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주 아파트 단지에 있는 작은 도서관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놀이터 옆 배롱나무를 보니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손자가 할머니 집에 있을 때는 놀이터에 자주 나가서 이런저런 꽃들이 피고 지는 것도 자주 보았다. 지금은 아이가 집에 같이 지내지 않다 보니 놀이터에 나갈 일이 없어 꽃이 피었는지도 모를 뻔했다.

▲배롱나무꽃놀이터 옆 ⓒ 황윤옥
손자는 세 살 때부터 네 살 때까지 26개월을 내가 데리고 키웠다. 세 살 때 할아버지 목마를 타고 어린이집에 가다가 호기심이 많은 손자는 꼭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 이건 무슨 나무예요?"
"응, 이건 배롱나무란다."
"근데 왜 꽃이 안 피었어요?"
그때는 5월이라 꽃이 피지 않았다. 손자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와서 할아버지하고 검색해 보았다. 배롱나무꽃은 홍자색을 띠고 7월에서 늦은 가을까지 핀다고 하였다. 하원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말해 주었다.
"할머니가 검색해 보니 배롱나무꽃은 분홍색인데 7월에서 가을까지 핀대."
"꽃이 피면 그때 같이 보자. 할머니."
그해 여름 홍자색 꽃이 핀 배롱나무를 본 손자는 감탄했다.
"와, 너무 예뻐요."
꽃을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은 천사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오늘 점심에 남편과 둘이 밥을 먹을 때였다. "놀이터에 배롱나무꽃이 피었던데 혹시 누구 생각나는 사람 없어요?"라고 물어보자, 남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손자가 떠오르지. 배롱나무가 뭔지도 몰랐는데 손자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남편도 손자가 몹시 보고 싶었나 보다.
수수꽃다리, 대왕참나무, 개쉬땅나무, 왕벚나무 등 많은 나무 이름도 한번 가르쳐 주면 절대 잊는 법이 없었던 손자였다. 이렇게 배롱나무꽃이 필 때면 손자 생각이 난다.
할미집 살이를 마치고 엄마 집으로 돌아가고부터는 매일 아들네 집을 오갔다. 아이들의 공부와 책 읽기, 재미있는 놀이도 함께 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매주 금요일이 되면 손자 둘을 할미집으로 데리고 와서 하룻밤을 보내고 토요일 밤에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늘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일곱 살이 된 올해 2월 손자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생겼다. 집에 데리고 있을 때도 고양이 두 마리와 같이 문제 없이 잘 지냈는데 갑자기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긴 것이다. 그 후로 서로의 집을 오고 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만나지도 못하게 되었다.
"어머니, 바깥에서 아이들을 만나도 스킨십을 하지 말고 잠깐 밥만 먹고 헤어져요."
아들의 전화를 받으니 기가 차고 섭섭했다. 만나고서 어찌 손도 못 잡는단 말인가. 6년을 거의 내 손에서 자라다시피한 아이를 만날 수 없게 되자 너무 우울해지고 슬펐다. 허무한 시간을 보내기 싫어 브런치 스토리도 시작하고 학교 공부도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이의 빈자리를 꽉 채워주지는 못했다. 매 시간 떠오르는 손자의 모습이 그리워 가슴이 미어졌다.
그렇게 7개월의 시간이 흐르니 어느 정도 안정이 되는 듯하지만, 손자가 그리운 것은 다른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병원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할머니 집에도 아예 가지 못하게 하고 만나지도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아들 내외는 의사의 권유를 잘 따르는 것 같지만 내 마음은 텅 비어 있다.
어서 면역력이 좋아져서 옛날처럼 안고 만지고 같이 노는 게 나의 소망이다. 그러려면 아이가 먼저 건강해져야 한다. 항상 기도하고 있다. 오늘처럼 배롱나무꽃을 본 날은 더없이 손자가 그리워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