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요즘 들어 노동 문제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아마도 내가 동네의 순댓국집에서 점심시간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그런 듯하다. 올여름 들어 처음 폭염 관련 안전 안내 문자가 하루 종일 울리던 날, 식당 주방에 도착해 설거지를 위해 싱크대 앞에 서자마자 얼굴에서는 땀이 마구마구 흐르기 시작했다. 모든 땀구멍이 열리고 땀을 쏟아냈다.
주방에 설치된 에어컨 표시 온도는 37도였다. 체감온도는 아마 40도가 넘었을 것이다. 순댓국집 답게 뚝배기에 담긴 순댓국과 뼈해장국이 펄펄 끓고 있었고, 식기 세척기를 열 때마다 뜨거운 습기가 마구마구 올라왔다. 흐르는 땀 때문에 눈은 따가웠으나 끼고 있는 고무장갑 때문에 내 양쪽 어깨로만 땀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급작스런 폭염 때문이었을까. 그날은 다행히 손님이 많이 없어서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 아니던가. 하루 이틀이 지나니 쪄 죽을 것 같은 날씨에도 사람들은 뜨거운 뚝배기에 담긴 국밥을 먹으러 몰려오기 시작했다. 뜨거운 공기에 뜨거운 도로 위를 걸어 뜨거운 뚝배기에 담긴 국밥을 먹으러 오다니, 사장이 아닌 나에겐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풍광에 고개만 절레절레 저으며 2시간 30분 동안 열심히 수십 개의 뚝배기를 닦아냈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움직임, 노동자들의 '꼼지락'

▲책표지 ⓒ 클
책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은 저자이자 노동인권 변호사인 윤지영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 투쟁 이야기이다. 15년 넘게 노동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윤지영은 이 책을 통해 아파트 경비노동자, 핸드폰 판매노동자, 방송국 비정규직 PD, 국가정보원 여성 직원, 택시기사, 파견노동자의 성희롱, 현장실습생, 골프장 캐디,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형사 사건, 노동자 손배·가압류 사건 등 11개의 사건을 다루었다.
분명 뉴스에서 여러 번 접했던 사안들인데 결과를 찾아볼 생각을 못 했다. 뒤늦게나마 이 책을 통해 굵직한 소송들의 결과를 알고 나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묵직한 숙제를 안겨주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의 한 장, 한 장을 읽다 보면 마치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저자 윤지영의 필력이 좋기도 하지만 일어난 일들이 굉장히 일상적이고 평범하면서도 스펙타클하다. 그러면서 나의 주변인들이 떠올랐다.
몇 년 전 화재가 난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입주민들을 대피시키다가 심장마비로 계단에서 돌아가신 경비 노동자, 오며 가며 본 핸드폰 매장의 핸드폰 판매 노동자들, 방송국 PD를 꿈꾸며 방송반에 들어갔다던 큰 아이의 친구, 아파트 단지 앞에서 수다를 떨며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님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취업을 나간 11층에 사는 아이, 한국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던 남편 지인의 형이었던 네팔 노동자, 등록금을 벌겠다고 방학 때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업체가 문을 닫을 위기라며 일주일 동안 일한 급여를 달랑 10만 원 받고 쫓겨났던 과거의 나 자신과 불이익을 각오하고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나의 동거인까지.
우리가 하고 있는 노동과 받고 있는 차별들은 간혹 거창한 이름들로 포장되곤 하지만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그렇기에 노동 인권 관련 사안들은 노동자 한 사람의 일상을 넘어 가족의 삶까지 파괴하고 잡아먹곤 한다. 그저 살아 '가는' 줄 알았던 삶이 나이가 조금 들어 둘러보니 살아 '내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 미약하다고 생각했던 노동자들의 꼼지락거림이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움직임이었음을 다시 깨닫는다.
한편, 이 책의 후기들을 살펴보면 '한 번에 훅 읽혔다'라는 평이 많았는데 난 그렇지 않았다. 커피숍에서 책을 읽다 중간중간 입에서 튀어나오는 욕을 막기 위해 책을 덮었고, 집에서 혼자 조용히 읽을 때는 큰 소리로 욕을 해대느라 책을 덮었다. 마치 '진상 보존의 법칙'이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노동자의 성별과 국적, 연령을 뛰어넘는 차별적 발언과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들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가해하는 것을 보고 프리모 레비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가 떠올랐다. 저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학살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최근 인터넷 뉴스 등에 노동과 관련된 사안들이 제법 보도가 많이 되는 느낌이다. 아마도 산재 피해자 당사자이기도 하고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산업재해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한 뒤, 산재 보도가 더 자주 나오는 것 같다. 언론사에 따라 다르겠지만 초점이 산재로 죽어 나가는 노동자에게 있지 않고, 그로 인해 손해를 입게 될 기업들에 있는 경우도 많다. 그들의 계산기에서 인간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이길래 그럴까.
"법전 속의 활자에 머물러 있던 노동법은 노동자가 법정에서 이를 주장할 때 비로소 현실의 법이 됩니다."(286쪽)
김선수 전 대법관의 추천사 중 일부다. 시인 김춘수는 시 '꽃'에서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마침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노동법도 꽃과 같다. 노동법은 노동자가 노동법을 통해 법정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해야 '활자들의 모임'에서 비로소 '현실의 법'이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와 노동인권 변호사, 그리고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노동법을 현실로 이끌고, 현실도 바꾸어내니 이 싸움들을 멈출 이유가 없다.
지난 8월 24일, 윤석열이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던 노조법 2, 3조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업은 노조를 길들이는 수법으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활용해왔다. 그 액수가 어마어마하다. 책에 따르면 쌍용차 174억 원, 철도공사 387억 원, KEC 306억 원, 문화방송 195억 원, 현대자동차 300억 원(262쪽)... 저자 윤지영은 이 책 11화의 소제목에서 손배·가압류를 이렇게 표현했다.
'고상하게 노동자의 숨통을 끊는 방법'
2003년 1월 9일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는 공장 안 광장에서 몸에 불을 질렀다. 회사는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한 조합원들 재산에 약 78억 원의 가압류를 걸었다. 그는 유서에서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261쪽)"라고 썼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김주익, 2011년 또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최강서가 죽음을 선택했다. 최강서 열사는 유서에서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 돈이 전부인 세상에 없어서 더 힘들다"(262쪽)라고 남겼다.
이들의 유서에서는 손배·가압류의 현실성 없는 금액에 대한 원망이 보인다. 1억도 아니고 몇백억이란다. 헌법에서도 보장되어있는 노동자 단체 행동에 대한 권리를 수백억의 돈으로 짓밟으니 노동자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될 뿐이었다. 그래서 2014년 2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사회 연대체 '손잡고'라는 단체가 출범했고, 11년의 활동 끝에 드디어 노조법 2, 3조 개정을 이끌어 낸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 결과라고 생각한다. 11년이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니 바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또 먼저 간 이들의 무덤 위에 우리의 권리를 얹는다.
"노동자에게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내가 일하는 순댓국집의 홀 담당 이모님이 손님에게 갑질을 당해서 화가 나면 주방으로 들어와 냉동고를 열고 쌍시옷을 날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인간과 냉동고의 연대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는데 우리에게는 이렇게 쌍시옷을 발사할 곳이 너무나 필요하다.
저자 윤지영은 책 에필로그에서 변호사이자 활동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다 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노동자에게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것(282쪽). 대등할 수 없는 노동자와 사용자.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법을 통한 해결이 가장 쉽지만 가장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다는 점을 꼬집으며, 결국 노동자가 뭉쳐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외친다. 또한 쌍시옷을 발사할 수 있는 곳도 노동조합이 아닐는지.
노동자들의 법정 투쟁은 고구마와 사이다가 혼재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권리는 법문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지난한 투쟁의 역사 위에 세워진다. 비록 법으로서 권리가 보장되고는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법률 위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희망과 불안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법정 투쟁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결국 '연대'이다. 광장에 모여 팔뚝질을 하는 것만이 연대의 전부는 아니다. 그대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 그것이 연대의 시작이다. 책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을 읽으며 안녕하지 못한 한국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식지 교회와인권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