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회찬 의원 덕분에 6411번 버스와 새벽 청소노동자가 주목받은 지 13년. 자율주행버스가 도로 위를 달릴 만큼 세상이 변했지만, 그 안에 타고 있는 이들의 세상도 달라졌을까. 그들의 삶을 따라가 봤다.

▲지난 7월 23일 A160 버스가 공덕역 정류장을 지나고 있다. 자율주행버스지만 A160 버스에는 언제나 운전기사가 탑승해 있다. 공사 지역, 어린이 보호구역 등 일부 구간에서는 사람이 직접 운전한다. ⓒ 김경태 기자
"잔여석이 없어요. 죄송합니다."
새벽 3시 30분, 승객이 타려 하자 버스 맨 앞 좌석에 앉은 흰옷 차림 안내원이 양해를 구했다. 좌석은 이미 가득 찼지만, 입석 공간은 텅 비어 있다. 안내원은 정류장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고, 가끔 내리는 승객 덕분에 새로운 승객이 겨우 자리를 얻었다. 버스 안 승객들에게는 오늘 운 좋게 자리를 차지했다는 안도와, 어깨를 짓누르는 피로가 동시에 밀려오는 듯했다. 창밖 가로등 사이로 스쳐 가는 얼굴들, 이미 몸을 깨운 손과 발. 하루를 시작하려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는 피로와 무언의 결의가 새겨져 있었다.
공간이 남아도 설 수 없고, 안내원까지 배치된 이 버스의 이름은 'A160'이다. 기존 160번 노선에 자율주행을 뜻하는 'A'(Autonomous·자율)를 붙여 만든 신설 노선으로,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26일부터 심야 노동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운영을 시작했다. 새벽 3시 30분 도봉산역 광역환승센터를 출발해 쌍문역과 종로를 거쳐 영등포역까지, 평일에 하루 단 한 번만 달린다. 좌석은 장애인석을 포함해 22석. 자율주행 운행 안전을 이유로 모든 좌석이 차면 입석은 금지된다.
취재진은 지난 7월 22~23일, 이틀간 A160에 올라탔다. 도봉구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 구간을 지나자 연령대가 높은 승객들이 하나둘 탑승했다. 대부분 새벽 출근길에 오른 여성 청소 노동자들이다. 취재진은 도봉역에서 승차해, 이들이 내리는 종로까지 약 한 시간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술은 달라졌지만, 삶은 그대로
새벽 4시 반, 빌딩 앞 거리는 아직 고요하다. 가로등 불빛이 바닥을 스치고, 드문드문 발자국 소리만 공간을 채운다. 청소 노동자들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이 시간에 이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과거처럼 첫차를 타고 환승을 반복하던 불편함은 줄었지만, 자율주행 버스가 노동의 무게를 덜어주지는 못한다.
75세 김옥자(가명)씨는 종로의 한 빌딩에서 15년째 청소 노동자로 일한다. 예전에는 출근을 위해 첫차에 올라 환승을 해야 했지만, A160 덕분에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어 한결 편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출근길이 달라졌을 뿐, 일터가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김씨의 근로계약서상 출근 시간은 오전 6시. 하지만 그는 매일 4시 반이면 현장에 도착한다. "6시에 가면 일을 못 하기 때문"이다. 3년차 청소 노동자 최영자(가명)씨 역시 정식 출근 시간은 오전 6시지만, 오전 5시에는 이미 빌딩 로비에 들어선다. 텅 빈 공간, 천천히 오르는 엘리베이터 불빛. 하루를 시작하기 전, 이 고요 속에서 노동자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진다.
이들의 오전 근무는 8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근무가 끝났다고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휴게시간'을 이유로 그들을 건물 안에 붙잡아 둔다. "휴게시간이라고 하지만 사실 손을 놓을 수 없어요." 최씨의 말은 피곤함과 체념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휴게시간에는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다. 경계가 희미해진 근무와 휴게의 시간 속에서, 노동자의 하루는 값싸게 묶인다. 오후 근무까지 이어지는 긴 무급 휴게시간 동안, 하루는 이미 절반 이상 흘러간다. 최씨는 회사 안에서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묵묵히 제공하면서, 서서히 지쳐간다.

▲2022년 여의도 비정규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노동자들은 계약서에 명시된 시간보다 평균 1시간 일찍 출근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사업장에 머무는 시간도 계약서에 적힌 시간보다 훨씬 길다. ⓒ 정헤림 기자
2022년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발표한 여의도업무지구 비정규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노동자의 근로계약서상 출퇴근 시간은 보통 오전 5시에서 6시 출근, 오후 3시에서 4시 퇴근으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청소노동자의 실제 출근은 계약서보다 30분에서 1시간 빠르다. 노동자들이 사업장에 머무는 체류시간은 하루 평균 10시간에서 11시간에 이른다. 계약서상 일일 근로시간은 6~8시간이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에 2시간에서 3시간 30분이나 되는 긴 휴게시간이 포함된다.
문제는 이 장시간 체류가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휴게시간은 무급 처리되고, 조기 출근 역시 보상받지 못한다. 올해 최저시급(1만30원)을 기준으로 체류시간에 따른 실제 환산 시급을 계산하면 6700원~7800원,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휴게시간이라는 명목 아래 노동자의 시간은 '가치 없는 체류'로 전환되고, 사업주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장시간 노동을 확보한다.
저임금의 그림자
"오히려 오래 버티는 게 목표가 돼요."
이씨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말마다 현실의 무게가 배어 있다. "나이가 많으면 업체 이동이나 재계약에서 먼저 밀려나요. 결국 더 낮은 임금의, 더 열악한 사업장으로 가게 되죠. 숙련이 쌓여도 인정받는 건 없고, 일만 늘어나요." 그녀의 말에서 단순한 임금 문제를 넘어, 청소 노동자들이 매일 새벽 겪는 노동 구조의 불평등을 읽을 수 있다. 경력과 헌신은 보상받지 못하고,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고용적 취약성이 더해지는 현실. 그래도 새벽길 위 그녀와 동료들의 발걸음은 묵묵히 이어진다.

▲56~60세 청소 노동자가 받는 평균 급여액은 200만 원 수준이지만, 76~80세가 되면 150만 원 수준으로 내려간다. 경력이 쌓일수록 임금이 깎이는 구조다. ⓒ 정혜림 기자
또한 위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하 청소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약 211만 원이지만, 71세가 넘으면 161만 원으로 떨어지고, 76세 이상에서는 156만 원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본급 역시 188만 원에서 145만 원으로 줄어든다. 경력과 숙련은 무시된 채, 나이가 들수록 임금은 깎이고 일자리는 더 열악해진다. 경력이 쌓이고 손이 더 익숙해질수록 대우가 좋아져야 할 것 같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더 낮은 임금, 더 열악한 일자리로 밀려나는 구조다. 이는 단순한 개인 경험이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에서 확인되는 현실이다.
청소 노동자의 임금 체계는 대부분 법정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 수십 년 숙련과 경험은 고려되지 않는다. 기업이 바라보는 건 오직 비용 절감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구직 문은 더 좁아지고, 재계약은 사측의 무기가 된다. '자발적'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무급 초과노동이 존재하는 건 그 때문이다. 연령이나 근속이 오히려 약점이 된다. 조금이라도 고령·저능력으로 보이면 재계약에서 먼저 탈락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더 낮은 임금을 주는 다른 현장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그 길은 더 힘들고, 때로는 더 가혹하다.
이들의 마지막 노동 생애에서 시간은 가장 값진 자원이자 동시에 가장 값싸게 거래되는 품목이다. 그 시간이야말로 도시를 돌아가게 하는 숨은 엔진이 돼, 새벽빛이 스며든 거리 위를 묵묵히 달린다.
기술과 혁신, 그 사이의 노동

▲출근하는 A160 버스 승객들과 비상벨. 비상벨을 누르면 원하는 정류장에서 내릴 수 있듯, 앞으로는 청소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돼야 한다. ⓒ 김경태 기자
청소 노동자 이정숙(가명)씨는 '완장질'을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용역 담당 관리자가 노동자들을 모아 특정인을 지적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 직장에서는) 정년까지 대우를 받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나이나 경력과 관계없이, 최소한의 존중을 바라는 마음이 묻어난다.
A160은 기술 혁신의 상징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바퀴, 예리한 센서, 계산된 시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설계되고 조율되어 있지만, 그 속도와 정밀함에도 인간의 삶과 노동의 무게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새벽빛이 스며든 도시, 청소 노동자들은 여전히 이른 하루를 시작한다. 사회는 변했고 기술은 발전했지만, 그들의 하루는 과거와 달라진 바 없다.
청소노동자 김씨는 "나이 먹은 사람에게 좋은 일자리는 없다"며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생계를 위해 하루를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72세임에도 오전에 회사 청소, 오후에 병원 청소 일을 나간다. 낮은 임금에 몸은 지쳐가지만, 사랑하는 손자들에게 용돈을 주고 싶은 마음을 멈출 수 없다. A160이 속도를 높여 달리는 동안, 노동자의 하루는 여전히 느리고 무겁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