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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11 09:59최종 업데이트 25.09.11 09:59

내 몸뚱이를 제대로 사랑하기 시작한 시절

새로운 출발, 갱년기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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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후끈하는 열기에 놀라서 새벽에 깼다. 선풍기는 잘 돌아가고 있었고 실내온도는 22도였다. 열기를 느낄 이유가 없는데 왜? 하다가 까무룩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갱년기가 되면 나만 아는 후끈함으로 잠을 못 잔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도 그 대열에 들어서는건가 싶어서 우울했다. 그래도 아직은 '까무룩' 잠들 수 있으니 괜찮을지도 모른다.

'몸뚱이'가 사무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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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교수는 그의 책 <오십의 기술>에서 나이 들수록 '기승전 몸뚱이'라고 했다. 처음엔 이게 교수의 적절한 단어선택인가 싶었는데 그날 밤 이후, '기승전 몸뚱이'는 뇌주름 사이에 뿌리내리더니 머릿속 BGM으로 맴돌기 시작했다. 갱년기가 깊어지기 전에 몸뚱이를 챙기리라!

마침 요가원의 1년권이 끝났다. 1,030,600원으로 1년 무제한권을 재결제했다. 원고료를 모아둔 덕분이었다. 저녁 밥상을 일찍 치운 날은 두 타임을 연이어 수련한다. 평생을 각목으로 살아온 터라 안 되는 동작이 훨씬 많다.

그랬어도 만 1년을 채우니 '배꼽에서 가까운 갈비뼈를 닫아서 아래로 쓸어내리세요' 같은, 한국말인데 한국말 안 같은 한국말에 따라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단어 그대로 '꾸겨진' 내 몸을 곳곳에서 만나 조금씩 편다. 각목이 몸뚱이로 승진하는 중이다.

나는 평생 오른쪽, 왼쪽이 헷갈렸다. 수련 때도 나 혼자 반대 다리를 드는 날이 허다했다. 요가원에서 만난 언니에게 이 말을 했더니 본인도 그런다면서 내게 팔찌를 선물했다. 수련 전에 '팔찌가 왼쪽'을 머리에 새겼더니 덜 틀린다. 24시간 차고 있어도 거슬림이 없어서 더 좋다. '국민학교 야간 나온 방향치' 소리만 듣다가 공감과 선물을 받으니 이보다 사치스러운 호사가 또 없다.

 요가원 도반과 커플팔찌
요가원 도반과 커플팔찌 ⓒ 최은영

돈주고도 못 받을 호사스러운 고문

차로 5분 거리에 50미터 레인의 수영장이 있다. 50미터 뺑뺑이를 돌면 이러다 죽지 싶은데 그게 또 돈 주고도 못 받을 호사스러운 고문이다. 이 자유수영은 회당 1650원이다. 샤워만 해도 감사할 가격이다. 1년간 주 3회 한다치면 25만7400원이다.

요가 무제한권, 수영 주 3회권의 1년 비용을 합하면 128만 8천 원이다. 월 11만 원이 조금 안 된다. 몸뚱이를 위한 사치로 쓰기에 매우 적절하다. 저속노화로 유명한 정희원 님은 운동에 투자하는 게 제일 남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요가도, 수영도 명상이 저절로 되니 이 또한 호사스럽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렌즈로 자신의 이야기를 본다. 어떤 이는 갱년기를 '끝의 시작'으로 해석하고, 어떤 이는 '새로운 출발'로 받아들인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수영장에서 50미터를 헉헉거리며 완주한 순간들, 요가 매트 위에서 '꾸겨진' 몸을 조금씩 펴가는 시간들, 팔찌를 보며 왼쪽 다리를 올바르게 올린 작은 성취들을 정성스럽게 모아두겠다. 갱년기의 무력감 대신 128만 8천원짜리 호사스러움을 내 렌즈에 새기고 싶다.

몸이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변화를 어떤 이야기로 엮어낼지는 온전히 내 몫이다. 나는 갱년기를 '몸뚱이를 제대로 사랑하기 시작한 시절'로 기억하고 싶다. 월 11만 원으로 산 이 호사스러움이 내게는 갑옷이 되어, 몸이 변해 갈 때마다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증거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올라갑니다


#갱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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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음악을 짓는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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