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류에서 떠내려온 비행기 ⓒ 임도훈
같은 날, 같은 하늘과 강물에서 전혀 다른 두 '비행체'를 만났다. 하나는 사람의 손에서 흘러나온 작은 장난감 비행기였고, 다른 하나는 대륙을 넘나드는 나그네새 제비갈매기였다.
10일 오전, 세종보 앞 강물 위로 하얀색 물체 하나가 흘러내려왔다. 처음엔 흔한 부유물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보니 작은 무선 비행기였다. 멀리서 보아도 꽤 값비싸 보이는 비행체였다. 누군가 애써 조종하다가 강으로 추락한 것이 분명했다. 물 위에 덩그러니 떠내려가는 장면을 보니, 잃어버린 사람의 허탈함이 절로 느껴졌다.
잠시 뒤, 한 청년이 숨을 헐떡이며 농성장으로 달려왔다. 그의 시선은 곧장 강으로 향했다. 눈치 빠른 나귀도훈(농성장 활동가)은 비행기를 찾으러 온것을 확인하고, 강물이 어디쯤까지 떠내려갔는지 가늠해 알려줬다.
청년은 곧장 강둑을 따라 뛰어갔다. 다급한 그의 발걸음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비행기가 다시 물에서 나와 주인의 품으로 돌아 갔기를 희망해본다. 이렇게 세종보 농성장에서 우리는 첫 번째 '비행체'를 목격했다.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 비행이었지만, 강물 위에서는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오후,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던 중 또다시 소동이 일어났다. "이상한 새가 있어!"라는 외침에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멀리 흰색의 새가 힘차게 날고 있었다. 순간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어졌고, 나는 스코프를 챙겨 새의 궤적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눈에 들어온 긴 꼬리, 다이빙하듯 먹이를 낚아채는 움직임이 단서를 주었다. 제비갈매기였다. 날개를 활짝 펴고 유유히 떠 있다가도, 순식간에 물속을 향해 다이빙하듯 급강하하는 그 특유의 사냥법을 보여줬다.
최근 좋은 사진기를 구매한 나귀도훈의 사진을 기대했다. 충분히 잘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사냥한 물고기를 잡은 제비갈매기의 형체가 사진을 통해 확인했지만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사진이었다. 정말이지 한심한 수준이었다. 나는 다시 나귀도훈을 볶았다.
조금 뒤 강변에 내려앉은 모습은 아지랑이 탓에 선명하게 담기지는 않았지만,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제비갈매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나그네새. 보통 동해안에서 관찰되곤 하지만 내륙의 금강에서 목격하는 일은 드물다. 이곳에 나타난 것만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을 만한 종이다. 아는 분에게 문의해보니 올해 유난히 제비갈매기가 우리나라를 많이 지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 많은 개체 중에 한마리가 우리 앞에 나타나 준 것이고, 정말 운이 좋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언제 다시 볼지 모를 제비갈매기를 필드스코프를 통해 눈에 담았다.
금강에서 만난 제비갈매기... 단순한 발견이 아닌 이유

▲제비갈매기의 모습 ⓒ 임도훈
개인적으로도 20여 년 만의 만남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갑천에서 우연히 목격한 단 한 마리였다. 언제든 시간을 내고 나타나는 곳으로 간다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종이다. 하지만 게으름이 발목을 잡았다. 그 새를 다시 만난 곳이 뜻밖에도 세종보 농성장이 된 것이다. 농성장에서 제비갈매기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정말이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이번 목격은 단순한 조류 관찰 이상의 의미를 던져준다. 세종보 농성장에서 우리는 여러 종의 새들을 확인해 왔다. 그리고 여전히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종보 상류 생태계가 수문 개방으로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징후다. 멈춰 있던 강물이 다시 흐르며, 그 속에서 잊혔던 생명들이 돌아오고 있다.
제비갈매기는 유라시아 대륙 중부와 북아메리카 동부에서 번식하고, 아프리카 서부와 인도, 호주,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월동한다. 때로는 수만 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경오염과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가 줄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세종보에서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반갑고 의미심장하다.
그날 하루, 농성장에서 확인된 두 비행체는 전혀 다른 출발점을 가졌지만 우리에게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하나는 사람의 장난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륙을 넘는 생명이었다. 하지만 둘 다 우리 마음을 놀라움으로 흔들었고, 동시에 희망을 품게 했다. 멈춰버린 강물 위에 던져진 인공의 비행기, 그리고 되살아나는 흐름 속에 날아든 제비갈매기. 이 두 장면은 마치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있는 듯했다. 다시 생명을 위한 시간이 열릴 수 있다는 신호, 그리고 강이 되살아나는 희망의 징조 말이다.
세종보 농성장은 지금도 희망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물이 흐르며 되살아나는 생명의 장면들을 확인할 때마다, 천막농성장의 작은 일상은 단순한 버팀목이 아니라 강을 되돌려주려는 시민 의지의 표상임을 증명한다. 제비갈매기의 날갯짓처럼, 이곳에서 피어나는 작은 발견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일깨운다.
농성장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단촐한 밥상, 이어지는 생명의 이야기, 더위와 추위를 견디는 의지 하나로 운영되고 있다. '생명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다. 그 마음이 있기에 세종보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회복과 공존의 상징으로 다시 우리 앞에 서고 있다. 희망은 여전히 강 위에 떠 있고, 우리는 그 희망을 놓지 않으려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행하는 제비갈매기의 모습 ⓒ 임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