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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이 끝나고 은퇴가 가까워진 주변의 적잖은 50,60대 사람들이 팍팍한 도시 생활을 떠나 자연 속에서 텃밭을 일구며 노후를 살고 싶어하는 것을 종종 본다. 하지만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어도 지속해왔던 도시 생활을 떠나 귀농을 선택하는 것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2025년 1월부터 체류형 쉼터 규모가 10평으로 커지면서, 귀농하지 않고도 전원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이 한층 좋아졌다. 이런 변화는 오도이촌(주 7일 중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농촌에서 생활하는 것)을 삶의 형태로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메리트가 되는 것 같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살기 시작하다
우리는 은퇴 후 시골에서 작은 밭을 일구며 자연과 함께 소소하게 일상을 보내는 꿈을 갖고 있었다. 남편의 은퇴가 가까워지면서 가끔 집에서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땅을 보러 다녔다. 도심과 가까우면 편리한 점도 많겠지만 우리는 시골 정취가 물씬 나는 곳을 원했다.
그러다 올 봄 지인의 농막에 놀러갔다가 멀리 얕은 바다와 산이 정겹게 앉은, 밭 아래 시골 마을이 옹기종기 터 잡은 산아래 밭을 덥석 사버렸다. 남편의 은퇴가 4년 정도 남아서 좀 빠른가 싶기도 했지만, 몇 년 전부터 생각해 오던 일이라 인연이 닿았을 때 하자고 의논을 모았다. 결정하는 데는 법정 스님의 말씀이 한몫했다.
각자에게 배당된 그 한정된 시간을 마음껏 활용해야 할 것이다. 자기 몫의 삶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이건 생각이 떠올랐을 때 바로 실행할 일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따로 시절이 사람을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실행 버튼을 누르는 쪽을 선택했다. 밭을 사고 서둘러 10평 남짓 쉼터를 지었다. 맞벌이 부부가 그렇겠지만 지금껏 바쁘게 급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쉼터에서는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대며 시간을 잊고 지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런 지향을 담아 쉼터 이름을 챗GPT에게 물어보니 몇 가지 제안했다.

▲쳇GPT가 추천한 쉼터 이름밭머리에 쉼터를 지은 후 시골에서의 삶에 대한 지향을 넣어 쳇GPT에게 쉼터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더니 '느루뜰'을 추천해 주었다. ⓒ 이정미
챗GPT의 제안과 지인들의 의견을 구해 한 달 남짓 고민한 끝에 '느루뜰'로 정했다. 순우리말 '느루'가 가진 뜻이 시골 생활을 시작하며 명심하고자 했던 우리의 지향을 잘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느루'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속적으로 꾸준히', '무리하지 않고' 라는 뜻을 갖고 있다. 무리하지 않고 대신 사부작사부작으로 바꾸었다. 나는 일을 두고 못 보는 타입이다. 일을 보면 나도 모르게 서두르게 된다. 시골 농사일은 기다림의 미덕이 필요하다.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 서두름은 득 될 것이 없다. '사부작사부작'은 세 가지 중에서 스스로 가장 명심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할 점이다.
현판은 쉼터의 이름이고 지향이며 '길들이고 길들여지기 위한' 첫 단추 끼움이었다. 전원 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시작했다가 시골 생활의 불편함, 고단함, 단조로움 등에 회의를 느껴 2~3년 만에 접는 일을 심심찮게 듣고 보았다. 서로 길들이며,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에 민감해지는 소중한 공간으로 오래도록 책임지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쉼터의 목적은 충만한 시간을 사는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조화로운 삶>(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지음. 두 사람이 뉴욕 생활을 그만두고 버몬트 시골로 들어가 살았던 스무 해를 기록한 책)의 내용을 기억한다. 버몬트에서의 시골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에 함몰되지 않았던 것이다. 필요한 만큼의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연구, 여행, 글쓰기, 대화 등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였다.
쉼터의 목적은 노동이 아니다. 노동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여름에는 이른 아침, 해의 기운이 쇠약해진 저녁 시간 1~2시간 정도이다. 노동은 충만한 시골생활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가 먹고 나눌 좋은 채소와 열매를 얻기 위한 적정한 노동이면 충분하다.
쉼터의 목적은 충만한 시간을 사는 것이다. 뒤로는 산이, 앞으로는 들, 마을, 바다, 산이 조화롭게 펼쳐지는 이곳을 선택한 까닭은 현관문을 열면 맨발로 발코니에 서서 시골 정취를 눈에 담을 수 있어서다. 사계절의 하늘, 바람, 구름, 노을, 자연의 소리와 색감을 오롯이 느끼며 이후의 삶을 더욱 감사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다.

▲쉼터에서 바라본 풍경쉼터 발코니에 서면 하늘, 산, 바다, 마을 풍경이 평화롭게 그려진다. ⓒ 이정미
하루의 적정한 노동을 제외한 시간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보낸다. 깨어나는 아침과 차분한 저녁 공기를 느끼는 산책에 부지런을 떤다. 지역 장터에 나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장을 보고 소박한 밥상에 감사한다. 열린 공간이다 보니 이웃과 지인을 초대하기 좋다. 그들과 함께 소소한 대화로 웃는 시간을 자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밭에서 생산한 채소와 열매를 이웃과 지인과 나누는 기쁨도 조금씩 누리고 있다.
적정한 노동이 주는 충만함
어느날 지인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가 밭을 인수하고 난 뒤 밭이 밀림이 되었다고 했더니,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아니라 콩 심은 데 풀 나고 팥 심은 데 풀 난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매일 관리해도 여름 밭은 풀밭인데 일주일에 한 번 여의치 않으면 그마저도 빼먹는데 당연하다는 말이었다.
여름 내내 풀을 뽑아보니 밭을 정갈하게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으로 배우고 있다. 땀 흘리며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풀을 뽑으니, 힘이 들기도 하지만, 묘하게 몰입하게 되고 정화되는 기분을 느낀다.
안 쓰던 근육을 쓰니 팔과 어깨가 뭉치고 허리도 뻐근한데, 알 수 없는 충만함을 느끼고 있다. 풀을 뽑다 보면 배고픔도 잊는다. 그만큼 몰입감이 크다. 노동 후 씻고 텃밭에서 갓 딴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밥이 꿀맛이다. 조촐한 밥상인데 이처럼 맛있게 느껴지는 신기함을 경험하고 있다.
버트런트 러셀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에서 행복이란 의외로 단순하고 생리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내가 불행하다면 내 식단을 바꾼다든지, 아니면 하루에 몇 킬로를 걷는다든지, 인간이 바로 동물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바로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땀 흘리고 풀을 뽑으며 나는 러셀의 생각을 몸으로 수긍하고 있다. 몸을 움직였을 뿐인데 뿌듯함, 만족감, 충만함, 여유, 자유로움, 살아있음 이런 감정을 체험하고 있다.

▲가을 무 농사농약을 쓰지 않고 가을 무를 기르기 위해 남편이 무싹에 그물을 덮어 주고 있다. ⓒ 이정미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균형된 사회를 위해
주 5일은 도시에서 본업에 종사한다. 금요일 퇴근하면 주말 이틀을 보낼 먹거리, 할거리를 챙겨 50분 가량 차를 달려 쉼터로 향한다. 주 생활 공간을 떠나 시골로 오면 직장에서의 복잡했던 일, 머리 아팠던 일로부터 자연스럽게 해방되는 느낌이다. 자연 속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자연을 닮아가는 것 같다. 흙을 만지며 몸을 움직이고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도 집중이 잘 된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니 두 곳이 모두 더욱 좋아진다.
지방 소멸에 대한 걱정이 많다. 우리가 주말을 보내는 시골 마을도 60대 후반에서 70대, 80대 노인분들이 대부분이다.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이 마을도 사라질까 걱정이다. 어르신들이 마을을 얼마나 정갈하게 가꾸며 사시는지 마을을 산책할 때마다 마을을 아끼고 지켜내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감탄한다.
며칠 전에는 마을 이장(69세, 밭농사 논농사를 직접 하시며 마을 살리기에도 열심이시다)님이 우리 밭을 방문하셨다. 마을 이름에 얽힌 이야기, 마을을 살리기 위한 노력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주셨다. 마을의 오랜 전통을 살려 젊은이들이 찾는 특색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의논하고 애쓰시는 모습에 존경심이 절로 일어났다.
농촌을 지켜내는 일은 한국의 전통적 정취를 잇는 일이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 사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시골집 닷컴' 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시골집 매매, 임대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오도이촌, 귀촌 등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 관심을 갖고 도시와 시골이 공존하는 균형된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시와 시골을 잇는 다양한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