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는 2018년부터 현재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계승하는 활동을 하는 일본의 시민단체 '희망씨앗기금' 사무국의 활동을 돕고 있으며 이 책의 번역을 맡았습니다.
"니가 조선인이야? 나는 조선인은 싫어!"
199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故 송신도 할머니를 처음 찾아간 재일한국인 양징자('희망씨앗기금' 대표)씨가 들은 첫 마디였다. 가시가 돋은 단단한 갑옷으로 자신을 감싼 듯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던 송신도 할머니.
양징자 대표와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모임)' 회원들은 그런 할머니의 곁을 1993년부터 돌아가시는 날까지 지켰다.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가해국에서 살아야만 했던 송신도 할머니는 이들과 만나면서 치유와 회복 그리고 신뢰를 되찾아 갈 수 있었다. 송신도 할머니의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온 지원모임 회원들에게도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닌 시간이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해. 지원모임 여자들이 지켜 주니까 행복한 거지. 지금 반복해서 말을 해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은 알아주니까. 더는 바랄 게 없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한 10년 간의 법정 투쟁이 패소로 끝난 후, 송신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완고하고 차가운 일본 정부. 지는 싸움을 했지만, 결코 지지 않았다. 더 소중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재일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 할머니와 지원모임의 10년 간의 법정 투쟁의 기록이자, 상처받은 인간이 치유받고 신뢰를 회복해 가는 여정의 기록이다.

▲재일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의 투쟁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표지. ⓒ 보더북
결코 외로운 싸움은 아니었다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1922년 충청남도에서 태어났다. 1938년, 16살 때 '전쟁터에 가서 나라를 위해 일하면, 결혼하지 않아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될 것을 강요받았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1945년까지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 각지를 전전하며 7년이라는 긴 시간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만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결혼해서 같이 가자'는 일본군의 말을 믿고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군인에게 버림받았다. 그렇게 이국땅에 홀로 남겨진 송신도 할머니의 삶이 기다린 것은 가난과 차별이었다.
"남자랑 너무 많이 해서 네 거기는 굳은살이 박였다며?" "네 구멍은 양동이처럼 크다면서?"라는 듣기조차 힘든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심한 비방을 듣게 되는 것은 '위안부' 차별에 재일한국인 차별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미야기현의 어촌 마을에 정착하게된 송신도 할머니는 억척스럽게 삶을 꾸려 나갔다. 하지만 고향이 아닌 가해국 일본이라는 터전은 '위안부' 피해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일본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의 지역 사회는 할머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난과 차별 속에서 할머니는 더욱 거칠고 난폭해져만 갔다.
할머니의 폭력성을 나타내는 이 말은 오히려 할머니가 얼마나 심각한 폭력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조선인에 배운 것 없고, 가난하고 '위안부'였던 여자. 그런 여자가 반복해서 내뱉는 말이 멸시와 차별로 무장한 인간들에게 가닿을 리 없었다. '무시'라고 하는 폭력. 이 세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찌르는 진실이 담긴 말이 무시당했을 때 송신도 할머니는 '느닷없는 폭력'으로 그 분노를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일본 정부를 향해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는 송신도 할머니(맨 앞 줄 가운데). ⓒ 송신도 할머니의 마음을 잇는 모임
1991년, 김학순 할머니는 자신은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공개 증언을 했고, 그 후 일본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는 일본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송신도 할머니에게도 전해졌다. 1993년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기 위해 법정에 나서기로 결심한 송신도 할머니.
어려운 싸움을 시작했지만, 결코 외로운 싸움은 아니었다. 재일교포들과 일본의 양심있는 여성들이 모여 '지원모임'을 결성해 할머니의 곁을 지켰기 때문이다. 2003년 최고재판소(대법원)의 기각 판결로 10년에 걸친 소송은 끝이났다. 패소 결정인 난 그날 열린 재판 보고 집회에서 송신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재판에 졌어도 마음은 지지 않았으니까. 미야기현에 돌아가도 큰 배 탄 것마냥 안심하고 여러분의 얼굴 보면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살아갈 테니, 여러분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패소_ 보고 집회최고재판소의 패소 확정이 결정된 날 열린 보고 집회에서 발언하는 송신도 할머니. ⓒ 송신도 할머니의 마음을 잇는 모임
'사람 마음은 한 치 앞도 모른다'며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주지 않던 송신도 할머니는 10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사람들을 향해 신뢰의 말을 건낼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패소에 대한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보다, 낙담한 사람들을 생각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 지원모임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큰 성과였다.
'실용'에 가리워진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25년 9월 출간)는 2007년 일본에서 출간된 책을 번역했다. 원서 출간 18년 만에 한국어판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광복 80년을 맞이하여, 잊혀져 가는 역사를 되새겨 보고 주목받지 못한 역사의 피해자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다.
지난 8월 23일,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총리의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에서는 일제강점기 위안부·강제동원 피해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실용외교'가 우선이라는 명분이었다. 많은 역사 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어, 역사정의와 피해자들의 호소를 외면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실용'에 가리워진 아픈 '역사'는 더 많은 기록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 송신도 할머니의 인고의 삶과 평화에 대한 간절함,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걸어왔던 지원모임 멤버들의 마음을 되새기며 평화로운 미래를 만드는 힘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