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읍면자치'는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주민이 직접 의제를 정하고, 예산을 논의하며, 생활 문제를 풀어가는 일로, 결코 새로운 상상이 아닙니다. 일본의 정촌, 영국의 패리시 의회 사례처럼 생활 단위 자치는 제도와 관습 속에 뿌리내리며 오랜 시간 실천돼 왔습니다.

여름의 끝자락, 충남 홍성군 장곡면 오누이다목적회관 강당에서는 '읍면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공동행동(읍면자치 공동행동)'과 '마을학회 일소공도'가 공동 주최한 읍면자치 3차 집중학습회가 열렸습니다. 60여 명이 넘는 참석자가 모인 이 자리의 강연은 스스로를 '로컬주의자(지역주의자, Localist)'라 부르는 동양대학교 황종규 교수(주민자치법제화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가 맡았습니다.

황 교수는 이번 강의에서 '작은 자치가 어떻게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광화문에서의 민주주의가 마을 문턱을 넘지 못하는 현실, 주민자치회가 행정 보조기구로 전락한 현실을 지적하며, 그는 한국 지방자치의 역사와 시행착오를 톺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생활 단위에서 민주주의를 복원할 방법을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했습니다.

(* 기사 전문은 <월간 옥이네> 9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압축의 신화와 느림의 힘

 동양대학교 황종규 교수(주민자치법제화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
동양대학교 황종규 교수(주민자치법제화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 ⓒ 월간 옥이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면(面)이 시(市)로 승격되고, 그 면을 품고 있던 군(郡)이 읍(邑)으로 격하된 지역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AD
황종규 교수의 돌발 질문에 학습회 참가자들의 이목이 단숨에 집중됐다. 면이 시가 되고, 군이 읍으로 위축되는 기이한 역전 현상. 애초에 읍·면 단위가 시·군과 맞바뀌는 상황(혹은 그와 대등하다는 생각)을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기에 질문의 파급력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답은 경상북도 구미와 선산. 구미면이 구미시로 승격하면서, 구미를 품고 있던 선산군은 종국에 선산'읍'으로 "짜부라들었"다. 압축 성장의 신화 속에 구미는 산업화 시대 국가 주도 제조업 도시로 새롭게 탄생했다. 그러나 오늘날 구미의 사정은 달라졌다. 공장 해외 이전 등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이제는 '제조업 위기'를 상징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반면 충남 홍성의 홍동은 "전혀 다른 시간"을 걸어왔다. 눈에 띄는 산업단지나 대규모 개발 사업 대신, 지역 공동체 속에서 학습과 협동의 문화가 50년 이상 축적돼왔다. "'홍동 출신'이라는 말이 마을운동 현장에서 마치 성골(聖骨)처럼 통용되는 이유"라는 황 교수의 말처럼 '실천의 역사'가 작은 지역에 깊숙이 스며온 것이다.

외부인의 눈에는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이처럼 농촌 공동체가 쌓아온 시간은 일상에 민주주의를 스며들게 하고, 협동을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만든 토대였다. 이는 비단 홍동만의 성취는 아닐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주목하는 많은 농촌 지역 운동의 면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교훈이다.

황 교수는 구미와 홍동, 두 지역을 나란히 놓고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구미의 신화는 '속도'였고, 홍동의 자산은 '지속성'이었습니다. 압축 성장과 느린 축적, 어느 쪽이 진짜 자치의 힘일까요?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힘은 속도일까요, 지속성일까요?"

그 질문은 단순한 지역 비교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와 지방자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었다.

부수는 운동에서 만드는 운동으로

"서울에서는 처음 만날 때 '어디 사세요?'라고 묻지 않더라고요. 신분이 드러나는 질문이니까요. 이와 비슷하게 한국 사회에서 '지방에 산다'는 말은 이미 욕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디 사는지가 곧 계급이자 신분인 나라에서 자존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황종규 교수가 지방자치와 맞닥뜨린 건 1990년대 중반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1991년 지방의회 선거와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가 부활하면서 한국 사회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듯 보였다.

"저는 1996년 경북 영주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막 부활한 지방자치제도 속에서, 시민운동도 해보고 뭔가 지역을 바꿔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지방자치가 곧 '지역개발'로 이해됐던 때, 젊은 행정학자가 지역에 왔다는 이유로 영주시 공무원들은 황 교수를 반겼다. 중앙정부에 제출할 문건을 잘 써주고, 지역 발전 계획을 설계해줄 전문가로 기대했던 것이다. 주민들도 "우리도 이제 잘 살아보자"는 희망을 품고 지방자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는 허무로 바뀌었다.

"조 단위 사업도 하고, 수많은 문건도 썼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제가 '하수인'이더군요. 열심히 했지만, 정작 지역에는 남는 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쇠퇴가 더 빨라졌습니다."

이 깨달음은 황 교수의 사상적 전환점이 됐다. 그는 더 이상 '부수는 운동'에 머무를 수 없었다.

"1987년 이후 저희 세대는 '이건 안 된다'고 외치며 부수는 운동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만드는 것이야말로 더 어려운 운동이자, 진짜 부수는 운동이라는 걸요."

이 변화에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마을학회 일소공도의 구자인 소장이 전한 "만드는 운동"의 화두, 그리고 2016년 영국 체류 경험이었다. 민주주의는 파괴가 아니라 창조, 곧 '행복을 만드는 힘'이라는 통찰이 그에게 찾아왔다.

"많은 혁명사를 읽어보면, 혁명 다음 날은 늘 쓸쓸합니다(웃음). 하지만 작은 자치가 일상을 바꾸고, 그 일상 속에서 행복을 쌓아갈 때 민주주의는 지속성을 얻습니다."

"민주주의 주체는 '시민' 아닌 '주민'"

 '읍면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공동행동'과 '마을학회 일소공도'가 공동 주최한 읍면자치 3차 집중학습회 현장
'읍면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공동행동'과 '마을학회 일소공도'가 공동 주최한 읍면자치 3차 집중학습회 현장 ⓒ 월간 옥이네(농본 제공)

황 교수는 민주주의의 주체를 '시민'이 아니라 '주민'이라고 강조했다.

"시민성이 관념과 가치라면, 주민성은 당사자성입니다. 내 앞에 있는 문제,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겪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힘. 그것이 주민성입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시민'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주민'이어야 합니다. 진짜 주체는 '주민'입니다."

광장의 민주주의는 '강렬'하다. 수천·수만 명이 모여 거리를 밝히고 함께 외치는 구호, 끝없이 이어지는 행진은 주권자의 힘을 직접 확인하는 벅찬 경험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광화문에 있을 때는 우리가 왕이지요. 하지만 마을로 돌아오면 민주주의는 사라집니다."

민주주의가 광장에서의 집단적 열망에만 머무르는 사이 생활 속 작은 공간 – 가정, 직장, 마을로 스며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정치를 여전히 '저 위의 사람들'에게 맡겨두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촉발하지 못한다.

여성 활동가들이 오래 전부터 말해온 것처럼 "광화문의 민주주의는 우리 집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일상과 생활 단위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으면, 주민이 느끼는 효능감은 광장에서의 순간적인 체험에 그칠 수밖에 없다. 황 교수는 이 지점에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이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황 교수는 미국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2017~2023년 사이 '의회·법률보다 강력한 지도자를 지지'하는 여론이 전 세계적으로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 역시 그 비율이 40%에 달했다.

"세계는 대의민주주의 불신과 함께 전체주의적 리더십 선호가 높아지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입니다. 작은 단위 자치가 부재하면 우리가 굳건하다고 믿어온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습니다."

결국 대의민주주의가 남긴 구멍을 메우는 힘은 지방자치, 즉 읍면자치에 있다. 국회와 정당 정치가 흔들릴 때, 생활 가까운 곳에서의 작은 자치가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파제가 된다. 황 교수는 단언한다.

"광장의 민주주의가 마을로 내려오지 못하는 현실, 그것이 극우와 전체주의적 열망이 자라는 토양입니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는 작은 자치야말로 지금의 위기를 넘어설 진짜 민주주의의 길입니다."

지역개발의 신기루와 '자발적 돌아서기'

황종규 교수는 국가 주도 지역개발 사업을 '신기루'라고 표현했다. 농촌에 수십억 원이 투입돼도 정작 지역에 남는 것은 몇 동의 건물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충남 한 면에서 40억 원짜리 사업을 하면, 눈에 보이는 건물은 남습니다. 그러나 건설사·설계사·용역사 비용 대부분은 서울로 빠져나갑니다. 10조 원짜리 국가균형발전사업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혜택은 지역이 아니라 대도시 전문가들이 가져갑니다."

그래서 황 교수가 제안하는 전략은 단순하다. '서울 따라잡기' 경쟁에서 벗어나 지역화와 지역순환경제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을 닮으려다 끝없는 경쟁에 빠지는 건 행복과 무관한 일입니다. 오히려 그 줄에서 뒤돌아서면 우리가 1등이 됩니다(웃음). 삶의 방식을 지역 안에서 순환 시키는 게 답입니다."

그가 말한 '돌아서기'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지역에서 생산한 것이 다시 지역에서 소비되고, 필요한 서비스와 돌봄도 지역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제안이다.

옥천의 로컬푸드 직매장은 그 사례로 꼽힌다. 지역 소농이 생산한 농산물을 모아 직매장에서 판매하고, 그 매출이 다시 지역 농가 소득으로 이어지는 일. 대기업 유통 자본이 가격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존 경로와는 완전히 다른 길이다. 더불어 이 구조는 단순한 경제 모델이 아닌 주민의 자존감과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실험이다. 경제학적으로는 '커뮤니티 웰빙(Community Well-Being)'이라 부르며, 공동체 만족도가 곧 민주주의의 에너지가 된다는 게 황 교수의 설명이다.

"자치권은 주민에게 있다"

 동양대학교 황종규 교수(주민자치법제화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
동양대학교 황종규 교수(주민자치법제화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 ⓒ 월간 옥이네(농본 제공)



주민자치가 '행복을 만드는 민주주의'라면 이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헌법과 제도다. 그러나 지금 우리 헌법은 주민자치권을 직접 명시하지 않는다. 현행 헌법(제117·118조)은 지방자치 주체를 '주민'이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한다'는 식의 규정 외에, 정작 민주주의 핵심 주체인 주민은 조항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황 교수는 이것이 한국 지방자치의 뿌리 깊은 한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들어 설명을 이어갔다. 일본 운난시가 2009년 제정한 '마을만들기 기본조례'는 행정과 의회, 시민이 동등한 주체로서 학습하고 협력할 것을 명문화했다. 스위스의 작은 지방정부들은 여전히 주민총회를 통해 주요 사안을 결정하며, 미국 매사추세츠주 힝험(Hingham)에서는 1635년부터 오늘까지도 주민총회가 의회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황 교수의 비판은 자연스럽게 한국 지방자치 제도의 구조적 문제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지방자치 구조는 '강(强)-강(强)시장형'이라고 불립니다. 단체장이 인사·예산·집행 등 핵심 권한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고, 의회는 의결만 하는 기구로 제한돼 있죠. 구조적으로 단체장 권력은 강화되고 의회는 거수기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는, 매우 기형적인 구도가 고착된 겁니다."

실제로 헌법 제118조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고 규정해 의회가 자치의 본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법은 단체장을 지방정부의 '대표'로 규정하며 권한을 집중시켰다. 조례안 제출권, 예산 편성권, 집행권, 공무원 인사권, 규칙 제정권까지 모두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의회는 심의·의결만 할 수 있을 뿐, 집행이나 인사와 같은 실질적 권한은 전혀 없다.

황 교수는 지방재정을 한국 자치의 가장 큰 약점으로도 꼽았다. 그는 "지방정부가 자치를 못하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략과 권한이 없어서"라고 지적했다. 현재 지방세는 전체 세입의 23%에 불과하지만 지출의 60%가 지방정부 몫이다. 이 간극을 메우는 방식이 중앙정부 보조금이고, 이는 곧 지방의 자율성을 갉아먹는 통제 수단으로 작동한다. 결국 지역은 스스로 필요한 전략을 세우기보다, 보조금 집행 논리에 끌려다니는 구조에 묶이게 된다.

"주민에게 권한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자치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그가 말하는 작은 자치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관계를 맺고, 장소를 만들며, 그 안에서 삶을 함께 꾸려가는 실천이 곧 자치라는 것이다.

"자기의 존재적 실체가 지역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은 지속가능한 운동을 할 수 없습니다. 자치운동이나 자치활동의 연대는 자기 뿌리가 있는 사람들의 소통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결국, 한국 지방자치의 지난 역사가 보여준 시행착오와 왜곡을 넘어 주민 주권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생활 단위 자치로의 회귀. 작은 자치는 곧 삶을 살아내는 힘이자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읍면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공동행동'과 '마을학회 일소공도'가 공동 주최한 읍면자치 3차 집중학습회
'읍면자치권 확보를 위한 풀뿌리공동행동'과 '마을학회 일소공도'가 공동 주최한 읍면자치 3차 집중학습회 ⓒ 월간 옥이네

글·사진 박누리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 (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
▶월간 옥이네는 자치와 자급, 생태를 기본 가치로 삼아 우리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사람을 담습니다. 정기구독으로 월간 옥이네를 응원해주세요! (https://goo.gl/WXgTFK)


#월간옥이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는 자치와 자급, 생태를 기본 가치로 삼아 지역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사람을 담습니다. 구독문의: 043.731.8114 / 구독링크: https://goo.gl/WXgTFK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