는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책상들을 마주해야 했다. 문을 여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며, 기본적인 문구류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치 고관여층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는 최소한의 인수인계는 고사하고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구류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실을 타임지가 짚은 것이다.

셋째, '가교'에 대한 해석이다. 앞서 타임지 표지를 보면 'The Bridge'라고 제목이 달려 있다. 지난 문재인 대통령 당시에는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점을 고려해 표지에 'The Negotiator'(협상가)라는 제목을 제시했다. 이처럼 타임지가 이재명 대통령을 메인 모델로 내세우면서 '가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번 인터뷰 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더 이상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전통적 공식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가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대통령은 한국이 경쟁하는 초강대국들 사이에서 '가교(bridge)'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새로운 강대국 경쟁 시대에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South Korea can instead act as a "bridge" between the rival superpowers to prevent relations spiraling in this new era of Great Power competition.)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인 상황을 고려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 방향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분명 초강대국들(superpowers)을 언급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에 대한 타임지의 해석은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타임지는 다음과 같이 재해석한다.

"지정학적으로, 이 대통령은 한국을 동서 간의 '가교(bridge)'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Geopolitically, Lee wants to position South Korea as a 'bridge' between East and West.)

타임지는 이재명 대통령이 단순히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사이의 가교가 아닌 동서의 가교가 되길 원한다고 재해석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이재명 대통령은 경쟁하는 두 초강대국(superpowers)이라고 표현했는데, 타임지는 굳이 이것을 동과 서(East and West)로 해석했다. 타임지가 단순히 중국을 동, 미국을 서로 표현한 것이 아니다. 타임지가 이렇게 재해석한 것은 인터뷰를 진행했던 날(9월 3일) 같은 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거행된 중국의 전승절 행사와 관련이 있다.

 9월 3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각국 외교 사절단 대표들이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하고 있다.
9월 3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각국 외교 사절단 대표들이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하고 있다. ⓒ AFP 연합뉴스

타임지는 인터뷰 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동서 간의 가교가 되길 원한다고 전하면서 중국 전승절 이야기를 덧붙였다. 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불과 600마일 떨어진 베이징에서 시진핑, 푸틴, 김정은이 중국의 전승절을 기념하고 있는데 서방 언론들은 전승절에 참석한 이란, 벨라루스, 미얀마 등의 지도자들을 포함해 미국 주도의 질서에 도전하는 '이질적인 집단'(cohort)으로 분석했다고 전했다. 즉, 타임지는 단순히 중국을 동으로 치환한 것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질서에 반하는 중국 중심의 국가들을 동(東)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럼 전승절에 가지 않은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서(西)로 봐야 하는가? 타임지는 바로 이어 굳이 이재명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붙였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중국이 저에게 참석을 원했던 것 같지만, 더 묻지는 않았습니다"라며 웃었다. ("I think China wanted me to attend, but I didn't ask further," laughs Lee.)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전승절 행사에서 중국 정부가 자신이 참여하길 원했다는 것을 은연중에 밝힌 것이다. 이것은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을 중국이 원하고 있고, 한국은 상황이 바뀌면 중국과도 관계개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그리고 타임지는 한국의 이 같은 외교적 위치가 단순히 미국과 중국의 두 강대국 사이가 아닌 동과 서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외교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국제적 영향력이 있어야 하고, 두 진영 모두 원하는 국가여야 한다. 그런데 이제 한국은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이전 윤석열 정부와 달리 미국 일변도의 외교만을 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타임지는 이재명 대통령이 해외 첫 순방지로 미국이 아닌 일본을 선택한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타임지는 이재명 대통령을 배출한 더불어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중국과 가까웠고, 과거 식민 지배국인 일본에 대해 적대적이었으며, 미국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왔다고 분석한다. 그런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이재명 대통령이 첫 해외 순방지로 일본에 가서 17년 만에 처음으로 한일 공동성명을 발표한 점에 주목했다. 이 같은 타임지의 분석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적 중요도를 가늠할 수 있으며, 동시에 윤석열 정부 당시 상수로 전락해버렸던 한국의 외교가 이재명 정부 들어서고 다시 변수로 변모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화답?

이 같은 해석이 과한 것일까? 타임지 보도 이후 외신을 찾던 중 흥미로운 보도를 발견했다. 그 보도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Global Times) 기사다. 이 매체는 국제 독자들을 대상으로 영문으로 배포되는데,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인터뷰 기사를 나름 상세하게 전했다. 제목이 '이재명, 한국을 동서 가교로 세우고자 한다'이며, 핵심 내용은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이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과 함께 설 것이지만,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도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를 보면 이재명 대통령이 이전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그러면서 관련 발언들을 전하고 있는데, 기사 말미에 중국의 대표적인 국책 싱크탱크 중 하나인 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 한반도연구센터장 천샹양(Chen Xiangyang)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가교' 역할을 자처한 것은 10월 경주에서 개최예정인 APEC 정상회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하며, 한국 정부가 개최국으로서 미중 정상을 초청해 미·중 관계 개선의 신호를 만들어내길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한국이 미·중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진전을 이끌어낸다면, 이는 한국의 지정학적 압박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 영향력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한국 정부의 바람이 아닌 중국 정부가 원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중국 관영 매체를 통해 중국 국책 싱크탱크의 센터장이 발언한 것이라면 중국 정부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가교'(Bridge)를 타임지가 재해석하고, 다시 그것을 중국 정부가 눈여겨 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결과를 떠나서 대한민국이 다시 외교에서 변수가 된 것은 분명하다. 다행이다.

#타임지#이재명대통령#취임100일#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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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중 (skek3846) 내방

이름은 박민중입니다. 생일은 3.1절입니다.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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