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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노동권익센터가 주최한 2024년 제2회 감정·비정규 노동자 수기 공모전에서 11편의 작품이 당선됐다. 이 작품들은 공공기관 민간위탁 노동자, 도서관 비정규직, 사회복지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의 감정·비정규 노동자들이 일상 속에서 겪는 고충과 희망을 담고 있다. 이 수기집은 노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근 십여 년 만에 다시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이 직장을 옮기며, 나도 일하던 곳에 사직을 고하고 새 일자리를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침 시기가 잘 맞아서 모 공공 도서관에서 계약직 사서로 일하게 되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도서관은 같은 체계를 가지고,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적응하는 게 어렵진 않았다. 오랜만에 다시 전공을 만난 것도 기뻤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고, 부산시 도서관의 KLAS 프로그램을 처음 쓰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에 기본적인 사용법 외에 각종 예외사항이 계속 튀어나왔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지만 최소 일주일에서 한 달의 적응기를 거쳐야했다.

이용자를 바로 마주하고 하나씩 실습하며 배워야했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서비스직이 으레 그렇듯, 한 번의 응대가 도서관의 이미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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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 기간 동안 사서 선생님들의 인내심에 감탄할 다름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 같은 해탈의 경지였다. 그렇게 매일 아침 무인 반납함을 정리하며 소급 처리하고, 다른 도서관과 대출을 연계하는 상호대차 서비스에도 익숙해 졌을 때쯤 다들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조금 이르다 싶었지만, 계약기간이 6개월밖에 안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기는 버스가 바로 안 가서 너무 먼데..."

같이 일하는 언니가 보고 있는 도서관은 매우 먼 곳이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언니의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4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여기 너무 멀지 않아요?"
"그래도 K구는 다시 일 못하니까."

그때 처음으로 같은 구 안에서 연속으로 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말요? 6개월밖에 안 하는데?"
"그렇지, 다른 데 한 번 갔다가 다시 올 수는 있대."
"K구 안에 다른 도서관도 안 돼요?"
"아니, 같은 구는 안 되고 다른 구로 가야해."

그제야 근로계약서를 다시 보니, 갑에 K구청이라 되어 있었다. 6개월 단위로 촘촘하게 나뉜 계약직은 그나마도 한 번 밖에 일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K구청에서 직접 일하든, K구청 산하의 다른 공공기관에서 일하든 6개월을 일하면 연속으로 일할 수 없었다. 정규직 전환 조건이 연속으로 2년을 근무하는 것이니 그건 아닐 테고, 1년을 채우면 퇴직금이 나가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다름이다.
계약기간이 명시되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너무 짧았다. 일에 적응할 만하면 다시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니 말이다. 아예 운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보조 인력이라면 모르겠지만, 계약직 직원이 없으면 도서관이 돌아가지 않았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들과 만나면 농담 삼아 '당신이 만나는 사람은 사서가 아니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서 공무원들이 서류에 매여 있는 동안 일선에서 이용자와 마주치는 사람은 계약직 직원이기 때문이다. 사서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사서자격증이 필수는 아니니까. 어떻게든 끼워야 하는 부품인데, 원래 있던 부품도 갈아야 하는 부품도 다 마모가 심해 버티기 힘들어 보이는 구조였다.

그래도 일하는 동안 좋은 점이 있다면, 월급이 제 때 나오고 정시 출퇴근이 가능하고, 나중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단 거였다.

"끝나고 실업급여 받으면서 조금 쉬면 되겠다."

다만 받은 사람은 없고, 공허한 위안 같은 소리였다.

"실업급여는 3개월밖에 안 나오는데, 채용이 6개월마다 있으니까 3개월은 아무런 수입 없이 지내야 하잖아. 아무래도 나는 바로 일해야 할 것 같아."

뉴스에서는 누구나 실업급여를 받고 편하게 일한다고 하던 황금 근로의 현실이었다. 정작 어려운 사람은 쓸 수 없고, 취미로 일하는 사람만 가능한 일이었다.

문득 도서관을 보니, 같은 장소에서 일하는데 일하는 시간과 직함, 대우가 모두 달랐다. 9시에서 6시까지 근무하는 조가 있고, 도서관 연장 사업으로 인해 1시 출근, 10시 퇴근하는 자리도 있었다. 거기에 도서관 마다 시급도 달랐다. 부산시 생활임금이 적용되는 곳이 제일 나았고, 각 구의 생활임금이 조금 낮았다. 최저시급이 적용되는 자리가 제일 낮았다. 시간당 몇 백 원 차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 급여를 따져보니 제법 차이가 났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A언니가 사석에서 물어봤다가 분위기가 굳었다고 한다. 서로 같이 도서관에서 일하고 비슷한 근로계약서를 써도 임금이 달랐기 때문이다. 식대 지급 여부도 달랐고, 1일부터 바로 계약을 하지 않아 6개월이 안 되는 곳도 있었다. 이것도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6개월을 채우면 장려금이 나오는데, 2일자로 계약이 되면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볼 때 가장 박한 자리는 주말 근무였다. 주말에도 운영을 하는 도서관 특성상 토, 일 이틀만 일하는 데 급여도 정확히 일한 날에 맞춰 칼같이 받았다. 주중 15시간을 넘기면 주휴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하루 7시간 근무로 이틀 일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주말에 공휴일이 끼여 있으면, 근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

월 60시간이 되지 않는 초단기 근무자라 4대 보험도 포함되지 않아 실업급여도 해당되지 않았다. 주말 근무를 했던 언니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와, 작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진짜 작네.' 그만큼 많이 그만 두고, 자주 뽑는 자리다. 면접에 맞춰 4배수로 뽑힌 사람들이 정장을 입고 도서관에 오는 것을 보면 못내 답답해진다.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 교수님들이 해준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런 자리는 가면 안 돼. 사람을 아주 우습게 아는 곳이야. 아무도 안 가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런데 그런 자리에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다. 각자의 사정과 함께 말이다.

어쨌거나, 시스템의 문제지 일과 사람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시간도 금방 흘러, 11월 중순 쯤 되자 다들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언니들이 어쩐지 연차를 아껴둔다 싶었더니, 마지막 달에 면접을 보기 위해 아낌없이 다 털어 넣었다. 취업 운이 나쁘지 않았는지 다 다른 도서관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마음에 드는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A 언니는 두 시간 거리의 Y구 도서관으로 가서, 매일 6시 30분에 버스를 타러 나온다고 했다. 거기에서 6개월을 일하고 다시 K구로 오고 싶다고 했다. B 언니는 작은 도서관으로 갔다. 역시나 출퇴근을 힘들지만, 조용한 곳이라 마음에 든다고 했다. 다만 1인 근무라 식사 시간이 따로 없다고 했다.

"아니, 밥시간도 없어요?"
"이용자가 별로 없을 때, 냄새 안 나는 걸로 조금씩 먹어."
그 말에 A언니가 우스갯소리로 이어 받았다.
"조금만 버티면 되요, 다음엔 K도서관에서 만납시다."

정말 웃긴 얘기였다. 왜냐하면 B언니가 새 도서관으로 출근한지 일주일도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정말이네요. 조금만 버티고, 다음에 또 만나요."

우리끼리는 이런 일을 메뚜기 뛴다고 부른다. 여기에서 6개월, 저기에서 6개월. 하지만, 정말 이렇게 일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을까? 그래도 그런 얘기를 해봐야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도 하나도 없으니, 서로 희망적인 얘기만 한다.

"다음 가을엔 모두 같이 봐요."

물론 가을에 우리를 다 같이 뽑아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말이다.

도서관 부산노동권익센터 감정비정규 노동수기집 도서관 일러스트
도서관부산노동권익센터 감정비정규 노동수기집 도서관 일러스트 ⓒ 부산노동권익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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