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아니죠? 이제 그만하고 나가요."
이리저리 밀리던 내게 어느 경찰이 한 말이다. 그 어떤 모욕적인 말보다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연대자들 곁으로 가지 못하고 경찰에게 둘러싸여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욕이라도 실컷 해줬어야 하는데. 별 대꾸도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 - 책 <오지필름>(2021년 9월 출간) 218p.
기자는 되고 감독은 안 된다. 지난달, 한국 다큐계를 들끓게 한 법원 판결이 있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우현)가 다큐멘터리 감독 정윤석에 대해 단순건조물침입 혐의를 유죄로 판단,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것이다. 서울서부지법 난동사건 당시 카메라를 들고 법원 경내에 들어가 촬영에 임한 대가였다.
다큐, 나아가 영화계는 반발했다. 난동을 기록하는 다큐 감독을 폭도처럼 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정 감독과 마찬가지로 법원에 진입한 JTBC 취재진은 처벌을 받지 않았단 점이 논란이 됐다. 해당 취재진은 이 보도로 기자상을 받기까지 했다.
둘 모두 사실을 기록하고 알리기 위한 행위임에도 어느 것은 법이 보호하고 다른 것은 처벌한다는 사실이 영화계의 공분을 일으켰다. 판결은 "개인적인 작품 활동은 보도 목적이 명백한 언론 기관과 비교해 수단·방법이 상당한지, 제3자의 법익을 침해하는지 등 정당 행위의 성립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정 감독의 행위를 정당하다 보지 않았다.
기자 출신 영화평론가로서 나는 이에 대한 입장을 요구 받을 때마다 민망함을 느낀다. 이는 그저 법원의 결정에 대한 민망함이 아니다. 한국 언론과 다큐가 걸어온 지난 시간을 충실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차마 언론은 되고 다큐는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장을 지켜온 다큐인들, 수많은 현장에서 기록하고 연대하며 저널리즘의 본령을 잃지 않았던 다큐인들 앞에서 언론만이 구분되고 구출될 자격이 있다고 차마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지필름책 표지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언론이 비운 자리를 지킨 오지필름의 카메라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인 9월이다. 일주일 일정, 이미 무거운 가방 안에 두터운 책 한 권을 챙겨 넣고 부산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지필름>이라 이름 붙은 책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지난 2021년 출간한 특별한 저술이다. 지은이는 오지필름, 모두 네 명의 다큐인(박배일, 문창현, 김주미, 권혜린)으로 구성된 부산 지역 영화 공동체다. 표지엔 굵은 글씨로 적힌 제목 위로 '독립다큐멘터리 영화 활동가, 10년의 기록'이란 문구가 적혔다. 이중 '영화 활동가'란 단어가 유달리 눈에 밟힌다. 이 말 아래 담긴 고뇌가, 깃든 의지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 단체나 정당 등에 몸담고 사회 변혁과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활동가라 부른다. 환경, 장애, 소비자, 정치, 경제정의, 사법정의, 노동 등의 분야에서 변화를 외치며 수고하는 활동가를 지금껏 백수십 명쯤은 만나 보았다. 그 활동가 가운데 영상 활동가는 떠오르는 직역이다. 글보다 영상이 파급이 큰 세상 아닌가. 유튜브며 SNS, 홈페이지를 통해 현장의 상황을 찍은 영상을 공유하는 일이 곧 운동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겠다.
영상 활동가는 오늘날 다큐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주도한다. 다큐멘터리 영화제에도 소위 영상 활동가들이 찍은 영화가 잇따라 출품되고 있다. 그 경향이 뚜렷하여 올해 초 제3회 반짝다큐영화제에선 영상 활동가를 불러 대담을 나누는 등 그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깊이 다루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건 대다수 영상 활동가들이 제 정체성을 감독으로 규정하지 않는단 점이다. 저들이 찍은 영상 기록을 영화의 형태로 편집해 출품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활동의 일환일 뿐 영화 작업 안에 활동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깨어난 침묵스틸컷 ⓒ 오지필름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오지필름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영화 활동가'라 규정한다. 활동가는 활동가이되, 영화로써 활동하는 이들. 영화를 놓지 않으면서도 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곧 오지필름의 지향이 된다.
'오지필름'은 올해로 14년 차 독립다큐 영화 활동가들의 공동체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어느덧 십 수 편의 다큐를 제작해 개봉하는 등 나름대로의 성취를 거두었다. 2011년 작 단편 다큐 <비엔호아>를 시작으로, <나비와 바다>, <그 자퇴하는 학생은 어디로 가면 됩니까!>, <나와 나의 거리>, <밀양전>, <밀양 아리랑>, <깨어난 침묵>, <소성리>, <기프실>, <라스트씬>, <사상>, <침묵보다 변화를>, <얼굴의 땅>, <지지 않는 마음>, <부력> 등 꾸준히 작품을 제작해왔다. 현재 진행 중인 작품만도 박배일, 문창현, 김주미 감독의 장편 네 편이 있을 정도다.
다룬 문제도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성주 소성리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반대, 부산 생탁 노동자 파업, 재개발과 거주민 문제 등 다채롭다. 극장 개봉에 이른 장편 다큐부터 영화제 출품작, 또 지역과 시민사회 단체를 통해 공동체 상영한 작품 등 관객과 만난 방식 또한 다양하다.
<밀양아리랑>이 개봉하고 관객과 만났다. 그리고 배일에게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관객과 만나서 사안을 알리고 연대의 차원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정작 관객은 외면해. 나는 왜 영화를 하고 있는 거지? 영화란 뭐지?' 영화를 통해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일은 영화가 연대의 도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혼란을 겪는다. -104p.

▲밀양 아리랑스틸컷 ⓒ 오지필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이기지 못할지라도
책은 오지필름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담긴 기록이다. 독립다큐 활동가로 10년을 지내며 이들이 겪고 느낀 점을 소상히 담아냈다. 그 안엔 언론이 비운 자리를 대신 채워낸 다큐인의 이야기가 있고, 현장에서 투쟁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활동가의 목소리가 있으며, 영화가 시들어가는 이 시대에도 영화란 매체를 붙들고 선 고집스런 예술가의 고민 또한 있다.
900일이 넘는 생탁 투쟁 동안 부산의 시민 사회는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오지필름은 시민 사회가 <깨어난 침묵>을 활용해 부산의 노동 현실과 권력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알리길 바랐다. 하지만 시민 사회의 반응은 미적지근 했다. -110p.
부산이란 대도시에서조차 지독한 무관심과 맞닥뜨려야 하는 버거운 현실 또한 언급된다. 결코 풍요롭다 할 수 없는 독립 다큐, 또 영화 활동가의 영역을 그럼에도 지켜나갈 수 있는 동력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무엇보다 오지필름이 10년 간 밟아온 시행착오는 그대로 척박한 지대 위에 버티고 선 활동가며 독립영화인의 귀한 기록이 된다.
다큐멘터리를 매개로 소외된 목소리와 세상을 연결하는 게 오지필름의 역할이라면, 오지필름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걸까? 밀양에서 생탁 그리고 소성리로 영화 활동이 이어지면서 느껴지는 허무가 오지필름 안에 쌓여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 130p.

▲소성리스틸컷 ⓒ 오지필름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한 작가가 책임 지고 서술한 책이 아니라 오지필름 네 구성원의 이야기를 구술로 수록하고, 단체를 지지하는 이들이 보내온 글을 뒤에 붙여 어수선한 인상을 준다. 앞서 언급된 사정이 뒤에 수차례 다시 나온다거나, 사람을 달리 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대목은 읽는 이의 주의를 분산케 할 수 있어 아쉽다. 또 책 후반부에 실린 여러 기고는 전반 기록과 다분히 이질적이다.
오지필름의 모든 시도 또한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 수상작 <소성리>의 관객수는 2266명, <사상>엔 그 절반을 조금 넘는 1197명이 들었다. 가장 많은 관객이 든 <밀양 아리랑>은 3045명이다. 집계가 되지 않는 공동체 상영까지 포함하면 조금 더 늘어나겠으나, 들인 수고에 비해 적은 관객 수인 게 사실이다. 팟캐스트를 비롯해 독립다큐 지역 상영회 작업 또한 끝내 중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실패의 기록은 시도의 기록이기도 하다. 존재의 기록이다. 밀양과 소성리, 생탁 노동자들의 곁을 지켜 찍어낸 투쟁과 연대, 활동의 기록이다. 영화, 그리고 다큐가 끝내 포기하지 않아야 할 영역, 저널리즘과 기록의 책무를 포기하지 않은 결과다. 오지필름이 지나온 자리마다 언론의 부재가 강하게 드러나는 건 민망함이다. 앞서 언급한 반짝다큐페스티발 포럼에서도 각 시민 사회 단체 영상 활동가들은 현장에 없는 한국 기자를, 그 보도 행태를 적나라하게 지적하였다. 나는 홀로 민망하였다.
수만 개의 언론이 난립하고 수만 명의 언론 종사자가 활동한다는 한국이다. 대형 방송국과 신문사만도 수십 곳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 언론이 지난 10년, 세월호부터 밀양과 성주, 각지의 투쟁 현장들을 어떻게 대하였는가. 일부 기성 언론이 '기레기'와 같은 멸칭을 받고, 멀리 떨어져 실상을 반영하지 않은 기사를 앉아서 쓰며, 심지어는 왜곡과 편향을 그치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어 기록하려 했던 다큐 감독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행위를 한 방송국은 면죄부를 얻었다. 나는 또한 홀로 민망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