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자민당 총재). 사진은 지난 7월 28일 일본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당원들과의 원탁 회의에 참석한 직추 나오는 모습. 이날 이시바는 재임 의사를 밝혔다. ⓒ EPA/연합뉴스
2025년 9월 7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그는 참의원 선거(7월 20일) 패배 후 당내외 사퇴압박에 시달려 왔으나, 정치적 리스크를 잘 극복한 듯 보였다. 8.23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셔틀외교 복원'을 통한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성과를 평가받은 바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불과 11개월 만의 퇴진은 일본 정치의 불안정성과 제도적 한계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한일관계에도 파장이 미칠 사임 표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어보자.
첫째, 지지율 상승 속 사임 — 역설적 결단의 배경
주목할 점은,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의석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세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권자들이 단기적인 성과보다 정직성과 개혁 의지에 기대를 걸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시바 총리는 당초 계속 집권할 의사를 밝혔지만, 당내에서는 총재 선거를 앞당기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9월 8일로 예정된 의사 확인에서는 자민당 의원과 도도부현 연합 대표의 과반수가 찬성할 것으로 예상되었다(FNN 보도). 당내 분열을 막기 위해 이시바 총리는 사임을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8월 말에 열린 '선거총괄회의'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인 키하라 세이지가 책임을 지고 사임을 발표했다. 당내 책임론이 급속히 확산되며 이시바 총리의 거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사임은 단순한 인사 교체가 아니라 자민당 정치의 구조적 붕괴를 예고하는 장면이며, 일본 정치가 '제도(시스템) 개혁'을 요구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자민당 권력 재편: 후임 후보와 당의 향방
이시바 총리의 사임에 따라 자민당은 '임시 총재선거 실시 여부' 논의(9월 8일)와 상관없이 곧바로 새 총재 선출 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현재 후임 후보로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를 포함하여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성(전 환경) 대신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으며, 지난 총재 선거에서 패배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성 대신도 여전히 높은 가능성을 남기고 있다.
이 밖에도 일본이 안고있는 과제 중 하나인 '디지털전환(DX)'에 잘 대응할 수 있는 고노 다로(河野太郎·62) 전 디지털청 장관, 한일 무역전쟁으로 익숙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70) 전 자민당 간사장 및 외교·경제산업성 대신, '일본 정부의 대변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64) 관방성 장관 등도 총리(우선 자민당 대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 자민당의 후임 권력은 누가 승계하는가? |
• 고이즈미 대신은 젊은 이미지와 개혁 성향으로 도시 유권자에게 인기가 있지만, 당내 기반이 약하다.
• 다카이치 대신은 보수층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경제안보 및 기술 정책에 정통하지만, 당내 화합보다는 이념적 대립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분열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 스가 전 총리는 위기관리 능력과 행정 경험이 강점이나, 고령과 과거의 지지율 하락이 부담이다.
• 기시다 전 총리는 외교적 안정성과 국제적 인지도가 강점이나, 정책 추진력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
이들 후보는 자민당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안정과 연속성을 택할 것인지, 개혁과 세대교체를 시도할 것인지에 따라 일본의 정책 기조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자민당 내부의 '파벌 정치'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정책보다 권력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 이시바 총리의 사임은 바로 이 구조적 장벽을 넘지 못한 결과이며, 후임 총리 역시 같은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셋째, 정책 공백과 정치 리스크: 경제·외교·안보의 삼중고
총리 교체는 단기적으로 국내정치 및 외교 정책의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일본은 물가 상승, 저성장,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내각이 올해 쌀 값 폭등으로 대표되는 '생활(일상) 위기' 혹은 '재난' 관리에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총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물가 대책과 사회보장 개혁을 내세웠지만, 당내 저항과 관료 조직의 비협조로 인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더불어 사임 결정에는 '미일 통상 협상'의 시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8월 말에는 미국 측에서 관세 인하 압력이 거세졌고, 이시바 정권의 협상 태도에 대한 당내 불만이 고조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아사히신문). 특히 미국 트럼프와의 관세협상(일본 대표: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 대신)에서 일본의 윈셋 배려 혹은 이시바 지지 선언을 통해 정권유지 의욕을 내비쳐왔다. 기대와는 달리 미일 연계정치가 이시바의 정권유지에 효율적으로 작동(지렛대로 작용)하지는 못했다는 평가이다. 한마디로 외교적 부담이 정권 운영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안보 측면에서는 방위비 증액과 자위대 역할 확대가 논의되고 있으며, 총리 교체는 이러한 민감한 정책 방향을 흔들 수 있다. 특히 조기 중의원 해산 및 총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책의 연속성은 더욱 약화될 수 있다. 이는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불확실성을 제공하며, 엔화 약세와 증시 변동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정치적 리스크'는 단순한 리더 교체를 넘어, 정책 결정 구조의 비효율성과 정당 정치의 기능 부재에서 비롯된 심각한 구조적 문제다.
넷째, 동아시아 정세와 한국의 전략적 대응은 무엇인가
이시바 총리는 역사 문제에 대해 반성의 자세를 보였고,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일관계에서도 새로운 화해의 길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던 상황이다. 한국 외교부는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한 대화 자세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APEC 정상회담 초대 및 CPTPP 등 경제협력 의제에도 지대한 관심이 모아졌다. 국제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들 앞에서 한일 양국은 중요한 협력 파트너임을 재확인한 바 있다.
이시바는 총리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일정상회담을 언급하며 "한국과 결실 있는 회담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또한 "일본은 아시아 나라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총리 교체로 인해 한국 언론에서는 "이시바 총리의 퇴진은 한일 관계의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분석이 많으며, 특히 역사인식이나 수출규제의 재점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의 정치적 불안정은 동아시아 전체의 협력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일 협력은 지역 안정성을 지탱하는 핵심 축이다. 그러나 일본의 리더십 공백은 이러한 협력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한국은 일본의 정국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외교적 유연성과 전략적 대응을 병행해야 한다. 동시에 일본 내 개혁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미래지향적 협력 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기적 대응을 넘어 중장기적 외교 전략의 일환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결론: 사임은 끝이 아니라 일본 정치의 구조적 취약성이자 경고이다
이시바 총리의 사임은 단순한 정치적 퇴진이 아니다. 참의원 선거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사실은, 유권자들이 기존 정치 구조에 대한 불신과 개혁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자민당 정치의 구조적 한계와 '일본 정치'의 기능 부재를 드러낸다.
이제 일본은 리더십 교체를 넘어 '정치 시스템' 자체의 재설계를 요구받고 있다. 한국과 동아시아는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혼란이 아닌, 새로운 협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과제대국' 일본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리더의 교체가 아니라 '구조의 변화' 및 '개혁의 지속성'에 달려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한일간 위기관리의 정치경제학’, ‘재해후의 일본경제정책 변용’,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층적 경제협력 구도와 일본의 경제적 리스크 관리”, “세계무역구조의 변용과 지경학 : 글로벌화 vs. 지역주의”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