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학원에서 봤던 장면이 떠오른다. 손가락이 부러져 건반을 누를 수 없는데도 억지로 앉아야 했던 아이, 집에 가기 싫다고 울며 매달리던 아이, 여름에도 긴팔로 멍을 가리던 아이. 그 모든 걸 보면서도 선생님은 결국 건반을 치게 했고, 늘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으며, 그저 "덥지 않냐"고만 물었다. 인간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어쩌면 '미션 임파서블'이다. 가능한 일로 바꾸고 싶을 때 시간과 돈을 지불한다. 선생님은 아빠에게서 돈을 받았고, 그 돈이 곧 아이가 피아노를 치도록 만들어야 하는 이유였다.
돈을 주고받는 순간, 관계에는 역할과 기대가 생겨난다. 그것은 피아노 학원 선생님일 수도 있고, 처음 만난 고위직 인사일 수도 있으며, 숙소를 청소하는 노동자일 수도 있다. 혹은 옆집 이웃, 전 아내의 새로운 연인, 온라인 영어 회화 사이트의 멘토, 좋아하는 일...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면 무기력이 생기고, 심지어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다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대"

▲책표지 ⓒ 문학동네
김애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2025년 6월 출간)는 바로 돈이 지불되는 순간들을 붙잡는다. 돈이 매개가 되는 찰나, 관계는 균열하고, 그 틈새에서 가장 솔직하고 낯선 인간의 감정이 드러난다. 작가는 그 균열 속에서 나오는 불편함과 서늘함, 그리고 미처 직면하지 못한 마음의 민낯을 섬세하게 길어 올린다. 독자는 그 틈에서 불쑥 드러나는 불안과 동질감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숲속 작은 집>의 은주 곁에는 "어려서부터 몸에 밴 귀족적 천진함"을 지닌 남편이, <홈 파티>의 이연 앞에는 "오랜 시간 '판단'과 '선택'이 몸에 밴 이들이 뿜어내는 단단하고 날렵한 기운"을 풍기는 오 대표가 있다. 작품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모두 타자 감수성이 결여된 채 자기 잣대로 타인을 단정하는 인물들이다. 남편이 청소 노동자를 '메이드'라 부르고, 오 대표가 고아원 출신 아이들의 소비를 '허영심과 금융 문맹'으로 낙인찍을 때, 은주와 이연은 그 둔탁한 언어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끝내 세상에 살아남은 것은 그들의 언어가 아니라, 남편과 오대표의 언어였다. 결국 가치는 지켜지지 못하고, "많은 이들이 다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에서 두 여자 역시 '많은 이들'이 되어버린다. 김애란은 이처럼 개인이 믿어온 가치가 어떻게 서서히 닳아 없어지 서늘하게 그려낸다.
무서운 것은, 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닳을 대로 닳아 제 얼굴을 잃은 사람들도 소설에 등장한다. <좋은 이웃>과 <이물감>의 '나'와 '기태'의 삶에는 더 이상 사라질 무언가조차 없다. 어느새 차가운 세상과 타협해버린 삶을 자각조차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라는 고백은 우리 모두의 내밀한 민낯을 드러낸다. 자신의 전셋집보다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가는 제자의 좋은 소식 앞에서 무너지는 '좋은 선생님'의 자부심, 전 아내의 새로운 연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일부러 음식을 남기며 채우는 우월감. 가장 밑바닥의 감정을 보여주는 김애란은 이 장면들을 섬뜩할 만큼 담담하게 그려낸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이 문장은 단편집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돈이 삶의 중심에 놓이는 순간, 인간은 얼마나 쉽게 초라해지는가. 멈칫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부분이다.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온 일일 텐데.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 있는 걸까?'" (레몬케이크)
기진의 질문은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한 번쯤 품었던 의문을 대신한다. 김애란은 레몬케이크를 통해 개인의 불안을 넘어, 모두가 이미 겪었을 법한 보편적 두려움을 찌른다.
내일을 살아갈 힘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붙잡으며 살아가야 할까. 무엇이 우리를 내일로 이끌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이가 건넨 정중한 문장이라 한국의 그 어떤 행정 언어나 법률 언어보다 더 정직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던 말.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그 답 또한 얼마 나 기다렸는지도." (빗방울처럼)
이 질문은 누수를 막고 석고보드를 대느라 벽지가 뜯긴 안방을 본 도배사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지수에게는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물음이었다. 자신을 돌보지 못해 곰팡이처럼 퍼져버린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히는 말이자 "남편 잃은 여자,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로 동정하지 않고, 그저 지금의 사실을 묻는 말이었다. 도배사가 떠난 뒤, 다시 홀로 집에 남겨졌을 때 그 질문이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이라는 걸 깨달은 이유다.
이처럼 "우리 삶에는 그렇게 틀린 방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은미는 '러브 허츠' 속 "I'm young"을 "안녕"으로 듣는다. 전혀 다른 말이지만, 은미는 그냥 '안녕'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잘못된 가사가 몇 년이고 은미를 살게 했다.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건 언제나 올바른 말 뿐이 아니다. 그 순간, 스스로 의미를 찾은 말이야말로 삶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된다.
김애란은 자신만의 언어로 작품 속 인물들에게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온기 어린 말을 건넨다. 돈 때문에 관계가 흔들리고, 삶이 서서히 닳아가는 순간에도 작은 따뜻함 하나가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안녕이라 그랬어>의 끝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안녕'을 떠올린다.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작은 말 하나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스타그램(@mawhu_u), 블로그(soooooong)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