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통사고 수습을 위해 현장에 뛰어드는 교통사고 조사원은 늘 2차 사고의 위험에 처해 있다. ⓒ anthonymaw on Unsplash
지난 4월, 교통사고 조사원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견인차에 사고 차량을 연결하다가 차에 깔려 숨졌다. 7월 8일 오전 11시에는 수도권 제1외곽순환고속도로 별내 나들목 인근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사고 수습을 위해 출동한 견인차 기사가 사고 차량 소유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뒤에서 오던 승용차가 정차돼 있던 사고 차량을 들이받았다. 충격을 입은 사고 차량이 견인기사를 덮쳤고, 그는 방호벽과 사고 차량 사이에 끼여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사고가 난 날은 배우자의 출산 예정일이었다.
교통사고 수습을 위해 현장에 뛰어드는 교통사고 조사원은 늘 2차 사고의 위험에 처해 있다. 2차 사고의 치사율은 1차 사고의 6배에 달한다. 게다가 건당 수수료를 받는 프리랜서 신분이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현장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
산재보상에서 배제된 노동자들
사고 위험은 높은데, 프리랜서 신분이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은 물론 산재보상보험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과거 '특수고용노동자'로 불리던 배달라이더, 택배, 화물, 학습지 교사, 대리운전, 캐디 등 대통령령으로 지정한 18개 업종의 노무제공자는 산재보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교통사고 조사원은 18개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산재보상에서 배제돼 있다.
노동자가 죽으면 노동자가 부양해오던 가족의 생계도 무너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산재보상보험법은 유족급여를 지급해 최소한 가족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보장한다. 노동자가 일을 하다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본인과 가족들의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에 산재보험에서 치료비와 휴업급여를 지급한다. 그러나 교통사고 조사원 같은 노동자는 산재보상보험에서 배제돼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다.
3.3%의 사업소득세를 내면서 일하는 인적용역사업자의 규모는 2023년 기준 862만 명에 이른다. 세법상 인적용역사업자는 '물적 시설·고용관계 없이 독립된 자격으로 계속 인적용역을 제공하고, 일의 성과에 따라 대가를 지급받는 자'로 규정돼 있다. 프리랜서·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이 해당된다.
산재보험법상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는 18개 업종 노동자는 2024년 7월 기준 138만 1천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특고·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산재보상에서 배제돼 있는 셈이다. 인적용역사업자의 근무 형태가 다종다양하고 복잡해 산재보험을 전면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3.3% 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사용자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노무계약을 체결하는 사업장이라면 전면 적용이 가능하다.
배달노동자나 대리운전기사처럼 휴대전화 앱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들은 건당 산재보험료를 징수하고, 그 내역을 플랫폼에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보다 투명한 체계다. 지금도 사용자는 노동자의 세금 신고 업무를 처리하고 있으며, 강의처럼 간헐적으로 일을 맡기는 사용자 역시 기타소득 8.8%를 건건이 신고한다. 즉 고용 여부나 노동시간이 아니라 소득 기반으로 사회보험을 징수할 수 있는 체계가 이미 마련돼 있다. 대통령령으로 몇 개 직종만 찍어 보호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산재보상은 되지만, 산재예방은 없는 노동자들
18개 업종 노동자의 경우 산재보상은 가능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사망으로 유족급여를 신청한 화물, 대리운전, 라이더, 택배 등 노무제공자는 60명이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원인 조사를 실시하지만, 특고·플랫폼 노동자에게는 "사업주가 작업장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도 부분 적용되지만, 그마저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배달노동자의 경우 사업주는 헬멧 확인, 운전면허 확인 정도만 하면 된다. 사고 원인 조사도 없고, 예방을 위한 법 적용도 미비하니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하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라이더유니온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 '도로에서 세상을 떠난 16명의 배달노동자 분향소'를 설치하고, 9월 5일까지 25일간 농성을 벌였다.
9월 5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알고리즘 실태조사,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권리 보장 입법 추진" 등을 약속하면서 농성은 일단락됐지만, 라이더뿐 아니라 전체 특고·플랫폼 노동자를 산업안전보건체계로 포섭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종합대책의 빈틈
마침 9월 15일 고용노동부가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안전한 일터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특고플랫폼 관련 내용은 부실하다. 종합대책의 주요 내용 중 하나인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문구를 보면, 특고·플랫폼 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이 잘 드러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직종(현 14개 직종) 및 적용되는 규정 확대 등 보호조치 강화(산업안전보건법)."
즉, 18개 직종 중 14개 직종에만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고, 그마저도 일부 조항만 해당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책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이 아니라 일부 조항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수준에 불과하다.
특고·플랫폼 산업에 대한 안전조치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반면, 노동자에 대한 대책은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예컨대 배달노동자의 경우 교통위반 집중 단속, 안전교육 의무화, 안전캠페인 강화 등을 대책으로 내놨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재 사고에 대해 "원인과 결과가 바뀌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자주 했다. 사고 당시 재해자의 행동을 단순히 원인으로만 보는 것은 결과를 원인처럼 돌리는 것이므로,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원인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특고플랫폼 노동자 노동안전관련 정부 종합대책은 여전히 산재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람의 휴먼 에러 역시 산재사고에서 살펴야 하지만, 그 에러를 줄이는 방법은 장시간 노동, 인력 부족, 과도한 생산 압박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산재의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지 않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특고·플랫폼 노동자 모두를 산업안전보건과 산재보상 체계 안으로 포섭할 때 비로소 지켜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번 글은 김용균재단 이사이자 공공운수노조 노안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박정훈 님이 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