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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 위산사 법당 안은 이른 아침부터 활기가 넘쳤습니다. 대개 출가식은 조용히, 가까운 스님들과 소수의 봉사자만 모여 치러지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달랐습니다. 은사이신 영화 스님의 허락을 받고, 저와 인연을 맺은 많은 지인과 명상반 학생들이 모두 초대되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법당 안은 잔치와도 같은 분위기로 가득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 영화 스님의 제자로 출가한 이들 가운데, 위산사 도량에서 직접 출가식을 가진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이전에 출가한 제자들은 모두 첫 도량인 여산사에서 출가를 했습니다. 위산사에서의 첫 출가식이었기에, 참석한 이들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몇 한인 신문사 기자까지 찾아와 취재했을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보통은 출가할 때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분위기도 엄숙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열린 저의 출가식은 기쁨과 웃음으로 채워졌습니다. 출가식을 함께한 영화 스님과 제자들은 저에게는 타국에서 마음을 의지할 유일한 가족이자 도반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께 괴로움도 슬픔도 나누며 수행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의 출가식은 눈물 대신 많은 사람들의 환한 미소와 축하의 박수로 가득한, 마치 한 편의 축제 같았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수행 중이던 조계종의 젊은 스님들도 함께 참석했는데, 한국에서 경험한 출가식과 전혀 다르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웃음과 따뜻한 격려가 끊이지 않았던 그날의 분위기는, 미국 땅에서의 출가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뜻밖의 손님들도 있었습니다. 출가 전 저의 취미는 오랫동안 춤, 특히 살사댄스였습니다. 함께 춤추며 알게 된 지인들이 몇 명이나 그날 위산사에 찾아왔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페이스북에 올라온 출가 소식이 너무 믿기지 않아서, 혹시 가짜 뉴스가 아닐까 싶어 직접 확인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삭발하고 스님이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의식을 마치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을 때, 법당 안에는 여러 문화와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어울려 있었습니다. 수십년동안 불교를 수행해온 한국인부터 처음 절에 온 여러 인종과 배경의 청년들까지, 그 다양함 자체가 위산사와 저의 출가를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저의 개인적 결심이 공동체 전체의 기쁨이 됐고, 출가란 결코 혼자만의 사건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의 삶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출가란 단순히 머리를 깎는 행위가 아니라, 저를 둘러싼 세계 전체와 맺는 새로운 관계 선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불자로서, 수행자로서, 스승의 제자로서 한 걸음을 내디뎠던 그 순간은 지금도 마음 깊이 선명합니다.

▲미국에서 출가하던 날출가란 단순히 머리를 깎는 행위가 아니라, 저를 둘러싼 세계 전체와 맺는 새로운 관계 선언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불자로서, 수행자로서, 스승의 제자로서 한 걸음을 내디뎠던 그 순간은 지금도 마음 깊이 선명합니다. ⓒ 현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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