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이야기하면 그래도 들어주는 세상이라고 아직 믿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순진하다고들 하지만, 순진한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법은 기득권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겉으로는 약자를 위한다고 표방하는 것이 또한 법이기에 부조리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법으로써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세상의 모습을 이곳에 전한다.
정부가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조치로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는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와 별도로 이른바 '문화소비쿠폰'을 배포했다. 지난 7월 영화 관람료 할인권 450만 장을 배포했고, 8월에는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문화예술 소비 활성화를 위해 공연 할인권 50만 장, 전시 할인권 160만 장을 배포했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정부의 문화소비쿠폰 지급 이후 업종별로 고객들의 이용 행태를 분석한 결과, 문화소비쿠폰의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쿠폰의 경우 예매처 4곳의 쿠폰 사용 첫 주(7월 25~31일)의 전 주 대비 이용 건수는 85%, 이용 금액은 42% 늘어났고, 미술전시 및 공연예술 분야의 경우 온라인 예매처 5곳의 쿠폰 사용 첫 주(8월 8~14일)의 전 주 대비 이용 건수는 7%, 이용금액은 6% 증가했다.
독서와 멀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맞아 서울야외도서관이 운영을 시작한 23일 서울 중구 청계천 '책 읽는 맑은 냇가'에서 시민들이 독서를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이 뉴스를 보며, 왜 독서 부분은 빠졌을까 아쉬움이 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종합 독서율(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비율)은 43.0%이었다. 직전 조사 시점인 2021년 대비 4.5%포인트 감소했으며, 1994년 독서 실태조사를 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대략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것이고, 흐름상 점점 더 책을 안 읽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위 조사 결과에 의하면, 독서 장애 요인은 '시간이 없어서'(24.4%),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다른 매체를 이용해서'(23.4%),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아서'(11.3%) 등이었다.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으로 갈수록 시간이 없어지는 현대인의 삶의 형태와 더불어 쇼츠, 릴스 등 짧은 호흡의 자극적인 영상 매체 소비가 늘면서 점점 독서와는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다"(도스토예프스키), "책 한권 한권이 내게 새로운 것을 일깨워주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빌 게이츠) 등 여러 독서 관련 명언들을 찾아 보라.
전국민 동네서점 독서쿠폰을 지급하면 어떨까?

▲문체부와 영진위는 7월 27일 오전 10시부터 영화관 입장권 6천 원 할인권 총 450만 장을 주요 영화관 앱 등을 통해 배포했고, 이는 큰 효과를 거뒀다. 그렇다면 도서 쿠폰을 배포하면 어떨까? ⓒ 연합뉴스
이런 현실에서 독서율 제고를 위해 전국민 독서쿠폰을 지급하면 어떨까? 앞서 다른 문화소비쿠폰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낸 만큼, 독서쿠폰 제도도 효과가 있을 듯하다. 더욱이 위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의하면 독서율은 소득에 따라서도 큰 격차를 보였다.
월평균 소득이 500만 원 이상의 독서율은 54.7%, 월 소득 200만 원 이하의 독서율은 9.8%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문화비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부담없이 책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독서 쿠폰을 제공한다면, 이와 같은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서관에 갈 수도 있지만, 서점에 가서 새로 나온 책들을 보며 내 눈과 손으로 직접 책을 보고 고르는 경험은 나만의 책 취향을 만들어 독서습관을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독서쿠폰의 사용처는 전국의 개성 넘치는 동네서점으로 하면 좋겠다. 책과 접점이 없을수록 온라인 서점, 대형 서점보다는 동네서점이 제격이다. 동네서점은 책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 모임, 작가와의 만남 등 북토크, 저자 강연 등 독서를 풍성하게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책 1권 구매에 멈추지 않고, 장기적인 독서 습관을 형성하는데는 위와 같이 독서를 보조하는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게다가 동네서점은 이렇게 지역의 커뮤니티로서 독서 문화 보급처가 되고 예술 활동 공간으로 기능함에도 언제나 존립이 위기라는 점에서, 독서쿠폰 사용처를 동네서점으로 한정한다면 동네서점 지원책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국가와 지자체에 대해 동네서점 활성화 정책 수립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바, 정책 시행의 법적 근거도 있는 셈이다. 참고로 현행 동네서점 지원 정책은 서점 내 문화 활동 지원이 대부분이며, 국민 독서율 향상 등 독서 문화 확대를 위한 근본적인 정책은 별로 없다.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시도들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시행하는 '단비책기금' ⓒ 비온뒤무지개재단
사실 이미 유사한 제도들이 시행된 바 있기도 하고, 시행 중인 것도 있다. 정부 정책으로는 2023년까지 시행됐던 '청소년 북토큰' 제도가 있다. 청소년에게 서점에 가서 책을 받을 수 있는 북토큰(일종의 도서교환권)을 지급하여, 서점에서 선정위원회가 선정한 책 리스트들 중 책 1권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였다. 독서 문화 확산을 위한 유의미한 제도로 평가되었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 폐지되었다.
현재 진행 중인 정책 중에는 경기도의 '천권으로 독서포인트제'가 눈에 띈다. '천권으로 독서포인트제'는 14세 이상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연간 최대 6만 원의 포인트를 지급한다. 포인트는 도서 구매, 도서관 대출, 독서일지 작성, 리뷰 등록, 천권클럽(독서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독서 활동을 통해 적립할 수 있다. 또한 활동별 인증(영수증, 사진, 일지 입력 등) 확인을 거쳐 포인트가 자동 적립되며, 누적된 포인트는 매월 25일 지역화폐로 전환된다. 이렇게 전환된 지역화폐는 도내 지역서점에서 도서 구매에 사용할 수 있다. 독서력 제고, 지역서점 지원이 훌륭하게 결합된 정책이라 생각된다.
민간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는 최근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인권단체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단비책기금'이 있다. 위 재단은 2023년부터 9월경 퀴어 도서를 중심으로 한 '앨라이 도서전'을 사전신청을 받은 동네서점과 함께 진행해 오고 있는데, 올해는 위 도서전에서 단비책기금으로 24세 이하 아동청소년에게 책 한 권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가 함께 진행된다.
시민 기부자의 참여를 통해 최소 400만 원의 기금을 만들고, 앨라이 도서전에 참여하는 동네서점에 배분한 뒤, 만 24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동네서점에 방문하면 도서전에 선정된 도서들 중 한권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위 기금의 제안자인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책이 필요한 청소년은 선택의 기쁨을 누리고, 전국의 독립 서점에는 작은 활기가 더해져, 우리 모두가 조금 더 연결되고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유사한 시도들이 행해져 오고 있는 만큼, 이를 참고하여 정부 차원에서 전국민 동네서점 독서쿠폰 지급 등 국민의 독서력 향상 및 독서 습관 형성, 동네서점 활성화 등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시행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