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 milkbox on Unsplash
지난 9월 2일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가 처음으로 순직을 인정받았다. 정부가 급식노동자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작년 9월 사망한 이영미씨는 충북에 있는 학교에서 10여 년간 급식노동자로 일했다. 성실하게 밥을 짓던 그에게 찾아온 결과는 폐암 3기였다.
그는 3년간 투병하다 사망했다. 밥하는 노동이 얼마나 중노동인지 알 수 있다. 급식노동자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 공무직 중에서 순직이 인정된 첫 사례다. 학교에는 교사 외에도 경비직, 미화, 관리 조리실무사 등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들이 있다.
어쩌다 보니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뒷감당'의 무게를 느끼는 책이 <정치적인 식탁>이다. 밥하는 노동에 대한 몰인식과 차별적 대우에 대해 비판해 놓고 혹시 나조차 이 노동을 소홀히 대할까 봐 주의하게 된다. 밥하기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노동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업적으로 밥을 하는 식당노동자나 급식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자료를 통해서만 접한 채 글을 쓴다는 게 스스로 늘 불편했다. 마침, 집 근처 학교에서 급식노동자를 모집하길래 지원해 볼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작년에 한 시사주간지에서 기자가 직접 급식노동 체험을 한 르포기사를 읽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 부끄럽지만 '체험'하러 갔다가 괜히 방해꾼이 되겠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급식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은 기본이고 화상이나 절단 사고도 잦다. 기름이 튀어 미끄러운 조리실 바닥에 넘어져 머리를 다쳐도 병원에 가기보다 시간 맞춰 밥 짓는 일이 우선이다. 지난 5년 동안에만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한 급식노동자가 200명이 넘는다. 이 중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다. 폐암 발생을 줄이기 위해 무엇보다 환기 시설 개선이 시급하다. 사람 살리는 먹거리를 만드는 급식실이 사람 죽이는 곳이 된다는 건 모순이다. 이번에 순직으로 인정받은 것이 반갑지만, 그보다는 밥하다 죽고 다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급식조리사들은 평균 1인당 100~150명의 식사를 담당한다. 영양가 있으면서 맛도 있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이 많은 인원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기까지 수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게 아니다"(이언주, 2017)라는 희대의 망언이 생산될 정도로 밥하는 노동에 대한 몰인식이 팽배하다. 더구나 학교급식법에서 학교급식은 '수업일 점심시간'으로 규정하고 있어 급식이 제공되지 않는 방학 기간에 조리 종사자는 비근무자가 된다. 관련 종사자들은 1년에 9개월만 받는 급여체계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일부 지역에서는 상시전일제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아이들의 식사도 교육의 일부다. 교사만이 아니라 급식 노동자들도 중요한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노동자가 안전한 학교가 아이들에게도 안전하다. 맛있는 밥은 안전한 노동에서 나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이라영 인권연대 칼럼니스트는 문화평론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