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의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300여 명을 체포해 구금한 일과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 기업의 대미 직접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 대통령은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인 구금 사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석방 및 귀국 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대통령에 따르면, 한국의 외교 교섭에 따라 미국 조지아주 구금시설에서 석방되는 인원은 총 331명으로, 이 중 한국인 1명이 미국에 남겠다고 했고 나머지 330명이 한국 시각으로 이날 오후 4시 경 구금시설을 나와 애틀랜타 공항으로 이동한 뒤 12일 오전 1시 경 이륙, 같은날 오후에 한국에 도착한다. 330명 중에는 외국인 14명이 포함됐다. 한국인 316명 중 남성은 306명, 여성은 10명이다.
애초 전날 석방이 예정됐지만 미국 측이 이를 미룬 일에 대해 이 대통령은 "미국 측은 구금시설을 나와 버스로 이동해서 비행기를 탈 때까지는 미국 영토 내이고 체포돼 있으니 수갑을 채워서 이송하겠다는 입장이었고 우리는 '절대 안 된다'라면서 추방이냐 자진 귀국이냐 밀고 당기는 와중에 (구금자에게) 소지품을 돌려주고 있다가 '백악관의 지시다'라면서 중단했다고 한다. '자유롭게 돌아가게 하라' 그런 내용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서 일단 중단하고 행정절차를 바꾸느라 그랬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8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모습. ⓒ 연합뉴스
이번 사태에 대해서 이 대통령은 "사실은 당황스럽다"라면서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도 있다. 미국인들이 여행비자로 들어와 영어를 가르치고 하는 것을 우리는 '그럴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쪽(미국)은 '절대 안 돼'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민 당국의 정책이 '불법 이민은 절대 안 돼'라면서 과격한 방법으로 추방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매우 당황스러운 상태일 것"이라며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는 데 기술자가 있어야 기계를 설치할 것 아닌가. 미국에는 그런 인력이 없고, 취업비자 발급은 안 된다 하고. 기술자들이 '가는 길에 한번 도와주고 오지 뭐' 이게 안 되면 기업으로선 미국에 현지 공장 설립에서 온갖 불이익을 당하거나 어려워질 텐데, '이 걸 해야 하나' 고민 안 할 수 없다. 대미 직접 투자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대미 투자와 관계된 비자 발급을 정상적으로 운영해 달라, TO를 확보하거나 새로운 유형의 비자를 만들어달라는 협상도 하는데, 미국도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라며 "현재 상태로선 미국에 직접 현지 투자를 하는 것은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 이민 당국의 배터리 공장 급습에 대해 "당황스럽다"고만 밝히고 이후에는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기업의 입장을 빌려 유감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 측이 비자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놔야 한다는 생각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 관세 인상 방어하러 간 건데, 사인을 왜 하나?"
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결과 대강의 합의는 이뤘지만 세부이행사항 합의가 문서화되지 않은 데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 대통령은 "최종 결론은 합리적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라며 "후속 협상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외 협상에서 ▲어떠한 이면합의도 하지 않는다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 등 3가지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런 논란이 있다. '남들은 사인을 하는데 왜 너는 사인 못하냐?'"라면서 한미정상회담 결과가 공동성명이나 정상합의문 등으로 명문화되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얻으러 간 것이 아니다. 일방적인 관세 증액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방어를 하러 간 것"이라며 "방어를 하면 됐지, 왜 사인을 하느냐. 우리에게 좋으면 사인을 하는데,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느냐. 최소한 합리적인 사인을 해야죠. 사인 못 했다고 비난하지 말아달라"고 설명했다.
당시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 기자들과 자유롭게 질문을 주고 받는 과정(프레스 개글)이 있었는데, 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 말미에 당시를 회상하면서 언론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 기자들은 미국 기자들 못지 않게 목소리를 높여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이 대통령은 "'프레스 개글'이라는 처음 보는 현장에 여러분이 함께 있어 엄청나게 힘이 됐다. 집 안을 벗어나서는 잠시의 갈등, 색깔의 차이를 접어두고 집 안을 지키는 일에는 같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 갔을 때 여러분이 그런 모습을 보여줘서 제가 너무 감동했다. 우리가 한 식구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참석한 외신기자들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외신기자들이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대북 유화조치..."이재명이 종북이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위해 필요"
이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줄 것을 부탁했는데, 북미 대화의 단초는 아직 보이지 않는 상황. 이 대통령은 "북한의 태도는 냉랭하다"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 당시 호전적인 대북 정책을 언급하면서 "북한 입장에서 보면, 정권이 바뀌더니 대북방송도 안 하고 유화적인 조치를 한다고 해서 북한이 갑자기 휙 돌아서 활짝 웃을 거라고 기대했다면 바보죠"라면서 "휴전선의 군사적 긴장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게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 (북측이) 웃지 않는다고 우리도 화낸 표정으로 하면, 우리도 손해"라고 말했다. 그는 "이재명이 종북이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 민생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복합적인 국제 문제가 돼 있다. 핵 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이 문제는 미국이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고, 북한 입장에서도 체제에 대한 위협의 핵심은 남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미국과의 관계가 남북관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대화가 열리는 게 한반도 평화 안정에 도움이 된다. 우리가 주도하거나 우리의 바운더리(영향권) 안에서 이뤄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월 4일 우리 군이 대북 심리전을 위해 전방에 설치한 대북 확성기의 철거에 들어갔다. 사진은 이날 대북확성기 철거 작업하는 모습. ⓒ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남북은 가장 직접적인 이해관계 당사자이지만 가장 냉담한 것이 슬픈 현실"이라며 "안보실과 외교부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하고 있고 나아지고 있다"라며 "대립보다는 긍정적인 노력들이 쌓이면 조금의 틈이라도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으론 "각자 외교협상의 특성이 있는데, (북한의 경우는) 타결 직전에 최대한 목소리를 끌어올린다. 협상력을 높인 다음에 극적 타결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라며 "(북한이) 자신의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 사나움을 보이고 실력과 힘을 보이는 그런 단계를 거치는 것 같기도 하다"라고도 평가했다.
"누가 총리 될지 모르지만, 경제 분야 새로운 한일 협력 틀 반드시 필요"
한일정상회담을 했던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최근 사퇴하고 자민당 내 유력자들이 총리 자리를 두고 각축하고 있는 가운데, 이 대통령은 "(한일관계가) 이시바 때보다 더 힘들 거라고 하는데 우리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누가 (총리가) 될지도 모르는데, (후보) 두 사람이 비슷비슷하다는데, 투트랙 전략에 따라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따질 것은 따지고, 규명할 것은 규명하고 그렇게 할 것"이라며 "세계 경제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일 간 경제 분야의 새로운 협력 틀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약속한 강제동원 사실 설명 및 희생자 추도식에 대해 일본이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한국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사도광산 문제는 이시바 총리 사임 전에도 협의를 했는데, 의견 합치를 보기 어려웠다. 이번엔 포기하고 안 가는 걸로 했다"라면서 "협상은 계속하되 그거 갖고 싸우지 말자 했는데, 외교적으로 보면 안 가는 게 엄청 싸우는 거긴 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