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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하는 도중 찍은 일출 사진해 뜨는 시간이 점점 늦어져 집에서 오전 6시에 나와도 러닝하며 일출을 볼 수 있다. ⓒ 김지은
혹시 이런 감정을 아시는지? 내가 좋아하던 어떤 일이 갑자기 유행하면서 너도나도 다 하니, 오히려 흥미가 떨어지는 감정. 나 혼자 좋아했던 숨겨진 스타가 갑자기 국민배우가 되고 나니 오히려 좋아하는 마음이 사그라든 그런 감정.
이게 바로 얼마 전까지 내가 러닝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었다. 난 이 감정을 '식은 수프'라고 명명했다. 뜨거운 수프를 맛있게 먹으려고 후후, 입김을 불어대며 애썼는데, 갑자기 모두 다 그 수프를 먹겠다고 하는 통에 수프는 식어버리고 난 더 이상 그 수프를 먹고 싶지 않게 된 씁쓸한 감정이라고나 할까.
홈트, 필라테스, 실내 자전거 돌아 다시 러닝
나는 2018년 필라테스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10km 마라톤 대회에 참여한 후, 러닝에 재미를 붙였다. 달릴 때의 몰입감과 달린 후 성취감, 개운함이 좋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계속 뛰고 있다.
그런데 러닝 인구가 늘어나면서 관련 산업이 커지고, 이런저런 아이템들이 유행하다 보니 마라톤 대회 기념 티셔츠에 '추리닝' 반바지를 입고 뛰는 내 착장은 어설퍼 보이고, 마라톤 대회는 신청하기 너무 어렵고, 집 앞 한강 러닝 코스는 사람이 많아져 달리기 불편하다.
달리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뜸 기록부터 묻는다.
"몇 분 페이스로 뛰세요?"
"보통 6분 30초 페이스로 뛰어요."
질문했던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는다. 기록에 큰 신경 안 쓰고 달리기 자체를 좋아하던 나는 별 볼일 없는 러너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이런 상황을 푸념하듯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이 "곧 지나가리라" 하고 대꾸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지나가니 이 유행도 지나갈 테고, 그러니 기다리라고 했다. 난 알겠다고 대답한 후, 러닝을 홈트, 필라테스, 실내 자전거 등으로 대체했다.
생각해보니 (러닝붐 이전에)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고 할 때, 주변에서 날 다르게 보는 그 시선이 좋았다. '식은 수프' 감정의 뿌리는 남들과 차별되고 싶은 우월감이었다. 내가 하는 활동을 남들도 다 한다면 난 더 이상 구별되지 않으니, '흥, 그럴 거면, 안 할래'라며 하던 활동을 그만둬버린다. 활동의 본질에 집중하기보다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더 집중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러닝'은 남들의 시선보다 본질이 중요했는지, 날이 선선해지니 뛰고 싶다. 8월 말부터 다시 뛰는 횟수를 늘렸다. 러닝이 다른 운동과 다른 여러 차별점 중 나에게 가장 큰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목표한 곳에 다다르는 그 이미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역동이다. 필라테스나 홈트로 살을 빼고 몸을 균형 있게 가꿀 수는 있어도 그런 이미지를 가져올 수는 없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한 걸음씩 모여 결국엔 결승점에 도달하는 달리기를 생각하곤 했다.
러닝을 등한시한 몇 달간의 나를 지켜보니, 일이 틀어지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쉽게 무기력해졌다. 머릿속 가득 고민이 있을 때 달리면 생각이 정리된다. 해결책이 떠오를 때도 있고,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마음은 편안해진다. 결국, 유행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일이 풀리지 않고, 삶이 정체된 것만 같은 모든 이에게 러닝을 권한다. 한 걸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모여 결승점에 다다르는 그 이미지를 자기 것으로 만드시기를. 묵묵히 달리며 힘든 구간을 견디며 자신을 신뢰하게 되시기를.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몸 전체로

▲남산 둘레길 러닝 코스서울의 유명한 러닝 코스인 남산 둘레길. 많은 러너들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오히려 낮에 가시는 것도 방법. 여름이라면 상상만으로도 덥겠지만, 지금은 가을! ⓒ 김지은, 형소진
유행을 따르는 것 같아 오히려 러닝이 꺼려지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다. 얼마 전, 나처럼 러닝 유행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 유행은 얼마간 계속될 것 같다.
AI에게 물어본 결과, 지금 같은 폭발적인 유행은 조금 사그라들 수 있어도 아주 예전처럼 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러닝만큼 시작하기에 간단한 운동도 없고, SNS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기록이나 코스를 공유하고 동기부여를 받는 문화가 생겼으며, 러닝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힐링' 효과를 경험한 사람도 많고, 러닝 산업이 성장하면서 기업들이 계속 러닝 관련 서비스나 제품을 내놓아 러닝 문화 확산에 노력할 거라고 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러닝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 달리기 좋은 이 계절에 러닝을 시작하자.
여름의 러닝을 생각해보자. 러닝 코스에 도착하기도 전에 땀으로 온몸이 젖는다. 뛰기 시작하면 어쩌나 날벌레들이 달려드는지. 입에 들어가는 것은 예사고 종종 눈에 들어갈 때도 있다. 그 따가움과 당혹감이란. 아침에 일출을 보고 싶거나 햇볕을 피하고 싶은 경우, 집에서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나가야 한다. 겨울의 러닝은 또 어떤가.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부터 큰 의지가 필요하다.
그에 비해 가을의 러닝은 가뿐하기 이를 데 없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주고 공기 중 습도가 낮아 몸이 가볍다. 이럴 때 머뭇거리지 말고 얼른 운동화를 신고 나가야 한다. 달리며 일출을 보고 싶다면, 새벽 6시에 집에서 나가면 된다(새벽 5시보다는 상식적인 시간이다). 이제 곧 추운 계절이 오면 달리고 싶어도 어려워진다.
특히,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나 예술가들에게 러닝을 권한다. 영감은 앉아 있을 때보다 몸을 움직일 때 찾아온다. 달리고 난 뒤, 비로소 생각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 전체로 한다는 걸 알았다. 걷고 달릴 때 아이디어가 찾아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는 데는 그런 이유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공모전에 떨어져서, 프로젝트가 엎어져서, 아무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아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을 때, 주저앉아 운동화를 신자. 신발 끈을 묶고 살살 달리자. 게다가 이게 웬일, 달리기 너무 좋은 날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