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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생일상에 올린 미역국
아버지 생일상에 올린 미역국 ⓒ 이혁진

오늘 9월 11일은 아버지 생신, 우리 나이로 96세를 맞았다. 아내는 어제 저녁부터 미역을 손질하고 한참 끓여 아침 생신상에 올렸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따로 아버지께 생신을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앞으로 더욱 건강하시길 기원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장수하는 편이며 이는 조상의 은덕이다"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장수관은 규칙적인 생활과 긍정적인 생각 그리고 소식(小食)에 있다고 생각한다. 생신상과 별도로 지난 주 앞당겨 아이들과 함께 생신 잔치 겸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생일마다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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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아버지의 소감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왠지 눈물이 났다. 이렇게 외식하는 기회가 자주 있기를 속으로 빌었다. 생일 하면 선물이 빠질 수 없는 법, 사실 생신 선물보다는 아버지가 평소 드시고 싶은 음식이나 입고 싶은 옷을 챙겨드리곤 했다. 우리 부부는 아버지 생신 선물을 한동안 고민했다.

아내가 아이디어를 냈다. 아버지께서 신고 있는 운동화가 오래된 것 같아 새것으로 바꿔드리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공원에서 낙상 사고도 있어 새 신발로 바꾸기로 했다. 새 운동화는 생신날 직접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사드리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아버지의 운동화

 작은 아들이 할아버지 새 운동화를 신겨드리고 있다.
작은 아들이 할아버지 새 운동화를 신겨드리고 있다. ⓒ 이혁진

그런데 웬걸? 작은 아이가 회식 때 할아버지 운동화를 선물했다. 아버지는 손자가 내미는 새 운동화를 신고 함박 웃음을 지었다. 우리도 애들이 우리 생각을 훔쳐봤나 싶을 정도로 놀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새 운동화를 며칠 신고 신발장에 넣어두신 뒤 예전의 신발을 신고 다녔다. 새 신발이 어디 불편해서 그런가 표정도 어두웠다.

아버지께 조심스레 여쭈었다.

"왜 새 운동화가 맘에 드시지 않으세요?"

아버지는 "아껴신는다 "고만 하셨다. 이에 나는 "손자가 선물한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신으셔야지, 아껴서 뭐 하시려고요? " 퉁명스럽게 물었다. 아버지는 차분히 서운한 감정을 말했다.

"신발 때문에 낙상한 것이 아니고 내가 발을 잘못 짚어 넘어졌는데 왜 멀쩡한 신발을 버리려고 하느냐? "

아버지는 지금까지 신어 오신 운동화가 지난해 내가 사준 것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덧붙였다. 신으셨던 운동화를 버린다는 상실감에 몹시 충격을 받으신 모양이었다. 아버지 말을 듣고 비로소 속마음을 이해했다.

그래서 타협안이 나왔다. 아버지는 내가 사준 기존 운동화와 이번에 손자가 사준 운동화를 번갈아 신기로 했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표정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한다. 나이가 들면 옛 것을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단순히 아깝다는 것으로 설명이 부족하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느 해 티셔츠를 생일 선물로 받았는데 이것 대신 오래된 티셔츠를 고집스레 입자 선물한 사람에게 오해를 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 아버지는 경로당을 가시면서 손자가 사준 새 운동화를 꺼내 신으셨다. 배웅하는 내 마음도 기뻤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아버지생신#운동화#생일선물#손자#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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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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