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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무거운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찾은 경남 거창 갈계숲. 생각과 달리 바람 한 점 없고, 무더위가 심해 숲길 걷기가 오히려 마음을 더 지치게 했다. 제대로 걷는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 채 아쉬움만 안고 읍내를 거쳐 돌아가는 길,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여보, 잠깐! 우리 저기 좀 들렀다 가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르누아르, 일상의 아름다움 전' 플래카드였다. 거창에서 '르누아르' 전시를 볼 수 있다니, 솔직히 원작은 아닐 거라 예상했지만, 마음이 끌렸다. 우리 부부는 곧장 거창문화센터 전시실로 향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기가 먼저 반겼다. 안내문을 보니, 이번 전시는 르누아르 작품을 재현한 레플리카(모방) 작품과,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체험 전시라고 한다. 그림과 향기가 함께하는 전시라니, 생소했지만 신선했다. 평일이라 한적해 호젓하게 그림 산책을 하듯 감상할 수 있었다.
첫 섹션은 '색과 향기' 체험 코너였다.

▲색과 향기색에 맞는 향기를 시향해 볼 수 있는 체험 전시모습 ⓒ 유상신
특정 색과 향기를 함께 경험하면 기억과 감정이 오래 남고, 감정적 느낌도 강해진다고 한다. 이를 '프루스트 효과'라고 부른다는 벽면 안내와 함께, 관람객이 직접 향을 맡아볼 수 있도록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르누아르는 도자기 공장에서 수습생으로 일하며 받은 임금으로 미술을 배웠고, 이후 모네, 마네 등과 함께 인상주의를 이끌며 자신만의 화풍을 연구했다고 한다. 시기별 섹션을 따라 작품 속 일상을 들여다보며 감상을 하다 보니, 숲길 걷기 후 쌓였던 피곤과 잡념이 점점 부드럽게 풀려갔다.
대표적인 몇몇 작품 앞에는 조향사가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향수가 놓여 있었다.

▲그림과 향수원작을 재현한 래플리카 작품과 조향사가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조향한 향수가 놓인 장면 ⓒ 유상신
향기를 맡으며 그림을 감상하니, 시각과 후각이 어우러진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부드럽게 몽글거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작가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작가 어록이 담긴 그림 포스터계단 벽면에 전시되어있다. ⓒ 유상신
"그림이란 사랑스럽고, 즐겁고, 예쁘고도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꽃을 그릴 때 마음이 편해진다."
"왜 예술이 예쁘지 않아야 하나요? 세상에는 이미 불쾌한 것들이 충분히 많잖아요."
작가가 남긴 말들이 왜 그를 '꽃과 여인을 사랑한 화가'라 부르는지, 왜 그의 그림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밝고 환하게 하다가 마침내 행복한 단 꿈을 꾸게 하는지 설명해주는 듯했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머릿속을 짓누르던 생각들이 새털처럼 가벼워진 느낌이다. 출구 한쪽에는 '나만의 섬유 향수 만들기' 체험 코너가 있었다. 남편이 먼저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해보자고 했다. 평소에는 좀처럼 먼저 제안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림과 향기를 경험하면서 마음이 열렸나보다.
체험은 마음에 드는 향을 고르고, 추가 향료를 선택해 나만의 향수를 만드는 것이었다. 남편은 '잔사마리의 초상화'에서, 나는 '뱃놀이 일행의 오참'에서 조향사가 영감을 받았다는 향을 골랐다. 여기에 각자 좋아하는 향을 더해 완성했다. 향수를 뿌릴 때마다, 향기와 함께 기억될 그림 한 점씩 마음속에 새겨졌다.

▲나만의 섬유향수 완성품왼쪽은 아내가 오른쪽은 남편이 만들었다 ⓒ 유상신
무료로 관람한 '거창, 르누아르 레플리카 전'은 몇 년 전, 서울까지 올라가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인파 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보고 온 원작 전시보다 훨씬 마음 깊이 다가왔다. 무거운 머리와 더위에 지친 마음으로 우연히 들른 전시에서 뜻밖의 행복과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이런 게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하고 새삼 느껴 본 하루였다.
[전시 안내]
전시명 : 르누아르 일상의 아름다움 展
전시기간 : 2025년 9월 17일까지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전시장소 : 거창문화센터 전시실 1,2층 전관
관람 및 체험 무료
체험행사: 나만의 향수 만들기, 르누아르 작품 색칠하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