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5.09.23 10:55최종 업데이트 25.09.23 13:56

삶이란 결국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일

제주에서 '4·3기념 사랑과 평화의 성당'을 짓기 위한 모금 행사를 도우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에 다니던 성당을 도와주러 부산까지 먼거리를 다녀왔다. 이미 떠나온 지 오래라 연락을 꾸준히 주고받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떠올랐다며 '혹시 시간이 되면 도와줄 수 있냐'는 반가운 연락에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했다. 마침 일정이 맞았고, 기꺼이 내 마음도 곧바로 '네 함께 할게요~' 라는 말과 함께 준비가 되었다.

내가 다니던 제주 서귀포의 중문성당은 2027년 세계 청년대회를 앞두고, 제주에서 '4·3기념 사랑과 평화의 성당'을 짓기 위한 모금을 전국 성당을 돌며 진행중에 있다. 제주만의 성당이 아니라 전국이 함께하는 성당,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그 위에 사랑과 평화를 새기고자 하는 취지의 성전 건립을 추진중인 것이다.

21일은 부산교구 임호성당에서 모금이 이뤄지는 날이었고, 나는 부족하지만 작은 손길로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다.

내 일이 아닌데도 기꺼이

AD
중문성당은 이제는 떠나온 지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로 처음 이주해 왔을 때 우리 부부에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주었고, 맞이해주었던 성당이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그 말에 세월이 흘렀어도 내가 곧바로 "네"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거창한 준비를 한 것도, 큰 결심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허락했기에, 작은 손을 보탤 수 있기에 기꺼이 발걸음을 옮겼을 뿐이다.

현장에 도착하자 다양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성전 건립을 위해 함께 애쓰는 신자들의 모습, 서로를 격려하며 웃음을 나누는 얼굴들, 또한 제주 서귀포에서 왔다는 신자들을 환대해주고 기꺼이 이야기 들어주는 임호성당의 신자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상황을 전하고, 마음을 보태주십사 부탁하는 신부님의 말씀에 작은 정성이 모여 커다란 울림이 되는 장면들.

나는 그저 주보를 나눠드리고, 기부금 약정서를 설명드리고 받는 일 등 필요한 일을 맡았을 뿐인데도, 그 속에서 매주 애쓰는 어른들과 도움주는 신자들 사이에서 이미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보탬, 큰 울림 작은 힘이지만 보탤 수 있어서 너무 뿌듯했던 주말
작은 보탬, 큰 울림작은 힘이지만 보탤 수 있어서 너무 뿌듯했던 주말 ⓒ 김태리

서로 돕는 마음들이 모여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모두가 함께'라는 분위기였다. 내 성당도 아니고, 내 교구도 아니지만, 저 멀리 섬에서 비행기타고 올라왔다는 우리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서로에게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덕담을 건네고, 잡은 손을 꼭 쥐어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새삼 '함께한다'는 말의 무게를 느꼈다. 단순히 돈을 모으는 일이 아니었다. 저마다 가진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것, 그리고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정성이 한데 모이고 있었다. 거기에는 계산도, 조건도, 대가도 없었다. 오직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마음뿐이었다.

성전건립 모금 행사를 돕고 비행기를 타고 집까지 돌아오는 길, 몸은 분명 무거웠다. 시간을 쪼개어 개인 볼일도 보고 성당일도 돕느라 잠을 몇 시간 못자기도 했던 탓에 어깨와 팔은 저릿저릿했고, 허리도 결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피곤함은 전혀 힘겹지 않다. 오히려 묘한 기쁨이 함께하고 있다. 내 손길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이, 온 몸의 피곤함을 금방 잊게 해준다.

사람들은 운동 후 찾아오는 근육통을 '보람의 통증'이라고 말한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단단히 채워졌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라도 될 수 있구나'라는 자각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삶이란 결국 서로 손을 내미는 일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도움을 주고받는다. 때로는 내가 손을 내밀고, 또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의 손을 붙잡는다. 그렇게 서로 기대며 걷는 길이 곧 삶 아닐까.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확인했다.

돈이 없다면 시간을 내고, 시간이 없다면 마음을 보태고, 마음조차 지칠 때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 그런 마음들이 모여 우리 사회는 여전히 버틸 힘을 얻는다. '함께한다'는 말은 그저 형식적인 구호가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인 손길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나는 남을 도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더 큰 도움을 받은 건 나 자신이었다. 그날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나눈 웃음과 덕담, 함께 한 기도는 오히려 내 마음을 위로했다. 지친 일상 속에서 다시 힘을 내게 해주었고, 작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다음에도 또 '혹시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또다시 '네'라고 답할 것이다. 그 순간이 결국 나를 살리고, 나를 단단하게 세워주기 때문이다.

제주교구 4.3 기념성당 중문지역 4.3 학살터
제주교구 4.3 기념성당중문지역 4.3 학살터 ⓒ 김태리
주말 동안 내가 한 일은 거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느낀 마음은 결코 작지 않았다. 다니고 있는 내 성당도 아니고, 모금을 하러 간 곳이 내 교구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분명히 한 마음이 될 수 있었다. 작은 손길이 모여 큰 힘을 이루고, 서로의 기도가 모여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삶이란 결국 그런 게 아닐까. 기꺼이 나눌 수 있고,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걸어가는 길. 이번 경험은 그 길 위에서 내가 다시 한 번 발걸음을 다잡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옆 마을 4.3 때 71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해 버려졌던 학살터에 세워진 중문성당. 그 피와 희생이 담긴 자리에 사랑과 평화를 다시 싹틔우기 위한 많은 이들의 노력들이 보태지고 있다.

#제주교구#중문성당#성전건립기금#43평화성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태리 (mistaeri) 내방

손글씨와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 제주에서 달리고, 쓰고, 만들며 작은 일상을 기록합니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어 창업한 <그마음굿즈>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