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보다 15.79p(0.46%) 내린 3,433.83로 시작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장보다 0.9원 내린 1,378.0원으로 출발했다. ⓒ 연합뉴스
칼럼을 쓰는 오늘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첫 3400을 넘었다고 한다. 주식은 기업이 투자 자금을 조달하는 유력한 방법이고, 주가는 기업의 규모와 실적과 비례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주식에 투자하는 시민도 늘어났다고 하니, 시민들의 경영 참여나, 원활한 기업 활동의 결과로 얻어진 이윤을 주식 보유자들이 나눌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아도 긍정적인 일이다.
이는 경제 상황의 개선과 정치적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지표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때 지수 3000을 넘겼으나 부동산 광풍으로 곧 내리막을 걸었다. 게다가 윤석열 정권 내내 부동산 대출로 부추긴 투기와 중산층 이하의 소득 저하로 주식시장은 2500 전후로 침체돼 있었다. 그 위에 12.3 내란으로 야기된 정치적 불확실성이 얹혔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주식시장의 침체는 윤석열이 탄핵되고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달라졌다. 역시 경제 안정은 정치 안정이 선행돼야 한다. 또한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의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성 자금의 흐름을 주식시장으로 돌리겠다고 천명한 것이 주가 상승의 동인이 됐다고 한다. 6.27 부동산 대책으로 나온 대출규제 한도를 6억 원으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의 조치였을 것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몇 차례 조정은 있겠지만 '코스피5000'은 달성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전쟁, 관세 등 국내외 여건에 따라 출렁이는 것이 주식시장이라니까, 확언할 수는 없다. 그래도 부동산 투기보다는 훨씬 건강한 방향이라는 점에서 정부 구상대로 간다면 다행스러울 것이다. 기업과 가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비전을 뒷받침할 교육·연구·문화 정책이 안 보인다
그런데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코스피5000' 슬로건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첫째, 박근혜의 '코스피3000', 이명박의 '코스피5000'이나 737 구호가 떠오른다. 당시 이 구호는 시민들의 돈에 대한 욕망만을 자극했고, 정작 코스피 지수는 2000대에 머물렀다. 뿐만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 빈부의 격차는 더 가혹하게 벌어졌다.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의 성장은커녕 맹목적인 돈에 대한 욕망만 한껏 들쑤셔 놓았던 것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가 이명박 정부처럼 근본 없는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재명 정부가 노동의 조건, 자영업자의 생존, 일반 시민의 안전에 대해 지난 석 달 남짓 보여준 태도의 일관성에서 얻은 추론이다. 또한 국무회의와 대변인 브리핑의 공개에서 보여주듯이, 적어도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가능하면 알리려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기에 갖는 신뢰다. 보여줄 뿐 아니라 실제로 성의 있게 국정을 이끌어가고 있는 듯해서인지, 모처럼 국민들이 대통령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농담도 나온다.
그러므로 이재명 정부의 정책이 사람들의 마음에 욕망을 자극해 인기를 얻는 천박한 정치를 하지 않으리라는 추정은 과하지 않다고 본다. 즉 '코스피5000'이 욕망에 영합하는 구호가 아니라, 하나의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두 번째 걱정을 떠올리면 마냥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만 가질 수가 없다.
바로 국정기획위원회에서 국민들에게 보고한 국정과제 때문이다. 거기에는 '코스피5000'의 욕망을 다스릴 메커니즘이 약하거나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공존동생(共存同生)'을 대원칙으로 삼고, '균형 있게', '튼튼한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비전을 제시했다. 성장을 얘기하지만 '공정한 성장', '모두의 성장'을 중시했다. 무엇보다 안전, 건강을 기저로 깐 것이 고맙다.
하지만 이런 비전을 궁극적으로 뒷받침할 교육, 연구, 문화에 대한 내용과 정책은 약하다기보다는 빈곤하다. 교육은 공교육 강화, 교육 거버넌스에 '서울대10개만들기' 같은 슬픈 대책이 제시됐을 뿐이다. 문화는 K-컬처가 유일한데 이는 산업 육성의 일환이지, 즉 이미 만들어진 것을 쓰겠다는 숟가락 얹기식 소비이지, 문화의 창출이나 생산 기반에 포인트가 있는 걸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인간과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영역에 대한 고민은 아예 없다.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실험을 반복하듯이, 어떤 학자들은 인간과 사회, 역사와 철학에 대해 답이 없을 수 있는 질문을 계속한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관, 정의, 자유, 사랑, 민주주의, 공존 등에 대한 인식과 습성을 강화한다. 이런 시민과 학자들이 경박해진 우리 사회에서 성찰, 숙의, 경청, 존중, 겸손 등의 덕목을 되살리고 쉽게 타락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된다. 과거 조선시대에 집현전, 성균관, 향교를 나라에서 만들고 서원을 나라에서 지원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탐구, 연구 활동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여 과학자들의 실험실이 때론 외면받고 고독하듯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답 없는 질문은 곧잘 '돈 되지 않는 일'로 치부된다. 정작 나라살림연구소에서 공개한 정부의 지출 구조조정액, 즉 절약할 수 있는 부비(浮費)만도 23조 원 안팎인 대한민국이다. 이 나라는 돈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도 실험실과 연구실은 폐쇄되고 적막에 휩싸여 있다. 후속세대? 어디 있는지 모른다. 관련 학과? 사라지는 중이다. 그에 비례해 우리 사회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원기를 키우고 유지하는 일을 살피고 가꿔야
경제, 군사, 인구 어느 면으로 보나 한국은 세계 10위권에 드는 '큰 나라'다. 게다가 지난 2017년에 이어 다시 2024~2025년 '촛불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시민 역량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사적으로도 모범적인 지위를 갖게 됐다. 아직 내란 세력은 처벌되지 않았고 극우 세력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하나 정리하고 안전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 원기(元氣)를 키우고 유지하는 일은 세심하게 살피고 가꾸어야 한다. 원기가 사라진 세상의 모습을 멀리서 찾을 것 없다. 특검이 10개라도 모자랄 내란 공범들의 행태에서 병폐가 드러난다. 정치보다 술에 절어 있던 거로 의심되는 윤석열, 뇌물과 매관매직을 일삼은 혐의를 받는 김건희, 반(反) 인권을 온몸으로 보여준 안창호 등의 국가인권위원회, 5천만 명~1만 명을 '수거'할 계책이었음을 보여주는 노상원 수첩, 국회에서 교만하던 김용현, 여인형 등의 태도에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계속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정치가는 은미(隱微)할 때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난세의 고통은 가혹하다. 은미한 조짐들을 살피지 못하면 난세는 언제나 급습할 수 있다. 그러나 기미를 알면 막을 수 있다. 가래가 아니라 호미만으로도 막을 수 있다. 그 힘을 키워야 한다. 이런 접근이 안전할 뿐 아니라 효율적이기도 하다. 이는 정치가의 안목에 달려 있다. 안목 있는 정치가는 시민의 지지를 받는다. 변치 않는 진리이다.
2500년 전 맹자(孟子)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천 리 먼 길 찾아온 맹자에게 양나라 혜왕이 기대에 차서 물었다.
"선생께서 멀리서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이익[利]이 있겠지요?"
맹자가 대답했다.
"임금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인의(仁義)를 먼저 말씀하셔야지요! 이익만 따지다보면 왕부터 일반 백성까지 서로 이익만 다투다가 나라가 위기에 빠질 겁니다. 사리사욕만 앞세우고, 사회는 뒷전이고, 어버이나 형제도 나몰라라 하겠지요."
<맹자>의 편찬자는 왜 이 말을 맨 앞에 편집했을까? 아니, 그보다 이 뻔한 말을, 이 상식적인 생각을 우리는 잊는 것일까? 분명 인간은 어리석은 데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글쓴이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