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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라는 삶의 방식. 은퇴한 부부가 걷고 읽으며 건강과 배움을 함께 챙기는 일상을 소개한다.

하늘과 구름 집에서 바라 본 하늘
하늘과 구름집에서 바라 본 하늘 ⓒ 유상신

며칠째 이어진 비 때문일까. 마음까지 눅눅해졌다. 이럴 땐 어디든 나가 바람을 쐬며 마음을 말릴 필요가 있다. 지난 15일, 창밖으로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구름 구경하기 좋을 것 같은데, 거창 별바람 언덕을 걸어볼까요? 오후에는 카페에서 책 읽고."

별바람 언덕은 이달 초에 한 번 다녀왔던 곳이다.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는 무장애 나눔 데크길과 가을에 피는 보랏빛 아스타꽃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불쑥 찾아갔다가, 흐린 날씨와 아직 피지 않은 꽃으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아스타꽃이 필 무렵 다시 오자"던 말을 남편이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거창 별바람 언덕은 2022년 포브스 코리아가 꼽은 '전국 명산 핫플레이스 TOP 9'에 포함된 곳이다. 오는 9월 19일부터 10월 12일까지는 '보랏빛 노을 속으로'라는 주제로 축제가 열린다. 다양한 행사가 풍성한 축제 기간도 좋지만, 우리처럼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평일의 한적한 나들이가 더욱 매력적이다. 거창읍을 벗어나 감악산 자락으로 접어들자 곳곳에 행사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었고,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보랏빛 아스타꽃밭

감악산 꽃별여행 감악산 오르는 길의 행사 프랑카드
감악산 꽃별여행감악산 오르는 길의 행사 프랑카드 ⓒ 유상신

언덕에 가까워지자, 양옆으로 보랏빛 아스타꽃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혹시 이번에도 안 피었으면 어쩌나' 했던 걱정이 한순간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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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바람 언덕은 주차장을 중심으로 위쪽에는 무장애 나눔 데크길이, 아래쪽에는 전망대와 아스타꽃길, 구절초 꽃길이 있다. 무장애 나눔길은 노약자, 휠체어 이용자, 유아차 동반자 등 교통 약자들도 편안히 숲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계단 없이 조성된 길이다.

이곳은 해발 900m에 있어 '감악고도(紺岳高道)'라고도 불린다. 약 3.5km의 짧은 둘레길이지만, 감악산을 중앙에 두고 지리산, 가야산, 황매산,덕유산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4곳과 포토존 3곳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듯 걸으며 멀리 펼쳐진 능선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점심 시간을 고려해 1시간 반 정도 머물기로 하고, 각자 원하는 길을 선택해 걷기로 했다. 구름과 산세를 보고 싶었던 남편은 무장애 데크길로, 꽃을 보고 싶었던 나는 아스타·구절초 꽃길로 향했다. 은퇴 후 터득한 '따로 또 같이'의 생활 지혜가 이번에도 발휘된 순간이다.

아스타 꽃 밭 거창 별바람 언덕의 아스타꽃밭(보라빛깔,하얀빛깔의 어울림)
아스타 꽃 밭거창 별바람 언덕의 아스타꽃밭(보라빛깔,하얀빛깔의 어울림) ⓒ 유상신

아스타꽃 별바람 언덕의 보랏빛 꽃밭
아스타꽃별바람 언덕의 보랏빛 꽃밭 ⓒ 유상신

아스타꽃 아스타꽃밭과 정자
아스타꽃아스타꽃밭과 정자 ⓒ 유상신

아스타꽃이 활짝 핀 언덕은 장관이었다. 풍력 발전기와 어우러진 보랏빛 꽃밭을 걷다 보니 잠자고 있던 낭만 감성이 꿈틀거린다. 축제 주제가 '보랏빛 노을 속으로'라는 걸 떠올리며, 노을 질 무렵 이 언덕에 돗자리를 펴고 노을과 별, 달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상상해 본다.

이번엔 슬슬 벌개미취와 구절초 언덕길로 걸음을 옮겼다. 벌개미취는 시들어가고, 구절초는 막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만개 전이라 사람 발길이 드물어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지금 상태라면 축제가 시작될 즈음 만개할 듯하다.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 바위가 어우러진 구절초 꽃밭 위로 나비들이 분주히 날아다녔다.

꽃밭 들어가면 한참, 나를 배려한 남편의 전화

구절초 꽃밭 9월 15일 모습, 이제 막 피기 시작한다
구절초 꽃밭9월 15일 모습, 이제 막 피기 시작한다 ⓒ 유상신

네발 나비와 큰 꿩의 비름꽃 네발 나비가 큰 꿩의 비름 꽃 꿀을 빨고 있다
네발 나비와 큰 꿩의 비름꽃네발 나비가 큰 꿩의 비름 꽃 꿀을 빨고 있다 ⓒ 유상신

주황빛 바탕에 검은 점이 박힌 네발나비가 구절초와 큰꿩의비름 꽃 사이를 오가며 꿀을 빠는 모습은 신비로웠다. 여름형은 주로 나무 진에 모이고, 가을형은 구절초와 산국 등 꽃에서 꿀을 빤다니, 내가 본 건 가을형인 듯했다. 꽃과 나비가 어울리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장애 데크길을 걷고 난 뒤 소나무 아래서 쉬고 있을 테니 천천히 오라는 것이었다. 한 번 꽃밭에 들어가면 시간을 잊는 내 습관을 잘 아는 남편의 배려였다. 고마운 마음으로 남편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다시 한 번 보랏빛 아스타꽃밭을 만끽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별바람 언덕에서의 산책은 눅눅했던 마음을 보송보송 말리기에 충분했다. 간단한 점심 식사 후 읍내 카페에 들러 조용히 책을 읽으며 오후를 보냈다. 남편은 정호승의 시산문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나는 독서 모임 선정 도서인 <플라톤의 인생수업>을 읽으며 밑줄 친 문장들을 정리했다.

카페 독서 책읽는 즐거움
카페 독서책읽는 즐거움 ⓒ 유상신

걷기와 책읽기는 노후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우리 부부가 즐겁게 실천하는 생활 습관이다. 서로 다른 점도 많고 충돌할 때도 있지만, 다행히 이 두 가지를 함께 좋아하는 덕분에 우리의 삶이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오전에 걷고 싶은 길을 마음껏 걷고, 오후엔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을 수 있었으니 오늘도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거창 별바람 언덕은 축제 기간에 찾으면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하고, 평일에 찾으면 고즈넉한 사색과 산책의 즐거움이 있다. 특히 무장애 나눔길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모두의 언덕'이라 부를 만하다. 올 가을, 거창 별바람 언덕에서 꽃과 바람, 그리고 책이 어우러진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눅눅했던 마음을 햇살처럼 말려주는 경험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제5회 감악산 꽃별 여행
- 행사 주제 : 보라 빛 노을 속으로
- 행사 기간 : 2025. 9. 19(금)~10.12(일)
- 행사 장소 : 거창 별바람 언덕
- 개장 행사 : 2025. 9. 23(화). 15:00 / 축제장 야외무대
- 부대 행사 : 꽃별마켓, 먹거리 장터, 버스킹 공연, 노을빛 언덕 음악회


#은퇴부부#걷기#책읽기#별바람언덕#무장애나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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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은퇴부부의 '따로 또 같이'

자연과 책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은퇴 후 나의 하루는 내가 디자인하며 삽니다. 지금 여기에 사는 즐거움(기쁨이자 슬픔)을 글로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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