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22일 오전 8시 36분]

▲1862년 7월 2일 모릴법 ⓒ 위키미디어 공용
1862년 7월 미국은 1년 3개월 전에 시작된 남북전쟁의 와중에 있었다. 북부 연방의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이었고, 남부 연맹의 대통령은 제퍼슨 데이비스였다. 동부 전선에서는 로버트 리 장군이 이끄는 남부가 우세했고, 서부 전선에서는 북부가 우세한 상태로 격렬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의 승패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런 와중에 북부 연방 상·하원은 1857년에 추진되었으나 전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었던 법안을 통과시켰고 같은 해 7월 2일 링컨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실행되었다. 바로 모릴 랜드-그랜트 법, 일명 '모릴법'이다. 법안을 제안한 버몬트주 하원의원 저스틴 모릴의 이름을 딴 법으로 유명하다.
법안 내용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연방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자하여 모든 주에 하나의 대형 주립대학을 설립할 수 있는 토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고등 교육은 지역적으로나 계층적으로 매우 제한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특혜의 하나였다. 독립 이전인 1636년 설립된 하버드대, 1701년 설립된 예일대, 1746년 설립된 프린스턴대 등 소수의 동부 사립대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은 극소수의 부유층 혹은 특권층 자제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모릴법은 적어도 교육 분야에서는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법안의 목적은 첫째, 당시 국가 발전에 필요한 농업과 공업 분야의 우수한 인력을 국가 지원으로 양성하는 것이었다. 유럽이 이룬 산업혁명을 독자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지역과 계층으로부터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인식이 바탕이었다. 연방 정부 주도의 국립대 설립이 불가능한 미국이 헌법 질서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
둘째, 새롭게 미국 영토에 편입된 여러 지역의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고, 각 지역 특성에 적합한 대학을 육성하는 것이 미국의 균형 발전에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즉, 지역별로 거점 대학을 육성함으로써 산업화 진전에 따라 초래될 수 있는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셋째,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과감한 재정 투자로 고등 교육 기회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이를 통해 고등 교육의 공영화 수준을 높이고자 하였다. 고등 교육을 엘리트 교육에서 보편 교육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국가 의지가 반영된 법이었다.
모릴법에도 불구하고 흑인에게는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주가 많았고, 설립된 대학의 운영 자금이 부족한 주도 적지 않았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에 속했거나 남부와 북부의 경계에 속한 많은 주에서 흑인은 대학 입학 자체가 막혀 있었고 입학한다 해도 경제적 문제로 교육을 마치기 어려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90년에 모릴법이 개정되었다. 흑인이 입학할 수 있는 많은 주립대를 설립하고 흑인의 입학을 불허하는 대학은 재정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후에도 지역 균형 발전이나 특정 분야의 연구 활성화 등을 위해 모릴법은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1:1 '매칭 펀딩'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경제력이 약하거나 교육 재정이 부실한 주의 경우 이 법의 혜택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릴법이 미국의 주립대 중심 고등 교육 체제 수립, 이를 통한 지역 균형 발전, 나아가 고등 교육의 공영성 확대에 기여하였다는 것을 부인하는 역사학자는 거의 없다. 미국 역사에 남긴 링컨의 업적 중에 노예해방보다 모릴법 실행이 더 크다는 역사학자도 적지 않다. 2012년 미국 의회에서 연 모릴법 150주년 행사가 이듬해에 열린 노예해방 150주년 행사보다 화려했던 것이 이를 말해준다.
모릴법이 제시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방향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42회 국무회의에서 최교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6일 이재명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교육 분야 6대 국정 과제를 확정하였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한 지역 교육 혁신과 공교육 강화 정책이다. 이 발표가 있자마자 언론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본격화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새로 임명된 국가교육위원회 차정인 위원장도 취임사를 통해 '서울대 10개 만들기' 추진 의지와 이를 통한 국가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교육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견인하는 동시에, 주요한 국가적 교육 과제에 대한 중장기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2022년 9월에 출범한 것이 국가교육위원회다. 그러나 이 땅의 많은 교육자가 공감하듯 출범 이후 3년간 국가교육위는 이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새로운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
차정인 체제 국가교육위의 성패를 가르는 시금석은 단언컨대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될 것이다. 뜬금없이 163년 전에 미국에서 시행한 모릴법을 소개한 것은 그 법이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교육사학자로서의 판단 때문이다.
첫째, 모릴법은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논의하고 입법 절차를 거쳐 실행했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링컨 행정부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전쟁 속에서도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 링컨이었다. 국가의 불균형 발전과 이것이 초래한 지역 간 갈등은 남북전쟁의 배경이었다. 지역 간 격차 해소가 갖는 중요성을 인식한 링컨 행정부는 낙후된 지역의 고등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이런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교육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우리의 최근 30년 역사는 교육의 가치나 힘에 대한 국가 차원 믿음의 소멸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등장한 여섯 번의 정부는 교육 혁신에 대한 확신 부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교육을 통한 사회적 과제의 해결 가능성에 대한 믿음 없이 추진하는 어떤 교육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반대로 모릴법은 교육을 통해 미국이 지닌 최고의 난제를 해결한 훌륭한 사례다. 미국의 지금을 만든 것은 북동부 지역에 있는 몇몇 사립대가 아니라 50개 주에 뿌리내린 주립대 체제라는 것도 상식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지역 소멸 문제나 대학 서열화가 초래한 입시 중심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지방 고등 교육의 획기적 발전, 이를 통한 대학 서열 구조의 완화가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현 정부의 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이런 확신이 지역 거점 대학에 대한 과감한 재정 투자로 나타나야 할 것이고, 이런 투자 정책 청사진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교육위의 1차 과제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대학 서열 구조의 획기적 완화나 특정 분야로의 인재 쏠림 현상 극복 없이 공교육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지역 거점 대학에 대한 과감한 투자, 이를 통한 대학 서열 구조의 획기적 완화는 모든 교육 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그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셋째, 인공지능, 미래 에너지, 바이오, 우주항공, 반도체, 문화콘텐츠 등 국가 발전에 필요한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의 중심 역할을 지역 거점 대학에 과감하게 맡겨야 한다. 과감한 역차별 정책으로 지역 거점 대학의 발전을 국가 재정으로 견인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정치적 중립성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국가교육위가 설계해야 할 교육 청사진의 핵심이 되어야 하며 다른 모든 교육 개혁의 시금석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 정책을 대학 서열화의 일차 책임이 있는 서울대학교나 교육부가 주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넷째, 사립대를 지역 거점대학 육성 사업에 동참시켜야 한다. 미국의 모릴법 지원 아래 성장한 대학은 지역 거점 주립대가 다수지만 사립대학도 포함되었다. 코넬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대표적이다. 지역 거점대학 육성 사업이 현재의 지역 소재 국립대에 주는 특혜로 인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육성 대상 '서울대 10개'에 적어도 한두 개의 사립대가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 혁신적인 교육 청사진을 제시하는 사립대 단독으로 혹은 지역 국공립대와의 연합 형태로 사립대도 지역 거점대학에 선정되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고등 교육의 공영화를 앞당기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연방 정부가 1862년에 선정한 주립대들의 발전을 위해 16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 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국가가 어떤 태도로 교육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비록 미국 헌법상에서 교육은 각 주의 권한 하에 있지만, 연방 정부는 간섭 없이 파격적인 재정 지원을 지속함으로써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국가 균형 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끽다점에서 카페까지>의 저자)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Association of Public and Land-Grant Universities(2013). Policy Brief, Land-Grant but Unequal. By John Michael Lee, J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